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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리 Feb 17. 2021

코로나 시국에 급성폐렴이라니 7

똥개훈련도 아니고.

우주인 복장의 의사 선생님은 앉아 있던 내게로 다가와 생각보다 구수한 말씨로 입을 떼셨다.


“어제 씨티 찍은거 보고 왔는데, 다행히 코로나 검사는 안해도 되지 싶습니더~”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듯 싶었다.


“근데, 하~ 이게 우째 마 염증 퍼진 모양이 심상치 않은기라. 어찌다 요래 악질로 생기가~. 뭔일을 하시는데 그래 안좋은 폐렴이 걸렸어요? 젊은 성인이 요래 걸리기도 쉽지 않은데.”

“저 그냥... 작업실에 처박혀서 글만 쓰는데... 작가예요 글쓰는..”

“그래요? 방에만 처박혔는데 왜 걸렸지? 암튼 마 폐렴이라는게, 크게 보면 전염성으로 생기는거니께네~ 격리실로 들어가셔야 되는 게 맞는 기라... 수액 한 대 놔주면 좋을텐데, 오늘 환자가 많아가 격리실이 없어요 오늘. 타이레놀 몇 알 먹었어요?"

"6알요."

"성인은 하루에 8알까지 먹어도 문제 없어요. 오늘만 좀 참고 내일 외래 다시 와요. 예약 해 줄테니깐요.”


3분 남짓한 짧은 대화였지만 방호복 속의 의사선생님은 비지땀을 한가득 흘리고 있었다. 산소 부족으로 거칠게 내쉬는 호흡마다 헬멧 안엔 뭉게뭉게 빼곡히 입김이 피어올라 눈도 마주치기 힘들 지경이었다. 거대한 대학병원까지 힘겹게 도착해서도 또다시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베드가 없어 입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예민한 시국 한가운데 내가 어떤 어려움에 던져진 것인지를 나타내는 방증이었다. 내일 다시 병원에 온다 해도 난 또다시 이태원을 방문한 코로나 의심환자일 것이며, 열을 동반한 위험인물로 분류될 것이고, 오늘처럼 진료를 기다리다가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참담한 두려움을 느꼈다.


한시간 가량을 기다렸는데 격리실이 없어 수액을 못놔준다니 그래서 돌아가야 한다니...그리고 그중에서도 내 뇌리를 강하게 때린 말은 “전염성” 이라는 말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안심을 했는데 어차피 누군가에게 전염을 시킬 수도 있다면 피차일반 아닌가? 그동안 같이 일했던 작가님이나 같이 밥먹었던 친언니나, 가족모임에서 만났던 조카들, 주일 성가대 분들의 얼굴이 주루룩 필름처럼 스쳐갔다. 이러나 저러나 민폐를 끼친 건 마찬가지였다. 죄송함, 불안감, 절망감 복잡한 마음이 뒤엉켜 울음이 나올것 같았다.


“ 봐줄 수가 없으니 돌아가” , “ 전염성”


이 두가지 핵심 키워드에 묵직하게 2연타를 거세게 맞은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아이스팩을 양 겨드랑이에 끼고 또다시 타이레놀에 의지하며 새벽동안 꼬박 ‘전염성 폐렴’이라는 무시무시한 워딩을 곱씹으며 '몇 시간만 참자...'를 혼잣말로 불안으로 밤을 지새웠다.



2020년 5월 18일 월요일

지옥같던 주말을 견디고 대망의 외래 진료일, 월요일이 됐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과 약을 꾸역꾸역 먹고 한달음에 병원에 도착했다.

코로나 음성임이 확인된 고열의 환자가 병원입구의 삼엄한 기초체온 경비를 거치지 않고도 외래진료실로 입장할 수 있는 <안심진료소>라는 곳으로 예약되어 있었다. 접수대의 간호사분이 물었다.


“환자분, 코로나 음성 나온 결과지 있으신가요?”


결과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건 전날 응급실에서도 듣지 못한 금시초문인 절차였다. 어차피 주말이라 결과지라는 걸 얻을 수 있을지 없을 지도 몰랐다.


“결과지요? 어제 응급실에선 보건소 음성 확인 문자 2개 온거 보여주면 된다고 하셨는데요.”

“그건 저희병원에서 실시한 선별진료 받으신 분들에 한해 보내드린 문자만 해당하는 사항이구요, 보건소에서 받으신 분들은 보건소에서 직접 발급한 결과지만 받아요. 오늘 외래 별로 없어서 언제 오셔도 괜찮으니까 지금 직접 가셔서 받아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순간, 정말 그러면 안되지만.... 세상의 온갖 추잡한 상욕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올 거 같았다. 보호자도 없이 고열의 홀몸으로 응급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 드디어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 앞에서 '종이쪼가리' 때문에 약 5km 거리의 보건소를 들렀다가 온다는 건 내 체력이나 인내심이 허락할 문제가 아니었다. 화는 났지만 이 중 어느 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없었기에 누구에게 화를 내야할지도 몰랐다. 탓할 사람도 없었다. 이들은 그저 환자와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 매뉴얼대로 할 뿐 아닌가. 굳이 제일 잘못한 사람을 꼽자면 이 시국에 이태원에서 떡볶이를 사먹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타이밍 좋게 급성 폐렴에 걸려버린 나였다.


내 앞에 닥친 똥개훈련은 거쳐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과연 나는 보건소까지 가게 될 똥개의 운명인 것인가....



-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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