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부터 서른이 넘어서까지 나의 고된 숙제는 무엇이 되는 거였다.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 나는 열심히 달려왔고 헤맸고 넘어졌으며 결국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잃어버렸다. 나란 사람을 그 어떤 하나로 정의해 놓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이 되기 위해 그렇게 고단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정의하게 되었다. <인간 실격> 드라마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생각해 보면 꼭 뭐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뭐라도 되고 싶었나 봐요. 근데 잘 안되었어요"라는 이부정(전도연 분)의 대사가 나의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다 곱씹어보게 했다.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엇이 되고 싶었던 고단하고 고뇌하던 시절을 끄덕이며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그랬던 거구나 무엇이라도 되기 위해 달려갔고 그 무엇이 되지 못해 좌절하기도 했다는 것을. 남에게 보여 주는 내가 아닌 그저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것이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무엇이 되기 위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남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그 무엇이 되어 있다는 확신이 든다. 나만 그 무엇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되기 위한 꿈을 그리지만 잘 되지 않아 좌절한다.
누군가 너는 무엇이 꼭 되어야 한다고 말해왔던 것일까 그 무엇이 되지 못하면 결여된 인간으로 취급받았던 것일까. 그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태어나면서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그 무엇이 되기 위한 거란다라고 학습된 듯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 무엇이 되기 위한 길을 간다. 이미 존재 자체만으로 나는 무엇이 되어 있는 것인데 위대하고 원대한 것만 꿈꾸던 나의 그 무엇은 그것에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경쟁해서 남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채찍질해왔던 것 같다.
그 채찍질은 살아가는 원동력은 되었지만 멈춤 없이 달려만 가다가 번아웃이 되었다.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살다 보면 순간순간에 그 무엇이 자연스럽게 되어있을 거라고 그래서 그 무엇이 되기 위해 나를 너무 태워내지는 말자고, 어느 순간 그 불씨가 꺼져 다시 타오르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그 무엇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