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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리 Oct 27. 2020

코로나 시국에 급성폐렴이라니 4

CCTV 아래의 은밀한 거사

음압격리실.
이곳은 나를 잠재적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로 보고 넣어둔 곳이었다. 적당히 큰 방엔 흰 베드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를 모두 진행한다고 했다.  일주일 남짓 펄펄 끓던 몸살을 견디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누워 편안히 수액을 맞고 있자니 병원침대가 어떤 수입 고급침구보다 편안하고 아늑했다. 복잡한 생각에 어지러운 머리를 털고 나니 내 눈앞에 펼쳐진 건 적막한 하얀 병실 천장뿐...이윽고 찾아온 두려움과 죄책감은 욱신거리도록 내 온몸을 지배했다. 심장 언저리가 콕콕 바늘로 찌르는 듯 고통스러웠다.(나중에 알고 보니 두려움에 쫀 것이 아니라 폐렴 염증이 심장쪽과 가까운 부분까지 퍼져 아픈 거였다) 당장의 아픔은 차치하고 코로나로 판정나면 어떡하지, 오늘 하기로 했던 일 못해서 어떡하지, 내일 출근은 어떡하지...해냈어야만 했던 내 과제와 주변인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쿵쿵거리는 심장은 안정되지 않았다. 울렁이는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는데, 문득 빳빳하게 세탁된 환자복의 질감이 손 끝에 느껴졌다.

‘아 참, 여기 응급실이지...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있자...난 회복하기 위해 온 거야. 수액은 제대로 들어가고 있나..?

.

.

헐...대박. 진짜 약이 팔뚝에 들어가고 있어...!

(덜덜 떨리는 한 손을 들어) 찰_칵.jpg

헉 링거에 피가 역류하네!

(다시 폰을 들어) 찰_칵2.jpg



지쳐 쓰러져 가는 와중에도 사진 찍을 힘은 남아있는 게 분명했다. 남들 다 찍는다는 링거샷을 몇 장 찍고 있으니 곧이어 나의 기본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방호복을 입은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선생님들이  큰 기계들과 함께 내 격리실로 들락거리셨다.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고열에 쩍쩍 갈라져 마른 입으로 피곤에 절어보이는 선생님들께 감사인사를 드렸지만 감사가 모자랄 정도로 기초검사는 끝도 없었다. 피검사를 하고 탈진하듯 누워있는데 이번엔 간호사분이 웬 플라스틱 대접 같은 걸 들고 들어와 말했다.
“이번엔 소변검사를 하실텐데요, 혹시 모를 감염 예방을 위해 공용 화장실 사용은 하실 수 없으니 여기에서 해주세요.”

“무슨 검사를 한다구요?”

“소변검사요.”

“아, 소변검사를요....어디서요?”

“여기서요.”

“...여기서요?”


믿을 수 없는 소식 앞 거듭된 질문에 간호사분은 매우 담담한 말투였다. ‘네. 여기서요’ 한 마디만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진 그녀 뒤엔 작은 사이즈의 플라스틱 요강과 그것을 담을 소변 검체통 만이 남아있었다. 이 병실 천장 구석엔 CCTV 캠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상황.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실례를 하는 경험은 기껏해야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이부자리에서나가 마지막이었을 듯한데, 30대의 과년한 처녀가 누가 지켜볼 지도 모르는 CCTV 아래에서 바지를 내리고 원초적 본능을 해결해야 한다니...

신이시여.... 왜 나를 이런 시련 앞에 던지시나이까.

잠시 영화 <괴물> 속 음압격리실에서 도망치는 송강호의 모습을 떠올렸다. 드라마 처럼 내 팔에 꽂힌 링거줄을 카리스마있게 뽑아버린 뒤 환자복을 입은 채로 이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떠오르는 상황들... 내 머리는 또다시 새로운 뉴스 헤드라인을 뽑아내고 있었다. ‘서울30 여성 코로나 의심환자, 음압격리실 박차고 도주

잠시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전국구로 저격당해 국민의 주목을 받는 것 보다 병원에서 몇 명한테 쪽팔리는 편이 나름 가성비가 좋아 보였다.

결단이 필요했다. 저들은 날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지를 준 것이다.


소변검사를 시도하려고 맘먹었다...접었다... 맘먹었다...접었다...

바지를 내릴까... 다시 올릴까... 하는 사이 바깥에서 불시에 쾅쾅쾅! 다급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김편리환자분! 소변검사 끝나셨어요?”
“아,아직요!!”
“아, 예. 얼른 해주세요.”

난 거의 울먹이다시피 문 건너의 남자 선생님께 “네에” 소리쳤다.


집중이 다시 필요했다. 후우 후우... 잠깐이면 끝난다. 마인드 컨트롤과 몇 번의 심호흡 끝에 눈을 질끈 감고 천장 위의 씨씨티비를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에라 모르겠다 바지를 내리려는 찰나,
“(쾅쾅쾅!) 아직 안 되셨어요? 문 열어도 돼요?!”
“안돼애! 아직이요옷!!”
숨을 옥죄는 그들의 닦달에 난 하마터면 버럭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순간 의료진에 대한 감사함은 개뿔의 감정이 되고 원망만이 가득 찼다.
‘이사람들아! 나오려던 줄기도 똑 끊기겄소!! 이 작업은 절대평온이 필요하다고...!!!’

목 끝까지 터질 듯 욱 하고 올라온 마음의 소리는 다행히 성대를 거치기 직전 제동이 걸렸고
난 절규하듯 ‘아직이요!! 문열지 마세요!!!’ 를 읍소한 후, 마음의 준비는 커녕 쫓기듯 거사(?)를 치루게 되었다.


곧이어 병실은 태초의 소리로 가득찼고 서라운드로 두 귀에 내리꽂히는 ASMR 속에, 검체통은 서서히 채워지고 있었다. 진한 맛의 현자 타임...

눈 질끈 감으면 그만인 것을 나는 무엇을 위해 저항했는가....

‘인간으로 태어나 맞이하는 첫경험은 무엇이든 두렵고 힘든 법, 일단 시작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인생의 철학마저 깨달으며 난, 두번 다시 오지 않을 인생 최초의 거사를 치뤘다.


다음 관문은 CT, MRI였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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