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드 몽테뉴
어떤 일을 잊고자 할수록 더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Nothing fixes a thing so intensely in the memory as the wish to forget it.
미셸 드 몽테뉴 (1533~1592)
‘내가 가장 잊고 싶은 일은?’
우리에게는 생각만으로도 수치스러울 수도, 너무 아파서 생각하기 싫을 수도, 또는 아련하거나 불안하거나 화가 치밀어 오를 수도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밟아오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잊고자 하는 경험들이 너무 강력해지면 그 강력함이 도리어 기억을 사로잡아 잊을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대학 시절 인지심리학 개론 수업에서 교수님은 이런 제안을 하셨다.
‘지금부터 분홍색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A+를 주겠습니다….
아!, 방금 제가 말해서 떠올린 그 분홍색 코끼리는 제외해주겠습니다….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분홍색 코끼리를 두 번, 아니 조금 전까지 세 번은 떠올리셨겠네요.’
돌이킬 수 없는 순환 고리가 느껴지는가? 이것을 프레임 이론(frame theory)이라고 한다. 조지 레이코프는 자신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하는 역설을 마주치게 됩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어떤 일을 잊고자 할수록 우리는 그 일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심리학자를 비롯하여 이 명언의 주인공인 미셸 드 몽테뉴도 같은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심리적이면서 매우 철학적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이 잊지 못한 기억이나 경험 때문에 현재에 고통받는 상황을 미해결 과제가 있다고 표현한다. 이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직면해야 한다. 즉, 프레임 이론의 구조에서 본다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분홍색 코끼리를 의도적으로 떠올리고 당당히 그 앞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프레임의 현상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나를 괴롭히는 기억, 즉 미해결 과제를 자꾸 못 본 척하거나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보다 내 앞에 꺼내놓는 것이 더 필요한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잊고 싶은 일에 대해 한 번쯤은 새로운 관점과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기억을 어떻게 잊고 지울 것인가? 가 아니라 기억을 어떻게 다루고 지배할 것인가? 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억을 능동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기억을 능동적으로 다루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최신 심리학에 기반한 ‘HAA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실제로 내가 여러 기업에서 메타인지와 마음챙김을 진행할 때 실시하는 방법이다.
먼저 심호흡을 하는데 2초간 깊게 들이쉬고 4초간 길게 내쉬면서 하~ 라고 소리를 내도록 한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이룬 듯이 후련하게 소리를 내는 한 숨이다. 그러면서 하(HAA)를 떠올리게 한다. 첫 번째 H는 here & now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시작점이다. 큰 숨을 알아차리면서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두 번째 A는 awareness로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전 남친과의 좋지 않은 추억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었다면, 그 문제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아 그 나쁘고 미운 사람이 내 남친이었었고,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었구나. 그러면 그 사람과의 있었던 일을 거부하는 과정은 내 과거를 거부하는 것과 다름 없구나...' 와 같은 통찰적인 생각도 그러하다.
세 번째 A는 acceptance로 그것을 판단과 평가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과거의 시간은 그저 내가 살아가고 경험했던 소중한 시간일 뿐, 더 이상의 판단과 평가와 부정적인 해석이 지금 이 순간 오늘을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1. Here & Now : 지금 이 순간
2. Awareness : 인식하고 새롭게 바라보며
3. Acceptance : 수용하기
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고, 또 어려운 것도 하루하루 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습관처럼 쉽게 해낼 수 있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깨닫고 판단과 평가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그러할 것이다. 지금 만약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라면, 나를 괴롭히던 그것을 잠시 인식하고 수용적인 태도로 바라보자. 그렇게 되면 놓치고 있었던 오늘의 소중한 시간을 다시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심리학자인 저자도, 16세기를 살아갔던 철학자 몽테뉴도 오늘의 소중함을 똑같이 당신에게 권유하는 바이다.
현재의 생활을 적극적으로 영위하여라
-몽테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