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특급
반공개(?) 였던 소변검사는, 팔뚝의 정맥을 타고 쭉쭉 들어오는 해열제의 힘으로 간신히 붙잡고 있던 내 멘탈을 탈탈 털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더이상 저항할 힘도 없었다. 기절하듯 쓰러져 수면도 기절도 아닌 상태로 아득한 무의식의 세계를 허우적대고 있는데, 응급의학과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피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어떤가요?”
“염증수치는 기준치 이상으로 매우 높은데 염증부위가 엑스레이상으로 보이지 않네요. 엑스레이가 찍어내지 못하는 부분에 염증이 퍼졌을 가능성이 높으니 씨티까지 찍어봐야겠네요.”
비몽사몽의 나는 그 와중 씨티 첫 경험이라는 생각에 약간 설레였다. 응급실 음압격리실 체험에 이어 씨티 체험이라니, 내게 이토록 수많은 첫경험을 안겨준 일상이 최근들어 또 있었나. 어쨌든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그 커다란 기계 속에 들어가볼 수 있다는 묘한 기대감이 나를 들뜨게 했다.
“어떻게 가면 되나요?”
“그냥 누워 계세요”
그렇게 씨티실엔 침대에 누운 채로 이동되었다. 침대이동을 도와주시는 선생님의 프로페셔널한 복도 코너링에 약간의 멀미가 올라왔다. 거친 드리프트에 하얗게 질린 채 도착한 내게,씨티실 선생님은 링거에 조영제를 투여하시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의를 주셨다.
“조영제 투여 후엔 곧 몸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갑갑해짐을 느낄 수도 있어요.자연스러운 반응이니 놀라지 마세요. 아프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아요.”
몸이 뜨거워지고 갑갑해지는데 고통스럽지는 않다는 모순된 설명에 이해가 될 듯 말 듯 잔뜩 긴장한 나는, 물에 푹 적셔진 목각인형처럼 무겁게 일어나 CT촬영기 베드에 덜덜 떨며 누웠다.
“시작합니다. 긴장 푸세요”
기계는 곧 웅장한 진동을 울리며 내 몸을 동굴같은 컴컴한 내부로 스르륵 밀어넣었다.기계가 큰 소리를 내며 촬영을 시작했는데도 의사선생님이 경고한 조영제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 뭐야 별 거 아닌...드아아아아악!!”
역시 방심은 금물이었다. 내가 온몸으로 느끼는 이 기분을 내가 아는 지구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던가? 조영제 반응은 그야말로 화끈하게 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온 손발 끝이 저릿해지며 심장은 타는 듯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고 숨은 턱 막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고통스럽지는 않다는 말이 딱 맞았다. 굳이 묘사해 보자면 마치 미래시대에 대량 생산된 AI로봇 중 하나가 되어 지능과 감정을 프로그래밍하기 위해 기계에 묶여 원치 않는 수천억 개의 감정뉴런을 주입하는 기분이었다. 어릴 적 보았던 백투더 퓨처의 조악한 기계를 타고 시간여행할 때 느낄 법 한 뜨겁고 혼란스러운 기분, 거기다 헐크가 거대하게 변신하기 전 힘줄과 혈관이 마구 요동치는 그런 기분!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하자면 내 손발과 가슴에서 90년대 TV화면조정시간 화면이 정신없이 틀어져 있는 기분이랄까...!
새벽부터 한 끼도 먹지 못하고 오후 4시... 난 다시 멀미 드리프트의 과속주행을 즐기며 음압격리실에 수납되었다. 이쯤 되니 신기하게도 배고픔이 느껴졌다. 꼬르륵 하는 소리가 두 귀에 생생하게 들렸다. 나는 참 생의 의지가 충만한 인간이구나. 배고픔을 잊기 위해 억지로 잠을 청했고 두 시간 정도 곯아 떨어졌나. 교수님이 다시 들어오셨다.
“심장에 가려져 엑스레이상에선 안보였던 폐쪽 염증이 씨티상에선 보이네요. 염증 부위가 생각보다 커요. 정말 아팠겠네요.”
“코로나는 아니에요?”
“네, 급성폐렴인 것 같네요.”
드디어 마침내! 음압격리실에 들어 온 이후로 가장 듣고 싶던 말을 들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아니다’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탁 풀렸다. 열이 나기 시작한 이후로 내내 나의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던 ‘코로나 확진자’라는 꼬리표를 이젠 완전히 뗄 수 있다는 해방감은 당장 이 침대를 박차고 일어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에너지를 선사했다. 교수님은 입원을 권장하시면서도, 어차피 지금 입원해도 호흡기내과 외래 교수님이 안 계셔서 응급의학과에서 준 처방으로만 지내는 게 전부이니, 집으로 돌아가 처방해준 해열제와 항생제로 주말 이틀만 버텨보라 하시곤 월요일에 외래예약을 잡고 제대로 다시 검사결과를 들으라는 말씀을 주셨다. 고열로 정 힘들면 일요일에 다시오라는 말씀과 함께...
긍정의 화신인 나는 ‘이틀 정도야 괜찮겠지’ 생각하며 넙죽 알겠노라 대답했다. 그놈의 ‘하루 정도야 괜찮겠지’가 날 어떤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지 또다시 생각하지 못한 채...
어김없이 이튿날 아침, 난 다시 들지 않는 해열제에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질 만큼 큰 고통에 몸부림치며 ‘정 힘들면 일요일에 다시 오라’던 교수님의 말씀을 상기하며 다시 응급실로 향했다. 한 번 뚫었던 응급실의 진입장벽은 또다시 단단히 자물쇠로 걸어닫힌 듯 견고했다. ‘고열이 있으신가요’, ‘최근 2주 이내에 이태원에 다녀오셨나요’ 도돌이표처럼 계속된 질문에 난 응급의학과 교수님을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아프면 다시 오라며...’
응급실에 도착한 난, 끝이 없는 다카포(Da capo:악보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연주하는 것) 연주처럼 ‘처방한 해열제가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더 큰 고위험 환자로 분류되어 또다시 잠재적 코로나 확진자 취급을 받으며 고통받기 시작하는데..!
.
.
.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