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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오래하면 정말 더 행복해질까?

by 심리학자 이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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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게임만 하고 싶다


게임을 오래 하면 정말 행복해질까? 이 질문은 많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믿고 있는 명제일지 모릅니다. 힘들고 지칠 때, 하루의 피로를 털어내기 위해 게임을 켜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익숙합니다. 몰입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잠시 현실의 걱정을 잊게 되고, 작은 성취와 미션 완료의 쾌감은 감정적 보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느낌이 우리의 삶의 만족도나 감정적 안정감, 즉 웰빙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정말 맞을까요?






옥스퍼드대학교 연구팀은 이 질문에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대답하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대부분의 기존 연구들이 자기보고 방식, 즉 사람들이 스스로 "나는 하루에 몇 시간 게임을 한다"고 말하는 데이터를 사용해왔다면, 이 연구는 한 단계 더 나아갔습니다. 실제 게임 회사인 Electronic Arts와 Nintendo of America와 협력하여, 참가자들이 실제로 얼마나 게임을 했는지를 서버 데이터를 통해 확보한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게임시간을 보고할 때 평균 1시간 전후로 더 많이 한다고 보고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오류는 최종적으로 통계적인 신뢰성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참가자들에게는 정서적 웰빙에 대한 다양한 질문지가 주어졌습니다. "당신은 요즘 삶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나요?", "어제 하루는 어땠나요?"와 같은 일상적이지만 심리학적으로 신뢰도 높은 질문을 통해, 참가자들의 주관적 행복 수준을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게임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전반적으로 웰빙 지수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 차이는 미미했기 때문입니다. 즉,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긴 했지만, 설명량이 너무 낮았는데, 웰빙 점수의 약 6~10% 정도만이 게임 플레이 시간으로 설명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게임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약간의 행복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 크기가 작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의외의 결과는 게임 지속 시간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1시간 게임을 한 사람과 3시간 게임을 한 사람 사이에는 드라마틱한 차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루 종일' 게임을 한다고 계속해서 더 행복해지지 않는 것이죠.






여기까지 보면 게임은 웰빙에 약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의 진짜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왜 게임을 하느냐'에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단순히 플레이 시간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동기로 게임을 하고 있는지를 함께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자율적인 동기, 즉 스스로 즐겁고 원해서 게임을 하는 경우에는 정서적 웰빙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친구의 권유나 외로움, 스트레스 회피 같은 외적 동기로 게임을 하는 경우에는 웰빙과의 관련성이 거의 없거나 오히려 부정적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결과는 심리학에서 유명한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의 핵심 요소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것이 자율적이고 내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경험은 긍정적인 감정과 연결되기 쉽습니다. 반면 외적 보상이나 타인의 기대, 혹은 상황 회피를 위한 수단으로 행동할 경우, 감정적인 충족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같은 시간을 하더라도 '즐거워서 스스로 하는 게임'과 '현실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하는 게임'은 정서적 결과에 있어서 전혀 다른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게임이라는 활동 자체보다는, 그것을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도로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현대 심리학자로서 게임은 충분히 긍정적인 심리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몰입, 성취감, 사회적 연결감 등은 모두 인간의 웰빙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며, 잘 설계된 게임은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플랫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몰입이 지나치면 현실 회피나 감정 조절의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는 양날의 검이기도 합니다.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기 위해 잠시 게임에 몰입하는 것은 분명 감정적 이완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적인 감정 회복의 유일한 수단이 되거나,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대신하는 것이 될 때, 오히려 웰빙을 해칠 수 있습니다. 이 연구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게임 자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게임을 더 주체적으로 즐기고, 게임 외에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다양한 심리적 루트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게임이 웰빙에 미치는 영향이 의외로 적다는 점을 기억하면, 게임 외에도 다양한 취미 활동을 찾는 것도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다양한 취미를 즐기고 계신가요?




참고자료

Johannes, N., Vuorre, M., & Przybylski, A. K. (2021). Video game play is positively correlated with well-being. Royal Society Open Science, 8(2), 20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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