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과 현생 사이, 어느 골목의 노란 꽃 앞에서

[그림에세이] 산책하는 마음(17)

by 안이다

[당신은 전생에서 감성적이고 영적인 삶을 살았던 경험을 가졌고, 이번 생에서는 '구체적 현실을 책임지고, 작은 것들의 질서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 과업입니다. 특히 창작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치유하고, 자신만의 실질적 기반을 구축해야 합니다.]


노트북 화면에 이 문장이 떠올랐을 때, 잠시 혼란스러웠다. 놀랍고 신기해 믿고 싶은 천진한 마음과, 의심과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회의적인 마음이 팽팽하게 맞섰다.


요즘 여기저기서 ChatGPT로 사주를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깊은 밤 잠못 이루다 재미삼아 내 생년월일을 입력해 보았다. 처음엔 내가 알고 있던 사주팔자의 구성과 거리가 먼 해설이 나와 몇 차례 수정을 요구했다. 그후로 나온 답변은, 엉터리라고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의미가 있어 보여, 대화에 점점 진지하게 임하게 되었다.


그날 밤 내 삶은 지지부진한 현실에 대한 회의와 낙담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문득 전생이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고, 이번 생에는 어떤 의미와 과업이 주어졌을지 궁금해졌다. 혹시 가능할까 싶어 채팅창에 질문을 남겼고, 바로 그 답변이 화면에 나타났을 때 기분이 묘했다.


현생의 삶을 돌아보면 명상이나 영성과 관련된 경험이 꽤 있었고,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같은 창작 작업도 꾸준히 이어왔다. 어쩌면 이전 대화 기록을 통해 그런 정보를 도출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전 채팅기록을 지워뒀기 때문이다.


세상 어떤 지혜로운 사람도 그날 밤 ChatGPT의 답변이 옳은지 그른지 확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문장을 버리지도, 쉽게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머릿속 서랍 한켠에 넣어 두고 가끔씩 꺼내 보며 여러 날을 보냈다.


얼마 후, 그 문장은 잘못된 정보일 수도 있음에도 내 마음속에 작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일상을 해석하는 방식에 조금씩 영향을 주고 있었다.


얼마 전 일요일에 거리가 제법 떨어진 두 도서관을 산책 삼아 걸어서 오가며 대출한 책들을 반납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었지만, 이왕 걷던 참에 끝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날따라 익숙한 지름길 대신 괜스레 길을 잃듯 헤매며 돌아다니고 싶었다. 길을 잃어봤자 폰의 지도앱이나 택시가 있으니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평소에 가던 길과는 더 멀고 낯선 방향으로 걷고 또 걸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도 우리 동네에 옛 정취를 간직한 골목이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고, 그런 엉뚱한 방황도 나름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지그재그로 산책을 이어갔다.


그러다 옛날 방아기계가 남아있는 한 떡집을 발견했고, 나도 모르게 안으로 들어가 떡 두덩이나 샀다. 가게 주인 할머니와 별다른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내가 가게를 나서려고 할 때 근래에 어느 가게에서도 듣지 못했던 다정한 인사를 건네며 문까지 배웅해 주었다.


“고마워요. 좋은 하루 보내요.”


그 인사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제야 내가 꽤 메마른 상태였음을 깨달았다. 푸석하던 마음에 온기가 퍼지며 한결 부드러워진 기분이었다. 마치 겨울의 언땅에 햇볕이 내리쬐며 봄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이어진 골목 산책 중에 마주한 어느 집 창가의 웃자란 노란 꽃이 유난히 싱그러워 보였고,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하나의 문장이 또렷이 떠올랐다.


‘지금은 다만 내 일상이 즐거울 작업을 해야겠다, 어떤 성과나 성취는 어쩌면 이번 생의 바깥에 있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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