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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 Sep 13. 2020

견디고 싶지 않았어

이제 가을이 오는가 보다. 볕은 따스하고 바람은 청량하다. 요즘 종종 하는 생각인데, 이혼 전과 후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다. 결혼한 상태일 때도 나는 대개의 시간을 혼자 보냈고 가끔 울었다. 지금도 그렇다.


이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을 때, 마음 한편에 나를 붙드는 죄책감이 있었다. 본의 아니게 그러니까 나의 직장이 안정되고 혼자 살기에 충분하게 돈을 벌면서 이혼에 대한 마음이 커진 것 같았다. 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책임감이 강했던 K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후에 군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생계를 스스로 책임졌다. K는 결혼 이후에는 나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가졌다.


나는 그런 K의 책임감이 불편했다. 여성을 남성의 소유로, 혹은 돌봄의 대상으로 여기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은 둘이 둘을 책임지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군 장교를 마치고 나서 쉴 것을 권했다. K가 쉬는 동안에는 내가 생계를 책임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K는 한 달쯤 여행도 다녀오고 근 일 년 동안을 쉬었다. K의 친구들이 K를 부러워했다.


결혼한 이후 나는 시민단체에서 일했고 대학원에 다녔다. 학위과정 중에 들어간 직장에서는 학위를 마친 후에도 나의 학위를 인정해주지 않아 투쟁하는 삶을 살았다.


아마도 그즘이었을것이다. K는 직장의 상사가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한다면서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용돈 정도를 벌었다. 그때 나는 K의 전 직장 근처의 집에서 나의 직장까지 매일 130km를 운전했다.


그러다 직장에서의 내 직위 문제가 해결되었고 월급이 많아졌다. 나는 집을 나와서 직장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었다. 왜 내가 하루에 3시간씩 운전을 해야 하는지, 왜 그런 생활을 해야 하는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굳이 그런 삶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 나는 K에게 진지하게 이혼 이야기를 했고 6개월쯤 후에 K는 대학원을 휴학하고 새로 일자리를 구했다. 내 직장 근처로 말이다.


그럼 될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견디고 싶지 않았다. 그의 대학원 학비에 내 돈을 보태고 싶지 않았고 쉬는 날 그를 위해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나를 오롯이 건사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에게 일정 부분 의존하고 원하지 않는 삶을 견디면서 살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되고서야 견디는 것을 멈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살만해지니까 이혼을 고한 것이 아니라, 나 혼자 나를 건사해질 수 있게 돼서야, 그제야 견디는 것을 멈출 수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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