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arc ferm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맹성준 Sep 05. 2016

포르쉐의 딜레마

Innovation이 Heritage와 충돌할 때

자동차잡지에서 발견한 포르쉐 지면광고. 사진엔 토요타 TS-050 

 한 달 전쯤, 서점에서 잡지책을 뒤적이다가 재밌는 광고를 발견해서 바로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진인데요 (폰에서 볼땐 위), 올해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서 포르쉐가 우승한 다음에 올린 광고입니다. 


 올해 르망에서 토요타가 24시 내구레이스 종료 마지막 랩을 남겨두고 선두로 달리던 5번 차량이 엔진 터보 문제로 차가 멈춰버린 것입니다. 결국 2등으로 달리던 포르쉐가 르망에서의 창사 이래 18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레이스 역사상 아마도 가장 드라마틱한 결과로 남을 이 승리 이후, 포르쉐가 낸 광고는 함께 달린 경쟁자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었습니다. 


전체 지면을 사용해서 자신의 우승차인 919 하이브리드 사진이 아닌, 경쟁자의 TS-050 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붙여놓고 밑에 그들의 존경심을 담은 문구를 써놨습니다. 


Gained our respect forever.


올해 르망에서 우승한 포르쉐 919 Hybrid LMP 1 race car. [출처: Porsche]


 포르쉐는 르망의 왕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르망에서 가장 많은 우승 경력을 가지고 있는 자동차 메이커입니다. 포르쉐는 919 하이브리드 르망 레이싱카를 가지고 2014년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 2015, 2016 르망에서 우승을 연달아 차지하게 됩니다. 이를 보면 포르쉐가 자신들의 업적을 이어 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번 919 하이브리드 레이스 카는 포르쉐의 아이콘, 한스 메츠거의 엔진인 수평 대향 엔진을 버리고 v4 엔진을 사용하여 우승한 르망 레이스카입니다. 


Flat-6 Engine 을 사용한 포르쉐의 마지막 르망 우승 레이스카, 911 GT-1 [출처 :Porsche] 

 포르쉐의 변화의 시도는 늘 있었습니다. 공랭식 엔진을 고집하던 포르쉐가 수랭식 엔진을 도입했다던지, 스포츠카 메이커에서 SUV를 만든다던지 하는 것들입니다. 사실은 다른 메이커에서도 늘 있는 일인데, 포르쉐에서 하면 뭔가 스토리가 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가진 브랜드의 힘일 것입니다. 


919 하이브리드와 가장 가까운 형태의 양산차 918 하이브리드. 물론 누구나 살 수 있는 그런 차는 아니다. [출처:Porsche]

  다시 레이스로 돌아와서, 사람들은 포르쉐가 족보도 없는 v4 엔진을 포르쉐의 최고봉 레이스 카에 사용하는 것에 큰 반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일단 919 하이브리드가 속한 클래스인 lmp-1 이 프로토타입 레이스카들의 경주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프로덕션 카와는 상당한 단절감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올해 5월에 공개된 2017 911 GTE race car. [출처:Porsche]

 LMP-1 의 분위기도 뜨겁지만, 요즘 GT카들의 전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GT3는 점점 많은 메이커들이 자사의 GT3를 제작하여 커스터머 팀에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GT카의 경우, 프로덕션 카를 베이스로 레이스카를 제작하기 때문에 마케팅의 수단으로도 아주 높게 평가받고 있어서 더욱 메이커들이 자사의 스포츠카를 베이스로 한 GT3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현재 GT 레이스의 최고봉은 WEC의 LMGTE 일 것입니다. 이전의 GT2와 비슷한 클래스이지만, 현재 GTE 들의 랩타임은 이전 시대의 GT1을 위헙하는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WEC GTE 클래스에 열기를 더할 뉴스가 올해 5월에 올라옵니다. 


    그것은 바로 2017년을 위한 포르쉐의 911 GTE 레이스카입니다. 언론을 통해 그들의 새로운 GTE 카를 차의 뒷부분 이미지는 전혀 없이 앞쪽 이미지만 즉, '반만' 공개했습니다. 왜 반만 공개되었는지는 이미 수많은 루머가 떠돌고 있으나 가장 확실시되는 것은 아마도 터보 엔진이 들어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비밀리에 테스트가 진행 중에 있어 더 많은 정보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만약 단순하게 터보 엔진이라면,  굳이 뒷부분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로는 충분해 보이지 않습니다.


GTE 의 강자, 488 GTE 를 사용하는 AF corse 팀. 2016 GTE 규정 변경으로 더욱 강력한 에어로 페키지를 가지게되었다. [출처:motorsport.com]

 올해 911 RSR GTE 의 성적은 중간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엔진과 에어로 패키지로 무장한 488 GTE와 Ford GT는 사진으로만 봐도 911 RSR 이 초라해 보일 정도입니다. 이에 포르쉐가 강한 한방을 준비하는 것일까요. 루머에 따르면 이번 911 GTE가 뒷부분을 공개 못한 이유는 단순히 터보 엔진이 아니고 v 형 엔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 이 정도라면 포르쉐가 뒷부분 사진을 공개 안 하는 이유가 될 법도 합니다. 


