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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리 Feb 17. 2021

코로나 시국에 급성폐렴이라니 6

병원: 봐줄 수 없으니 돌아가


“오늘은 음압 격리실도 꽉 차서 베드가 없어요. 코로나 의심군이셔서 일반 베드는 쓰실 수가 없어서요.”
“왜죠? 저 보건소에서 검사한 거 음성인 거 어제 다 보셨고, 다시 아프면 바로 오라고 하셨는데...”
“환자분이 가져오신 검사는 저희 병원에선 인정 안 됩니다.
저희병원에서 선별진료 다시 한 번 더 받으셔야 할 수도 있어요.”


 난생 처음 음압 격리실이란 곳을 경험하며 단비같던 수액을 맞고 살아난 난, 철옹성같던 응급실의 진입에 성공했다는 그 기적같은 결과를 ‘나의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오만을 저질렀다. '또 아프면 다시 오라' 던 응급의학과 교수님의 말씀이 무색하게, 또다시 응급실의 문턱을 한 발짝도 넘지 못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한 결과였다. 단순히 '방심했다'고 표현하기에 코로나의 벽은 처참하게도 높고 거대했고 단단했다.



‘살겠다.’

드디어 병원에 다녀온 내가 가장 처음 뱉은 말이었다. 배도 고프고 지치긴 했지만 열기운도 많이 내려갔고 주말 하루 정돈 나 혼자 버텨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전까지 입원이란 걸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내게 ‘월요일에 다시 와서 입원수속 밟으시라, 아프면 내일이라도 다시 오시라’ 던  의사선생님의 말씀은 어떤 응원보다 강력한 부적이었다. 그러나 하루만 버텨보자던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이 흐를 수록 내 숨은 짧아지기 시작했고 가빠진 호흡은 목 끝을 조여오며 몸의 상태는 지금껏 겪었던 모든 고통 중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죽겠다’

병원에서 나온 지 불과 대여섯 시간 만에 느낀 생의 위협이었다. 이승과 저승의 돌다리 위에서 아슬아슬 위태롭게 가랑이를 찢는 듯한 기분이었다. 잠깐이라도 균형을 잃고 삐끗하면 펄펄 끓는 무시무시한 용광로 속으로 풍덩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난 이를 악물고 침대에서 뜬눈으로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약기운이 덜 돌았겠지....' 느리게만 흘러가던 시곗바늘은 어느덧 새벽 3시를 훌쩍 달려가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 밖엔 여명이 점점 떠오르고 있었다.


5월 17일 일요일 새벽


열이 다시 나면 먹으라며 처방해 준 타이레놀도 벌써 6알을 넘게 먹었고, 새벽에 잰 체온은 39도... 전자 체온계조차 '너 응급실 당장 튀어가, 안가?'라며 윽박지르는 듯 ’띠띠띠띠띠’ 하는 경박한 신호음으로 날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응급과 선생님이 타이레놀 6알 이상은 먹지 말라고 하셨었는데.... 난 결국 타이레놀을 한 알 더 먹을 용기가 없어 양 겨드랑이에 냉동실에 있던 아이스팩을 끼고 새벽 내내 버텼다. 몇시간 눈도 못 붙였는데, 아침이 되자 내 열에 꽝꽝 얼어있던 아이스팩은 모두 물로 녹아있었다. 오전 9시가 되자마자 엉금엉금 옷을 주워입고 다시 응급실로 향했다.


“어제 아파서 응급실 왔었고, 다시 아프면 오라 하셔서 왔는데요..”

"고열이신가요?"

"네? 네.."

"최근 일주일 사이에 이태원 다녀오셨나요?"

"...네."


기시감이 드는 대화를 똑같이 하고 있자니 가슴 한 구석이 퍽퍽한 밤고구마 스무 개는 먹은 것처럼 갑갑해졌다. 이천 이십 년 오월의 이태원발 코로나 확산 시국은 모두가 긴장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아님이 애진작에 밝혀진 나에게도 예외는 없었으며 단 한 치의 허술함도 용납치 않았다.

난 다시 고열이 지속되는 이태원이 직장인 고위험군 인물이 되어 조사(?)를 받았고, 또다시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처럼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보건소에서 받은 문자를 들이 밀며 선별진료소 음성결과가 두 번이나 나왔음을 어필했지만

“보건소 결과 밖엔 없으시죠? 저희 병원에서 선별진료 직접 받으신 건 아니구요?”

라는 응급실 접수부 선생님의 한 마디에 바로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음압격리실도 꽉 차서 베드가 없어요. 코로나 의심군이셔서 일반 베드는 쓰실 수가 없어서요.”

“왜죠? 저 보건소에서 검사한 거 음성인 거 어제 다 보셨고, 다시 아프면 바로 오라고 하셨는데...”

“환자분이 가져오신 검사는 저희 병원에선 인정 안 됩니다.저희병원에서 선별진료 다시 한 번 더 받으셔야 할 수도 있어요. 일단 기다려 보세요.”


아니 의사양반, 이게 무슨 황당한 말씀이란 말입니까. 소인은 그저 의사슨상님께서 다시 오라해서 갔을 뿐이온데.... 오라해서 왔더니 들여보내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을 어찌 그리 쉽게 하시는 건가요. 아니, 구두계약도 계약 아닙니까 라는 등의 억지를 부리며 펄펄 뛰고 싶었지만 이미 뛸 힘도 없거니와 내 뒤로 다리가 부러진 사람, 피부에 두드러기가 잔뜩 나서 진물이 나는 사람이 줄줄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입이 다물어질 수 밖에. 방도가 없었다.


그보다  두려운  까지 뚫는 듯한 면봉 어택을,  견뎌야  지도 모른다는 사실. 환장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저항해 봤자 소용없는 . 악법도 법이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으니 내겐 선택지 따윈 없었다. 그저 살고 싶으면 이곳의 룰에 따라야   밖에.   없이 대기석 의자에 앉아 1분을 억겁만큼 느리게 느끼며 삼십분여 가량을 병든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는 사이...


응급실 입구에서부터 아우라가 느껴지는 건장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어떤 환자예요?"

"저쪽이요."


나는 얼른 고개를 들었다. 간호사 분이 말씀하신 '저쪽' 에 해당하는 집게손가락은 나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했다. 간호사 선생님의 손끝을 따라 나를 나즈막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함께 보였다. 마치 달에 막 착륙한 우주인같은 모습으로 흰 보호장구를 겹겹이 입으신 의사선생님께서 헬멧 안에 희뿌연 김을 한가득 담은채 내쪽으로 한발짝 한발짝 다가오는 모습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였다. 여기가 병원이야 우주야?


Image by brightzola34 from Pixabay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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