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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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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Jul 17. 2023

내안의 너 #11

코어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군요

남편은 사인을 요청하는 간호사에게 환자를 봐야겠다며 그녀의 어깨너머로 돌돌 이동 중인 침대로 가려고 했고, 간호사는 대체 이 보호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의아해하며 사인이나 먼저 좀 하시라고 했고, 아니 그런 사인이 뭐가 중하냐며 환자 좀 보자는데 왜 못 보게 하냐며 남편은 항의하고, 그제야 남편의 착각을 알아챈 간호사는 아 저분 OOO님 아니시라고요!! 하며 상황을 종료시켰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콩이 나오고, 비몽사몽 마취가 깨어가는 저도 나오고, 남편은 우리에게 티도 내지 못한 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마취가 풀려가는데 다리에 아무 감각이 없어 내심 걱정이었고, 무엇보다 사방이 너무 추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요. 이거 원래 이러는 건가 싶어 겁도 났지만 결국 감각은 돌아왔고 추위도 사라졌습니다. 배 위에는 지혈을 위해 돌덩이 같은 뭔가가 올려져 있었고 수술부위에도 진통제 투여를 위한 바늘이 꽂혀 있었죠. 소변줄도 꽂혀 있으니 온몸이 주렁주렁입니다.


침대 등받이를 움직일 수 있는 모션베드가 있는 방이었는데 아마 그게 없었으면 두 배로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요. 심지어 등받이가 알아서 올려주는데도 몸통 전체가 썰리는 듯 고통스러웠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배에 칼을 맞고도 싸우고 그러던데 아, 영화는 영화고 코어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깨달았죠. 할 수 있는 동작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보통의 삶을 살면서 겪을 일이 없는 통증이었고 이 정도가 할부 통증이라니, 일시불 통증이라는 자연분만은 대체 사람이 버틸 수 있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러다 죽나 보다 싶을 때 아기가 나온다는 말이 있는 걸까요? 모든 어머니들 정말, 대단합니다.


어쨌든 좋은 점은 하루만큼 시시각각 몸이 회복되어 가고, 일반식도 먹고, 고통을 참기만 하면 걸을 수도  있고, 직접 콩이도 보러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남편이 찍어다 준 영상 속으로 만난 콩이와, 걸어서 직접 내려가 보는 콩이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당시 코로나로 아기를 퇴원 시까지 직접 만날 수는 없었고, 하루 세 번의 면회만 허락되었습니다. 다른 부부들은 창 너머로 아기를 보며 꺄악 귀여워! 등의 알콩달콩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요.

수술실을 나와 처음 본 콩이는 왠지... 좀 더 우람해 보였습니다. 그땐 이것저것 지저분하게 뒤집어쓰고 울고 있어서 불쌍해 보였는데... 속싸개에 싸인 채 입을 쩝쩝거리고 있는 콩이는 정말 미안하게도 귀엽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고요, 뭔가 아빠를 닮은 느낌이었습니다. 이건 남편도 엄마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고 하니 좀 닮긴 했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귀엽지가 않고 아저씨 같다는 느낌이 조금 들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뱃속에 열 달 내내 넣고 있던 녀석이 혼자 신생아실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쓰였습니다. 이 녀석 무섭겠네, 늘 어둡고 조용한 데에 있다가 나와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데에 있으니 겁나겠네, 하는 마음이 들며 깨달았습니다.


이제 제 인생이 달라졌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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