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국적 소녀 Feb 17. 2024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어느날 나에게 물었다.


문득 문득 이런 생각이 삶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나는 잘 살고 있는걸까?"



예전에는 이런 류의 질문을 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남과 나를 비교하곤 했다.

역설적이게도 나를 생각하는 질문인데 불구하고, 이런 질문을 할 때면 자연스럽게 내 주변 인물과 나를 함께 떠올리게 됐다.


그 대상은, 부모님, 친척, 친한 친구, 직장 동료 등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들부터 SNS 인플루언서, 셀러브리티 등까지 간접적으로 아는 인물들까지를 포괄했다. 


가장 가까운 엄마나 아빠, 언니를 생각했고,

사촌, 팔촌, 그리고 엄마의 친구 아들, 딸 (엄친아, 엄친딸)들의 이야기로 나아가,

어릴 적 친구, 학창시절 친구, 대학교 인간관계들, 그리고 직장에서 알게된 수많은 선후배, 협력사 사람들, 임원, 대표까지로 나아갔다.

그리고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알게된 사람들, 그리고 뉴스나 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셀러브리티까지 자연스럽게 그들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비교하게 됐다.


소위 말해, 직간접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총합'은 나의 '세계' 그 자체였고,

나는 나의 '세계'와 '나'를 비교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결과 나는 끊임없이 나의 삶과 타인의 (보여지는) 삶을 비교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언제나 만족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자괴감으로 이어졌다.



이것에서 조금 벗어나게 된 계기는,

사실 미국에 오게 되면서였던 거 같다.

더 정확하게는 미국 유학 생활 중에, 그리고 졸업 후 직장인으로 홀로 낯선 도시에서 일하면서, "완벽한 고독"에 놓이게 되면서였다.


내 주변에 정말 아무도,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타의로 그런 상황이 되었다.


뼈저리게 외로웠고 그래서 가끔은 사람을 찾고 관계 속으로 도망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어김없이 나는 끊임없이 고독 속에 놓였다.

간간히 전화나 카톡이 오는 것을 제외하면 누군가를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상황에까지 놓였다.


현재 일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재택근무로 이루어지고,

알다시피 미국은 완전한 개인주의 사회인데다가 외노자라는 신분 때문에 나는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회와 완전히 고립되고 나니까 생기는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첫번째는, 바로 나의 과거와 오늘을 비교하게 된 것이다.


비교할 '세계'와 절대적인 물리적 거리가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들과 적당한 거리가 생겼다. 

결국 이 거리가 "나"라는 자아로 채워지면서, 온전히 "나"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나의 과거에 비해 나는 현재 나아졌는가?"로 비교가 되고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나라는 사람, 본성에 나는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즉, 내가 과거에 비해 점점 더 나다운 인생을 살고 있다면 나는 "잘 살고 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 변화는, 

매일매일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너무 신기하게도 미국에서 사회와 고립되어 살고 있는 '나'와 한국에서 '나'는 정말 정말 다른 사람이다.


예를 들면, 내가 한국에서의 '나'는 친구도 꽤 있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맛집 탐방을 좋아하고 예쁜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고립된 이후에야 내가 음식에 대한 관여도가 진짜 낮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실제로 같은 음식을 한달 내내 먹을 수도 있다. 요즘 내가 먹는 식단은 정말 간단하기 그지 없다. 열 손가락안에 꼽을 수 있다. 


옷도 딱히 신경 쓸 사람이 없다보니 겉옷 2벌, 상의 3벌, 하의 2벌, 신발 2켤레로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인간관계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었다. 쉽게 외로워하고 사람들이 만나자고 하면 거절하지 못했었다. 

근데 웬걸, 혼자 있어보니 방 안에서 글 쓰고 책 읽고 공부 하는 것이 그렇게 재밌을 수 없다. 인간관계 욕구는 온라인상에서 웬만하면 많이 채워진다. 영상통화, 음성 통화, 카카오톡, 줌으로 하는 인간관계로도 나의 욕구가 채워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작은 변화가 궁극적으로 세번째 변화로 이어지는데,

사람이 단순해진다.



이렇게 나를 진짜 객관적으로 알게 되면서,

누구와 비교해서 더 돈을 많이 벌고, 더 뭘 많이 하고, 이런게 중점이 아니게 된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뭔지 알게 되면서, 내가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정리가 된다.


쉽게 말해서 "머시 중헌디?" 태도가 생기는 거다.


저사람이 뭐가 어떻던 간에

나는 이게 제일 중요하고,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이걸 위해 노력할거야!라는 게 생기고

정말 단순하게 살기 시작한다.


지금은 그게 '나'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맞는 싸움이 있고 나의 자아에 맞는 성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가장 나에게 맞는 곳에서 싸우고 있나?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판인가?)

진짜 몰입해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나? (= 내 최선을 다하는가?)



두 가지 질문에 자신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잘 살고 있는 거 아닐까,

오늘의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 나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