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의 후예라더니 나약하기 짝이 없...
6월 11일 덴마크 수의식품청이 불닭볶음면 시리즈 중 3종을 리콜조치 한다고 밝혔습니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탕면’(Hot Chicken Stew), ‘2배 매운 핵불닭볶음면’(Buldak 2x Spicy & Hot Chicken), ‘3배 매운 핵불닭볶음면’(Buldak 3x Spicy & Hot Chicken)등 세 제품에 대해 전면 리콜 명령을 내린 겁니다.
덴마크 식품청은 해당제품의 “단일 봉지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의 함량이 너무 높아 소비자가 급성 중독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지나치게 매운 음식은 해로울 수 있다. 제품을 갖고 있다면 폐기하거나 구매한 매장에 반품해 달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특정 사건이나 어떤 계기를 밝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덴마크 정부가 왜 이런 조처를 하게 됐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사전에 예방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불닭볶음면을 한 번도 안 먹어 봤어요. 매운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입 따갑고 속 쓰리고 해서ㅠㅠ
객관적으로는 불닭볶음면이 어느 정도로 매운 걸까?
매운맛을 숫자로 표시할 때 쓰는 단위로 스코빌 지수가 있습니다. 고추나 후추 등에 들어 있는 매운맛 성분인 캅사이신과 피페린 등의 농도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대략의 원리는 해당 양의 매운맛에 설탕물을 몇 배 넣어야 매운맛이 중화가 되는지를 측정해서 나타낸 숫자인데요. 미국의 약사 '윌버 스코빌(Wilbur Scoville)'이 만든 지수라서 스코빌 지수입니다.
가장 매운 3배 매운 핵불닭볶음면의 스코빌지수가 13,000인데요. 수프의 양보다 13,000배 많은 설탕물을 넣으면 매운맛이 나지 않게 중화가 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매운맛이 거의 없는
오이고추의 스코빌지수가 25,
진라면 순한 맛이 650,
동대문엽기떡볶이 1단계(착한 맛) 1500,
초보맛(2단계) 3000,
진라면 매운맛이 2000,
신라면이 3400,
타바스코소스가 5000,
청양고추, 핵불닭볶음면, 엽기떡볶이 매운맛 5단계 10,000,
3배 매운 핵불닭볶음면의 스코빌지수가 13000
그 밖에 틈새라면 극한체험이나 염라대왕라면 등은 15000을 훌쩍 넘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물라면이라 불닭볶음면이 더 맵다는 거!)
바이킹의 후예라더니 나약하기 짝이 없군
이번에 덴마크의 불닭볶음면 리콜을 두고 동료가 했던 말입니다ㅋㅋㅋ 전 이해가 좀 가는 게 북유럽은 매운 음식이 정말 없습니다. 태국이나 이탈리아 식당에 가면 좀 매콤한 것이 있지만 북유럽 전통요리 대부분이 간은 소금으로 하고 그나마 후추정도가 매웃맛을 내는 거라 매운맛에 익숙하지가 않거든요.
서양사람들이 매운 소스라고 하는 스리라차 소스가 붉은 할라페뇨 고추를 베이스로 만든 건데 스리라차소스의 스코빌 지수가 2000, 그러니 13,000의 불닭볶음면은 몸서리치게 매운맛일 것 같습니다.
저만해도 제가 공부하던 스웨덴의 작은 도시에 한국식당이 없었어요. 지금도... 그래서 저도 한동안 한국음식을 안 먹고살다가 어느 날 친구가 라면을 갖다 줘서 한번 끓여 먹었는데 어찌나 맵던지. 전에는 잘 먹던 라면인데도 한동안 매운 음식을 안 먹다가 먹으니까 혀에 불이나고 속이 쓰려 못 먹겠더라고요
미국에서는 핵불닭볶음면이 대학생 사이에서 '시험 기간 잠을 쫓기 위한 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할 정도인데요, 마침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에서 덴마크의 불닭볶음면 리콜 조치를 소개하면서 가디언지 기자 네 명이 이번에 리콜된 불닭볶음면 세 종류를 단계별로 먹는 영상을 찍었는데 반응이 엄청납니다.
영상 제목이 “세 가지 맛 불닭볶음면이 코펜하겐 당국에 의해 금지당했다. 근데, 매우면 얼마나 맵겠어?” (Three flavours of Buldak chicken ramyeon have been banned by authorities in Copenhagen, but seriously, how bad could they be?)
