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임시완의 진짜 시작
“완전 사이즈 나오지, 애가 순박한데 세련되고, 맑고 투명해. 근데 적당히 샤프해.” <원라인>의 홍 대리(박선영)가 민 대리(임시완)의 얼굴을 뜯어보며 하는 말이다. 순진해 보이는데 세련돼 보이고, 맑고 투명한데 지적으로 보이는 외모. 배우 임시완의 외모에 대해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다. 다들 알다시피 임시완은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로 데뷔했다. 소속사 이름이 스타제국이라고 하여 소속사에서 만든 남자 아이돌 그룹명이 그러하다니. 풋, 비웃음이 나올 법한 이름이지만 그룹의 외모담당 임시완이 너무도 열심히 율동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10초 내외의 노래를 부르러 무대 중앙으로 튀어나올 때마다 그저 응원의 박수를 칠 수밖에. 거기에는 주어진 일이라면 뭐든지 성실히 해낼 것 같은 남동생, 그런데 위기의 순간에는 큰 오빠처럼 듬직하게 변모할 것 같은 착한 소년의 얼굴이 있었다.
얼굴이 다 했다
임시완의 연기 데뷔는 드라마로 이뤄졌다. MBC <해를 품은 달>에서 연우(김유정)의 오빠이자 세자 이훤(여진구)의 글 선생 허염을 연기했다. 입궁 때마다 온 궁녀들을 설레게 하고 그 미모가 출중해 세자와 불미스러운 소문까지 나는 ‘꽃도령’ 역할에 이만한 타입캐스팅도 없었다. 기실 <해를 품은 달>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시련은 허염의 미모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허염에게 첫눈에 반한 민화공주(진지희)가 그의 여동생과 오빠인 이훤의 결혼을 방해하기 위해 흑마술을 용인하면서 악연이 시작되는 것이니, 이야기의 원동에 임시완의 해사한 외모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더 말해 무엇하랴. 2012년 연기에 첫발을 찍은 임시완은 이후 매해 1~2개씩 꾸준히 드라마와 영화로 연기 폭을 넓혀갔다.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할 법도 하지만 임시완은 다작하지 않는 배우다. 임시완은 <씨네21>(1039호)과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한번에 두 작품을 한 적이 없다. 한번에 여러 개를 하면 오히려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시대와 좀 동떨어진 사람이다. 그래서 작품하는 동안에는 다른 대본을 아예 못 본다.”
욕심내지 않고 한발씩 느리지만 천천히 걸어온 그에게 기회는 연달아 찾아왔다. ‘빨갱이’ 누명을 쓰고 끌려가 갖은 고문을 받는 진우를 연기한 <변호인>(2013),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고퀄리티 드라마’ 평가를 받은 tvN <미생>(2014)의 장그래는 임시완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변호인>이 큰 울림을 주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억울한 피해자 얼굴과 몸을 체화한 임시완의 공이 크다. 이리 채고 저리 채고, 항상 주눅 들어 있는 장그래로 분한 <미생>에서의 연기는 또 어떠한가.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로 소개되지만 <미생>은 장그래라는 초식동물이 거친 세렝게티와 같은 회사에서 조금씩 능력치를 ‘랩업’해가며 성장해가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1회에서는 아빠 양복을 입은 아이처럼 어깨며 등이 움츠려 있던 ‘미생’ 장그래가 상사의 인정을 받으며 점차 몸짓과 표정이 커져가는 과정을 임시완은 에피소드마다 미세하게 그려내며 그의 변화를 좇게 만든다.
남자의 세계에 떨어진 청년
임시완의 출연작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여배우와 호흡을 맞춘 로맨스는 거의 없고 주로 남자 선배와 짝패를 맞춰왔으며 상대 남자 배우로부터 보호받으며 ‘브로맨스’를 촉발시켜왔다는 것.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아빠와 갑자기 함께 지내게 되는 고등학생 ‘시완’ 역을 맡은 MBC 시트콤 <스탠바이>에서는 심지어 아빠 역의 류진과의 브로맨스가 싹텄을 정도였다. 남자 무리 속에서도 경쟁구도의 한축을 차지하지 않고 도리어 강자에게 보호받고 간택되어 특훈을 받아 후계자로 길러지는 청년, 바로 임시완의 몫이다. <미생>에서는 오상식(이성민)의 가르침을, <변호인>에서는 송우석 변호사(송강호)의 변호를, <원라인>에서는 장 과장(진구)의 교육을 받아 후계가 되지 않았는가. ‘순박한데 세련되고, 맑고 투명한데 적당히 샤프한’(<원라인>의 대사) 임시완의 청순함은 약육강식 세계에서 물고 뜯으며 왕좌를 차지한 맹수마저 무장해제시키는 것이다. 극에서 으레 여배우의 몫이었던 보호받는 아련한 역할을 손에 쥐어주어도 크게 무리가 없는 남자 배우, 때론 서울 오빠(드라마 <응답하라 1997)>)가 어울리지만 어수룩한 부산 대학생(<변호인>)으로도 보이는 남자, 바로 20대의 임시완이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에서 임시완은 교도소 신참내기 현수를 맡았다. 현수는 교도소 내 1인자인 재호(설경구)의 눈에 들어 ‘나쁜 놈이 되는 법’을 전수받는다. 이번에도 조금씩 성장해 나쁜 놈이 되어갈 임시완을 기대해봄직하다. “믿는 놈을 조심해라, 사람을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재호의 대사에서 엿볼 수 있듯 <불한당>은 믿음에 대한 영화다. 세상 제일 믿음직한 얼굴을 하고 가장 악랄한 놈이 될 때, 그 틈이 주는 고혹 또한 클 것이다. <불한당>은 선량함의 정수와 같은 임시완의 얼굴을 역전의 이미지로 활용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다.
임시완은 입대를 앞두고 있으며, MBC <왕은 사랑한다>가 하반기 방영 예정이다. <불한당>은 임시완의 20대의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다. 기대가 되는 신예 배우에서 제 몫을 하는 일인분의 배우로 충실히 성장한 임시완이 청년에서 남자로 표정을 바꾸는 첫 영화이기도 하다. ‘착하다 성실하다 예쁘다’라는 미명 아래에서 조금씩 연기의 폭을 넓혀온 임시완. 그의 마지막 변신이 궁금하다면 <불한당>을 5월의 체크리스트에 넣어두자.
글 김송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