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편리 Mar 20. 2021

코로나 시국에 급성폐렴이라니 8

여정의 마침표, “나 코로나 아니고 급성폐렴이다!!(쩌렁 쩌렁)”


"뚜루루루....딸깍"

긴 착신음 단 한 번만에 전화가 연결된 곳은 보건소였다.

"며칠 전에 했던 코로나 검사결과지가 필요해서 연락드렸는데요, 확인 서류는 어디로 가서 받으면 될까요?"

"제 휴대폰 번호 알려드릴테니, 이메일주소를 문자로 보내주세요!"

어라, 이 쉬운 일처리 대체 뭐지, 너무 간단해서 약간 어안이 벙벙해져 얼른 전화를 끊고 알려주신 번호로 이메일 주소를 남겼다. 초조한 시간이 5분도 채 되지 않고 폰에 메일 수신 알람이 울렸다.  아... 감동의 대한민국. 디지털 행정의 끝판왕은 역시 코-오리아! 아닌가, 대-한민국 짝짝-짝-짝짝!이제 와 생각하니 빠른 일처리를 위해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개인정보를 흔쾌히 넘겨주신 직원분 성함도 못 물어봤다.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나는 얼른 진료실 데스크에  검사결과 파일을 띄운 휴대폰을 내밀었다. 따끈따끈한 자료입니다. 이걸 봐주세요! 하지만 간호사님은 예상과 달리 송구한 표정을 일 뿐이었다.

"아.. 정말 죄송하지만 프린트 해오실 수 있나요?"

고열 이후로 워낙 이래저래 거절을 많이 당하다 보니 이정도는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경..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허옇게 말라붙은 환자보더러 보건소에 다녀와라, 프린트를 해와라 말해야 하는 입장도 얼마나 난처할 것인가.

“혹시 여기서 할 순 없겠죠? 아님 근방에 프린트 할 수 있는 곳 이라든가...”

"글쎄요 여기도 임시 진료실이라 프린터기는 없고 근방에 다른 복사점이 있는지는 제가 몰라서요.."

서너발짝 앞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가 왜이렇게 길고 먼 것인지, 해결될 기미만 보이면 또다시 언덕이 나타난다.

"음... 프린트만 해 오면 더이상 제가 할 건 없는 거죠?"

"네, 서류만 확인되면 됩니다. 저희도 제출을 해야해서요."

내게 남은 관문은 프린트, 이것 딱 하나만  해결되면 된다. 희망의 끈을 절대 놓쳐선 안 됐다. 심기일전해 얼른 포털앱을 켜 주변 복사점,문구점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검색되는 건 1km바깥의 문구점들 뿐.... 잠시 좌절하는 사이 이 지역 자취살이 14년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문구점의 간판 하나가 내 뇌리에 어렴풋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없어진 문구점은 아닌가 싶어 '00역 드림디포'를 검색했더니 내가 기억했던 그 자리에 영업중인 그 문구점이 바로 떴다. 유레카! 나는 한달음에 문구점을 향해 병원 대기실을 박차고 나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병원 지하1층 편의점에서 프린트를 할 수 있었다...)


"흑백이세요, 컬러세요?"

문구점 점원분의 물음에 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올컬러요!’ 외쳤다.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생면부지의, 절대 무관한 사람이라는 이 증표를 총천연색으로 세상에 엄숙히 알리리라! 한장에 천원, 도합 이천원을 시원하게 지출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긴장이 점점 풀렸던 탓인지 아침에 먹은 타이레놀 약빨이 거의 다 되어 다리가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나의 방패가 되어 줄 컬러 확인서


주말에 응급실 다녀온 이후부터 급작스레 기침 증상이 새롭게 추가되었고 기침을 할 때마다 심장 뒤쪽이 아파왔던 터라 점점 숨 쉬기도 힘들었다. 바짝 비틀려 짜진 빨래마냥 내 몸은 쪼그라지고 있었지만 마지막 관문을 향해 후덜대는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포기할 순 없었다. 원펀치를 세게 맞고 쓰러져 죽음을 목전에 뒀던 야인시대 김두한의 각성장면처럼 ‘일어나세요!, 어서 일어나거라!’ 와 같은 응원의 환청이 들리는 듯 거짓말처럼 우리 가족들, 고마운 얼굴들이 주르륵 필름처럼 되새겨지며 젖먹던 힘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고열로 고통받는 사이 마치 세균덩어리라도 된 듯 취급받던 지난한 시간들도 빠르게 머리에 스쳤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두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보상받고 싶었다. 나 코로나 아니다! 전염성 아니다! 횡단보도에서 미친 사람처럼 쩌렁쩌렁 외치고 싶었다. 갑자기 다 괜찮을 거라는 안도감이 몰아쳤다.  몇 번의 고난 끝에 병원에 도착했고 서류도 무사히 제출할 수 있었다.


