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국적 소녀 Oct 27. 2022

한국 사회에서 다름과 같음이란

단일 민족 국가에서 산다는 것




한국에서 나고 자라다가, 10대 중반 정도에 갑자기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짧았던 기간동안 강렬하게 느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상은 희미하게 계속 이어졌고, 성인이 돼서도 다시 미국 또는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사실 유학 자체의 기억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영어를 정말 못하는, 머리는 다 커버린 중학생이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쉽게 알아들을 수 있던 단순한 수학 문제 하나도 미국 학교에선 쩔쩔 맸다.

나 혼자 문제를 풀 땐 쉬웠지만, 선생님이나 친구들 앞에서 설명하는 건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힘든 유학생활 이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오히려 기억에 길게 남았던 것은 미국에서 경험했던 '사고 방식의 차이'였다.


그런 기억은 몇몇의 충격적 순간으로 남아있었는데, 예를 들면


 1) 미국 중학교엔 교복이 보통 없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는 사립학교라 교복을 입었다. 근데 매주 금요일은 교복을 입지 않는 날이었고 각 날마다 그 날에 맞는 테마 있었다. 어느 날은 '5개의 다른 색' (5 Colors Day)을 입고 오는 날이어서 나는 어떻게 입을까 고민하다가 검정, 회색, 하얀색, 남색, 노란색 뭐 이정도를 적당히 매치해서 입고갔다. 근데 친구들은 모두 형형색색 찬란한 옷들을 입고 왔다. 말괄량이 삐삐를 연상시키는 오색찬란 짝짝이 줄무늬 스타킹을 입은 친구도 있었다.  내가 입은 옷은 그냥 무채색에 가까워서 애들이 왜 오늘의 테마를 지키지 않았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2) 자신의 외모에 대해 묘사하는 수업 시간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외모 콤플렉스가 가장 심한 시기여서 '나는 코가 낮다', '얼굴이 노랗다'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잔뜩 적었다. 실제 한국에서 가까운 친척, 가족, 친구들에게 자주 듣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30-40명 아이들 중에 자신의 외모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쓴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모두들 '내 머릿결이 너무 좋다, 내 피부가 매끈하다, 나는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내 입술은 너무 매력적이다' 이런 말만 써냈고 스스럼 없이 발표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3) 내가 살았던 도시는 해변이 많아서 바다 수영을 자주 했다. 사람들이 입는 비키니 차림이 정말 파격적이었는데 그중 하나 충격적이었던 건 만삭의 임산부가 비키니를 입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당시 K-유교걸인 나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글래머러스 하지 않은 사람들도, 또는 반대로 살집이 많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노출의상을 입고 다녔다.





한국 학교에서 나는 선생님들에게 늘 야단을 맞고는 했었다. 주로 내가 유별난 행동을 하는 것을 선생님들이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소풍에 가서는 단체행동을 해야 했기에 '개인행동'을 하는 나는 혼이 났고, 혼자만 교복을 다르게 입는 것은 문제였기 때문에 항상 교복 문제로 교무실에 불려갔었다. 시행착오를 반복 하다가 결국 '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무난히 사회에 묻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었다.


한국 사회가 단일 민족 국가이고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다름'보다는 '같음'에 항상 초점을 맞추고 살곤 한다. 그래서 내 안에서는 내가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튈 때 이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소속되지 못할 거라는 것에서 오는 공포가 존재 해왔다.



그래서 다시 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마음껏 달라도 되는 곳에서 다시 살아보고 싶었다.

물론 미국이 다름을 존중한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건 아니다.

더욱 엄격한 규율과 규칙이 존재하고, 그것을 지키는 자에게 무한한 자유가 허용된다.

하지만 그것을 어겼을 때 개인에게 가해지는 책임은 오히려 미국이 더 철저한 것 같다.


예를 들어, 현재 내가 다니는 미국 대학원에서는 'Honor Code'를 굉장히 엄격하게 적용한다.

즉 학교에 제출하는 과제를 '혼자의 힘'으로 했고, 다른 친구의 것을 참고하거나 타인의 저작물을 도용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선서 같은 것이다.

이것을 어기면 퇴학이다. 실제로 퇴학 당한 사례도 있고, 그래서인지 여기서 나고 자란 친구들은 지적재산권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스스로 Honor Code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것을 어겼을 때의 대가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면서 어디가 더 낫다라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어떻게 문화 속에서 다르게 표현 되는지를 직접 체감한 입장에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개인주의 속에서 조금 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마다 맞는 문화가 조금씩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국 안에서도 자신의 개성을 꽃피워 나가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고,

미국에서도 집단을 중시하는 군대 같은 문화가 있듯,

하나의 잣대로만 보는 건 언제나 위험하다.



내가 느꼈던 미국의 ”개인주의“와 한국의 ”단일민족”이 주는 몇가지 사례를 이야기했을 뿐이고, 충분히 다른 경험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로만 할 뿐,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