911 에 장착되는 flat-6 터보 엔진. 확실히 옆으로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 [출처:Porsche]

 기존의 수평대향, flat-6 엔진은 수평방향으로 공간을 많이 차지합니다. 터보까지 추가되면 좌우로 공간도 더 요구되고, 엔진 상단부가 점점 무거워지면서 사실상 무게중심이 낮아진다는 이점은 점점 사라지고 페키징이 어렵다는 단점이 더 많이 남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레이싱 엔진 메뉴펙처러가 6기통 이상의 엔진을 거의 대부분 v 형태로 만드는 이유도 결국은 v 형태가 페키징 부분에서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레이싱카에서 엔진 페키징이란 것이 단순하게 서스펜션의 지오메트리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에어로 패키지에 맞추어 엔진과 서스펜션이 설계되기 때문에 프로토타입 레이스 카나 Formula 레이스카의 경우 옆으로 넓지 않고 콤팩트 한 파워유닛이 무조건 선호됩니다. 하지만 GTE 클래스는 프로토타입 레이스카가 아닌, 양산차를 기본으로 한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즉, 이전 911 RSR이나 일반적인 911 레이스카에서는 굳이 v형 타입의 이점이 그렇게 크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즉, 루머는 이렇습니다. 2017 911 GTE는 v형 엔진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엔진이 리어 엑슬 뒤가 아닌 앞에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즉, 미드쉽 레이아웃을 가진 911 경주차라는 것입니다.


911 GT1 양산모델. 911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첫번째 미드쉽 차량이다. [출처:RM Sotheby’s]

 911에 미드쉽이라니, 포르쉐 팬들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 같지만, 사실 포르쉐는 미드쉽 911을 양산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911 GT1입니다. 하지만 이차는 기본적으로 르망 gt1 출전을 위해 제작된 차로 지금의 918 하이브리드나, 까레라 GT와 같은 스페셜 모델에 가까운 것입니다. GTE, 일종의 gt2 에 속하는 이 카타고리에 출전하는 911과는 성격이 다르죠. 현재, GTE 에 출전 중인 차들은 크게 기본적으로 양산차의 구조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포르쉐의 상징인 911에 자신들의 역사에 없던 엔진과 레이아웃을 택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많은 포르쉐 팬들에게는 큰 충격일 것입니다. 


 사실 911 GTE에 미드쉽 v 형 엔진을 올린다는 것은 엔지니어의 시선으로 볼 때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됩니다. 리어 엑슬 뒤로는 차량 하부에 들어온 공기를 출구에서 압력을 낮추어 배출시키는 디퓨저 같은 구조가 들어가야 차량의 다운포스를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현재의 RR 레이아웃, 즉 엔진이 리어 엑슬 뒤에 배치되면 엔진 뒤로 디퓨저를 연장해서 장착하거나 엔진의 높이를 올리거나 해야 합니다. 즉, 에어로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모터스포츠에 포르쉐의 RR 레이아웃은 어쩌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을지 모릅니다. 


올해 르망 LMGTE pro 에서 우승한 Ford GT. 모든 설계가 르망우승에 촛점이 맞춰져있다. [출처:Ford]


 올해 르망 GTE pro 클래스에서 우승한 포드 GT를 보면, 과연 저차를 GT카라고 해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공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차들과 맞서 싸울 2017년 911 RSR GTE 가 만약 루머처럼 v형 터보 엔진에 MR 레이아웃으로 나온다면, GT 호몰로게이션에 맞게 이에 맞는 새로운 911을 출시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메뉴펙처러인 포르쉐는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일까요. 자신들의 역사인 르망에서 메츠거 엔진을 버리고 새로운 v4 엔진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한 지금, 이 변화의 물결은 lmp1에서만 멈춘 게 아니고 지금 gt 클래스의 차량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2017 911 GTE를 공개하면서 앞부분만 공개하기로 결정한 포르쉐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집착에 가까운 포르쉐의 RR 레이아웃 고집이 이제 끝나려는 것인가. [출처:Porsche]


 4기통 엔진을 탑재한 718 박스터와 카이맨이 시장에 나왔고, 이젠 포르쉐에서 나오는 세단이나 suv를 봐도 그리 놀랍지 않은 시대라고 하지만, 마치 불가침 영역이라고 생각되던 911과 RR 의 조합이 결국 사라지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루머는 한편으로 걱정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포르쉐에서 어떤 차를 만들어줄지에 대한 기대도 됩니다. 


 우리는 가끔 전통의 계승을 어떤 형태나 그 포맷의 계승으로 때론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렇듯, 우리는 어떤 변화에 반감적인 형태로 반응하기보다는 그 본질이 추구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를 때론 뒤집어 봐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우연하게 본 잡지 속 포르쉐의 광고 속에서 포르쉐는 그 본질을 잊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7% 의 Rul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