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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알아채는 방법은 진심으로 대하는 것

by 피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10여 일 만에 출근을 했다.


만난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이미 상(喪)을 경험한 분들은 대부분 담담하게 말을 걸어오며 위로의 말을 건넸고, 아직 경험이 없는 분들은 슬픈 눈으로 말을 하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순간, "경험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동안 가족과 함께 그렇게 슬퍼했을 텐데, 간신히 마음 추스리고 출근했는데 다시 또 그 기억을 소환하기는 좋은 경험이 아니다. 슬픈 눈으로 "어떡해" 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잘 보내드렸죠? ○○ 님이 그렇게 신경 쓰셨으니 좋은 곳에 가셔서 웃고 계시겠다" 라고 말해주는 게 훨씬 큰 위안과 위로가 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좀 더 어른이 되어간다. 좀 더 사려 깊은 사람이 되어가는 듯하다. 나이를 먹는다고 무턱대고 어른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으면 경험이 좀 더 많으니 좀 더 성숙해지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심한 나의 속마음


이번 일을 치르면서 회사 사람들에게 약간 실망을 했던 게 사실이다.


나는 조문, 특히 부모님 상에는 경상도든 제주도든 찾아갔다. 그리고 예전부터 10만 원 이상씩 꼭 했다. 회사에서 오실 분들을 생각해서 여수에서 광주로 장례식장도 옮겼건만, 온 사람은 10명밖에 없었다. 그나마 우리 팀은 세 명. 하기사 나 빼면 6명이 전부니, 반은 왔다고 해야 하나.


속이 좀 많이 상했다.


"내가 인간관계를 잘 못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좀 더 진심을 대해야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너무한 거 아닌가? 나는 그렇게 다녔는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많이 부족한 인간인지라.


'앞으로 더욱 잘 챙겨야겠다' 하는 인간 승리로 얼마 전에 글을 쓰긴 했지만, 내심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출근하고 나니, 우리 팀 JB 분이 오후에 티타임을 하자고 한다. 출근하자마자 팀장 교육을 진행하며 정신이 없어 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후, 어떻게 딱 못 오신 우리 팀 세 분과 마주 앉았다.


"못 가서 미안해요.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버스 배차를 해 보려 했는데 10명 미만이면 안 된대서 못했어요. 하필 금요일이 야유회라 사람들이 시간이 다들 안 됐어요."


사실 나 같으면 '내일이 야유회니 오늘 갔다 와야겠구나' 혹은 '야유회는 일찍 끝나니 끝나는 시간에 갔다 오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내 욕심일 뿐이다.


"그렇지, 알아요. 나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라고 말은 했지만,

뭘 알고 뭐가 이해되겠는가. 무슨 다른 말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나 했을 법한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잠깐 꺼냈다.


그도 그럴 듯이, 다른 두 분은 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뿐, 묵묵히 듣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오래 하는 것도 이상해서 잠깐 이야기한 후 이번 주 금요일 있을 야유회로 화제를 돌렸다. 최근 글을 쓰며 "한번 더 생각하고 말하기"를 다짐한 터라, 말이 길어지면 또 실수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생각이 툭 들었다.


1. 나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나


내가 혹시 못 갔다고 해서, 이렇게 별도의 자리를 만들어 나의 미안함과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사실 그 자리가 나보다 그분들이 훨씬 더 어려운 자리였을 텐데, 나는 내 서운함만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닐까.


2. 나도 만사 제쳐두고 갈 수 있었을까


생각은 "만사 제쳐두고 가야지" 라고 했지만, 야유회 끝나고 갈 수 있었을까. 버스를 배차했다 치더라도 다시 회사를 와야 하니 그것도 여의치 않고, 술도 한잔 했을 테니 차는 못 가져가고, 가뜩이나 기차도 없는 호남선인데 금요일이다 보니 더욱 없고...


그랬을 것이다. 이야기해 보니 실제 그래서 못 왔다는 분도 몇 분 있기도 했다.




진심으로 대하기


역지사지 해 보니, 그 사람들의 마음이 보였다. 그분들의 미안한 진심도 보였다.


사실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글로 써 보니 이제야 알게 된 그분들의 진심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분들께 진심으로 대하는 것뿐. "니가 안 왔으니 나도 안 가!!" 하는 마음은 이제 없다. (사실 상 치를 때는 약간 그런 느낌도 있었다.)


동료들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만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후회되지 않도록.

"인생 뭐 있어. 일단 해 보자, 안 되면 말고... 죽기 전에 후회하지 말자" 라는 나의 신조가 여기서도 통한다.


죽기 전에 오늘 일을 생각했을 때 후회가 될 것 같다? 그럼 해야지.


진심,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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