먼저 첫 번째 불닭볶음탕면을 먹을 땐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들 “맛있게 매운맛이다.” “맵다기 보단 좀 짜고 마늘맛, 닭고기 맛이 난다” “점심으로 먹을 만하다”, “입안만 살짝 얼얼한 정도, 톡 쏘는 느낌이다” 등의 긍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두 번째 두 배 매운 핵불닭볶음면을 먹을 땐
퇴직연금처럼 매운맛이 점점 쌓여간다,
두 입째부터 확 매워지면서 얼굴, 등, 목에 열이 나고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맵다.
젓가락에 땀방울이 떨어졌다. 입술이 타들어간다.
평소 매운 거 좋아한다고, 원래도 음식에 칠리를 뿌려 먹는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던 한 기자는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황급히 옆에 있는 흰 우유를 집어들었습니다.
세 번째, 세 배 매운 핵불닭볶음면을 먹을 땐, 남의 고통을 즐기면 안 되는데 어떤 반응이 나올지 기대가 되더라고요. 기사에 참가자들의 회고가 나와있는데,
사실 3단계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 영혼이 내 몸을 떠났던 것은 기억한다. 이것이 꿈인가 현실인가, 내가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순간 내 입과 몸을 통해 온 세상이 불타는 지구의 종말을 보았다. 면을 씹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무렵에는 면의 쫄깃함이나 국물의 걸쭉함은 지옥불에 소각되어 버렸다.
손에 국물을 흘렸는데 치료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영상을 보면 입술은 앵두처럼 새빨갛고 방금 세수하고 나온 사람처럼 땀을 비 오듯 흘리는 남자 기자가 자기 얼굴에서 물이 새는 것 같다고ㅋㅋㅋㅋㅋ
전 세계 먹방 크리에이터의 불닭볶음면 도전기가 유튜브를 도배할 정도로 화제의 음식이었죠. 비록 리콜조치를 받긴 했지만 이번 뉴스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이 바로 삼양입니다. 불닭볶음면 리콜 소식을 전하면서 제조사인 한국의 식품업체 삼양의 이름이 전 세계 뉴스를 통해 소개가 됐거든요. 또 해당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있어 리콜 조치한 것이 아니라, 너무 매워서 리콜이 된 것이기 때문에, 도대체 얼마나 맵길래 하며 오히려 제품에 대한 호기심도 늘어날 거고요. 삼양은 덴마크에 공식으로 항의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기!)
삼양 입장에서는 오히려 호재라고 볼 수도 있는데,
라면의 국내 매출로 보자면 오뚜기와 농심에 이어 삼양이 3위지만, 해외수출은 삼양이 1위입니다. 삼양식품의 연매출이 2023년 지난해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겨 약 1조 2000억 원가량인데, 이중에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8%로 8000억 원이 넘습니다. 덴마크 수출량은 그중에 0.002% 정도인 100만 달러 안팎으로 추산됩니다.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 비중은 2019년 처음 50%를 넘어선 이후 매년 기록을 세우며 늘고 있어요. 1등 공신이 바로 불닭 볶음면, 해외 100여 개국으로 수출 중이라고 합니다. 한때 라면의 종주국으로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일본의 닛신식품이 불닭볶음면의 포장을 베끼고 한글로 이름을 써서 팔 정도이니 이제는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죠.
불닭볶음면은 초기에는 주로 미국과 중국에서 팔리다가 요즘은 유럽과 중동까지 매출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 뉴스로 화제가 돼서 리콜을 감안하더라고 매출은 더 늘어날 것 같아요. 이렇듯 불닭볶음면의 글로벌 인기에 힘입어 지난달엔 삼양의 시가총액이 농심을 앞섰습니다. 무려 1조 5천억 원 넘게 차이가 납니다.
지난해 불닭볶음면 제품군은 해외에서만 6천800억 원어치가 팔렸습니다.
매운맛이 점점 세지고 있다는 느낌 안 드세요?
스코빌지수 조사하다 보니 매운맛 하면 먼저 떠올리는 신라면의 스코빌지수가 초기에는 1300이었다가 2015년에 2700, 현재는 3400으로 올라갔더라고요. 이제는 이 정도 돼야 매콤하다는 소리 나온다는 거겠죠. 이렇게 마치 인플레이션처럼 매운맛도 우리 사회에서 점점 강도가 세지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매운맛을 선호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느는 것과 상관이 있다고도 하던데 1인당 고춧가루소비량을 보면 2010년부터 급격히 늘었습니다. 마라탕이 인기를 얻은 것도 그 무렵부터죠.
저는 스트레스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슴슴한 맛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