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어리숙하고 모자란 존재의 이름, 여성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리다의 반대말은 뭘까. 어리다의 반대말은 성숙하다일까? 그렇다면 나이가 어리다는 말은 어리숙하고 모자라다는 말과 같은 것일까?
학부시절 나는 대개 어렸다. 남성의 비중이 높은 탓이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첫 두 학기 동안은 실험실에서도 그랬다. (나이로) 막내였고 오빠들의 귀여움을 받고 또 보호도 받았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주로 실험을 준비하고 뒷정리를 하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부름이었다. 물론 이건 여자라서가 아니라 이공계 실험실의 군대 문화 같은 것이었다. 선배라는 말 대신 사수라고 불렀다. 뭔가 불평등한 관계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사수가 책임을 대신 져 주기도 했으므로 때때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저 마음속으로 내가 사수가 되면 나는 동등하게 관계를 맺어야지 다짐했다.
내가 선배가 되었고 다짐을 실천할 생각에 조금 들뜨기도 했다. ‘나는 다르다’는 약간의 우쭐함도 있었던 것 같다. 당시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 대학원에 진학한 남자 후배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그와는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는 후배였지만 언제나 나에게는 ’ 오빠‘였으므로.
외국에서 포닥으로 온 중국인 남성과 관계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나이도 나보다 많았을 뿐 아니라 석사과정 나부랭이인 나와 박사학위를 이미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존중하기는커녕, 언제나 고압적이었다. 지도교수와도 갈등을 겪다 결국 그는 떠났다.
나는 아예 전공을 바꿔 인문사회계열에서 공부를 했고 연구원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박사과정 중이었으므로 연구원의 박사들은 학위로 업무를 구분하고 석사급 연구자들은 그들과 동등한 연구자로 여기지 않았다. 보조 인력으로 생각했다. 그즈음에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이가 더 들고 박사학위를 가지게 되면 덜 무시당하지 않을까.
학위를 받았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강의 요청을 받아서 가면 ‘어려 보이는데 박사님이시냐’, ‘그래서 몇 살이냐’와 같은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나이가 마흔을 넘었지만 마찬가지다.
얼마나 나이가 더 들면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다. 하필 체구도 작아 늘 어린 이미지를 벗어날 수 없다. 어린 이미지는 얼굴이 동안이라 젊어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어리다는 건 미숙하고 모자라다는 뜻을 갖는다. 그러므로 어려 보인다는 것은 칭찬이기만 할 수가 없다. 어려 보이므로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지 못하거나 전문가로 존중받지 못하는 일들이 생기는 까닭이다.
이미 사십 대 중반에 이르는 나이가 되었지만 어쩐지 ‘어린 여자’는 나에게 뗄 수 없는 낙인처럼 느껴진다. 몇 해 전에 청소년인권운동 지음에서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라는 캠페인을 했었다. 나이 어린 사람을 존중하라는 내용이었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미숙하고 어리석다고 이해되는 것을 지적했다.
어리다가 차별의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기롭고 생각이 둔하다는 어리석다는 말이 생기기 이전에는 어리다가 그런 말이었다고 한다(https://www.korean.go.kr/nkview/nknews/200503/80_1.html )
나이가 많다 혹은 적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반대말이 없다. 어린이라는 말에는 이미 차별적 의미가 포함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이 어린 존재 들을 향한 연령차별주의가 여성에게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연령에 대한 차별과 성별에 의한 차별이 교차한다. 그러다 보니 여성과 어린 사람은 묘하게 중첩된다. 또 대개의 조직에서,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내가 속한 조직에서도 리더 그룹에는 남성이 많지만 조직 구성원은 여성이 절대다수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은 늘 미숙한 존재로 여겨지게 된다.
아주 어렸을 때 남자가 되고 싶었다. 감각적으로 경험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내게 올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지금은 남성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나이 어린 여성’인 연구자가 아니라 연구자로 호명되고 싶다. 한때는 어려 보이지 않으려고 옷차림에 신경을 쓰기도 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넘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포기했다. 어차피 직장 생활이 오래될수록 주변에는 나이 많은 남성이 더 많아지는 까닭이다.
차별의 경험이 쌓이는 만큼 피해의식도 커져버렸다. ‘여성이고 어려서(혹은 어려 보여서) 무시하는 게 아닐까 ‘ ’ 만약 남성이고 나이가 많았대도 같은 태도였을까 ‘ 하는 피해의식이 발동한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