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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 Jan 20. 2023

미세공격들 속에서 흔들리지 말기

직상위자, 팀장의 성과 평가 결과가 나왔다. 내가 속한 조직은 자기가 직접 일 년 동안 한 일을 적고 잘한 점과 아쉬운 점을 써서 낸다. 그리고 그걸 토대로 업적 평가를 받고 역량 평가는 직상위자가 직접 한다. 사실 역량 평가는 인상 평가, 느낌으로 하는 평가다. 얼마나 성실한지, 동료와 잘 지내는지, 공부를 하는지, 연구가 얼마나 전문적인지와 같은 것을 1-5점으로 매긴 후 평균을 낸다. 그래서 4.5 이상이면 S, 3.5-4.5 면 A, 2.5-3.5면 B, 2.5 이하는 C이다.


절대평가이고 대체로 업적과 역량평가 모두 특별히 업무에 문제가 있던 게 아니라면 A를 받는다. 입사 후 매년 A를 받았다. 극소수의 사람 중에 S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번에도 A이겠거니 했다. 사실 작년에 내가 했던 연구에 외부 평가 결과지에 “방법론적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나름 연구에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런데 웬 걸. 결과를 열었는데 업적은 A지만 역량이 B이다. 결과를 열람하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작년 팀장은 나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과 가깝다. 설마 일부러 그런 것일까. 억울한 마음으로 가득 차있다가, 내가 나 자신을 과대평가한 것은 아닌지 나를 의심하기도 했다.


잠이 안 오는 밤에 미세공격: 삶을 무너뜨리는 일상의 공격과 차별(데럴드 윙 수, 리사 베스 스패니어만/다봄교육)을 읽었다. 자신들이 차별하는 이들이 자신들과 동등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그러면서도 차별이 아닌 것으로 포장하기 쉬운 것들에 미세공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비가시적이고 모호한, 간접적이지만 무의식적으로 작동해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말한다.


이를테면 흑인이 비행기 1등석에 타면 “여기는 일등석입니다”라고 말한다거나 면접에서 남성에게는 누구누구 씨라고 칭하면서 여성에게는 이름을 부른다거나 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의 차별은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했을 때 ‘예민하다’ ‘감정적이다’ ‘사소한 것을 문제 삼아 피곤하다’는 피드백을 받기 쉽다.


한국에서 나이 어린 여성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종종 했다. “어이쿠, 어려 보이는데 박사님 이시구나”라든가, “그래도 연구위원이 하는 게 낫지”라든가  “아직 경험이 적어 잘 모르겠지만..”라든가의 말들을 들었다. 불쾌했지만 대부분 그냥 남어갔다. 문제 삼았다간 삽시간에 분위기가 얼어붙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하는 ‘미세공격’은 존재를 갉아먹는다. 가스라이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듣다 보면 ‘아 나는 아니구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어느새 가해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된다.


한 때는 매번 문제제기를 했었다. 석사연구원이지만 나도 연구자이다라고 주장했고 박사연구자들만 모여서 하는 의사결정을 문제 삼았다. 석사연구원을 연구 보조로 생각하며 연구자로 존중하지 않을 때 석사연구원도 연구자이고 자격이 있다고 했다.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말들을 공격으로 여겨 되받아치는 말들에 상처를 받았다.


같은 직장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승진을 요구했을 때에도 석사로 입사했으므로 불가하다고 했다. 입사 후 박사학위를 취득한 석사연구원을 박사학위 취득 후 입사한 박사연구원과 같지 않다고. 이 역시 미세 공격이다.


나는 결국 같은 직장에 박사연구원으로 재입사했다. 재입사 이전의 석사연구원과 재입사 이후 박사연구원은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이다. 어쨌든 미세공격으로 명명되는 차별은 일종의 길들이기, 가스라이팅으로 연결된다.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기 위해서 팀장에게 역량 평가의 세부 내용과 근거를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 팀원들에게 너무 후한 점수를 주면 안 된다는 조언을 듣고 엄격하게 점수를 매겼다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팀장은 3.0 이상이면 A라고 생각했다면서 착각했다고 했다. 부장에게 중재 요청을 하고 정정하겠다고 했다. 오해는 풀렸다.


스스로를 믿고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예민하다,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더라도 이상하다고 느낄 때 말 할 수 있다. kill joy feminist가 되어야겠다. 흥을 깨는 사람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아니 두렵지만 두려움을 안고 무의식적이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미세공격에 그것이 차별이고 폭력임을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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