“김편리님,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드디어, 파이널리, 마침내!  진료실 입성. 지난 주말 응급실서 찍어놓은 각종 사진들을 주의깊게 보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정도면 정말 정말 아프셨겠는데요. 염증이 폐에 정말 넓게 퍼졌어요. 병원 들어오기까지 너무 힘드셨죠? 고생 많으셨어요."

온화한 말씨로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깊은 공감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두 말하면 입 아프죠..”

내 쓴웃음에 의사선생님은 하하.인내심이 있으신 분이네요, 웃으시곤 안경을 고쳐 쓰셨다.

 "예상했던 대로 급성폐렴이 맞아요. 폐렴균이 전염성이란 건 맞지만, 웬만한 건강한 성인들은 이겨낼 수 있거든요. 폐렴에 걸렸다는 건 면역이 굉장히 떨어졌다는 뜻이에요. 보통은 어린이나 노인들이 많이 걸리니까요. 전염성이라고 물어보신다면 코로나같은 전염성은 아니에요. 코로나 확진도 아니구요. 입원합시다. 누워서 항생제 쫙쫙 맞고 나면 염증도 없어질 거예요.안심하세요."

단호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카리스마, 저 믿음직스러운 말투까지. 아프기 시작한 후로 처음 느끼는 안도감이었다. 그 후로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바로 입원수속을 밟고 집으로 돌아가 정신없이 짐을 챙겼다. 생애 첫 입원을 하면서 뭘 챙겨야 할 지 몰라 아기 낳느라 병원 갔던 친구들한테 연락해 그들이 알려준 대로 물건들을 가방 속에 마구 집어넣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면회는 금지,보호자도 단 한 명만 하루 2시간 있다가 갈 수 있다는 안내를 듣고 병실로 올라갔다. 환자도 의사도 간호사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긴장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고 조심하는 이들만이 있었다. 간호사분들의 눈은 피곤에 절어있었지만 누구보다 치열해 보였다. 이 시국에 아픈 내가 죄송스러울 만큼.

침대를 배정받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뒤 여러가지 검사를 진행하며 항생제 링거를 사막의 소나기처럼 쭈욱 쭈욱 빨아들이다 보니 하루가 다 갔다. 고열과 추위를 롤러코스터 타며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냈지만, 밤이 되어 병실이 캄캄하게 소등되자 온 몸에 긴장이 풀리며 결승점 없는 레이스 같았던 지난 일주일이 그저 하룻밤의 꿈만 같았다.

‘나는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된 거지, 진료 거부가 이어져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대학병원이 근처에 없었다면 나는 어디를 두드렸어야 하지. 두 번째 코로나 검사 때 보건소에서 앰뷸런스를 보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지? ‘....외국의 쿼런틴 정책처럼 열이 났을 때 동네 병원도 가지 못하고 ‘일단 증세가 더 심해질 때까지 집에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면  난 진짜 죽지 않았을까? ....‘만약’을 전제로 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입원 첫 날 고열이 잘 잡히지 않아 동 틀 때까지 뜬 눈으로 지새우면서 떠올린 결론은 ‘나는 살았고, 끝내 거부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내생애 첫 입원생활이 시작됐고 당초 예상했던 일주일이 모자라 결국 일주일을 더 연장해 2주를 꼬박 입원했다. 햄버그 스테이크, 카레, 프렌치 토스트, 짜장밥 등의 주말 특식이 점점 더 기다려질 만 하니 퇴원이었다. 병원 밖을 나오니 거리는 텅 비었지만 봄볕은 따스했고 곳곳에 꽃은 만발했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으며 간만에 주사가 꽂히지 않은 자유의 몸으로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에 이토록 적막한 거리라니. 두려움으로 물든 도시, 그러나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며 마냥 즐겁지만도, 슬프지만도 않은 감정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2020 년 5월, 그렇게 난 예상치 못했던 급성 폐렴으로 황당하게도 서른 중반에 죽음을 떠올렸다. 약 10개월이 지난 지금은 아프기 전의 일상과 조금은 다르지만 같은 궤적을 그리며 느리지만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오그라들지만 새삼스레 말해 본다. 나는 살아 있다!





-급성폐렴 앓이 경험에 관한 마지막 후기가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시국에 급성폐렴이라니 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