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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Jul 20. 2019

혐(嫌)

혐한의 일본

 우리는 60년대 초 학교에서 반공(反共)을 배웠다. 국어 시간에는 반공을 소재로 글짓기를 하고, 음악 시간에는 반공을 가사로 노래했으며, 미술 시간에는 붉은 색으로 반공 포스터를 그렸다. 그러다가 삼척에서 이승복 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며 무장공비에게 죽는 사건이 터지자, 승공으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멸공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시절 공산주의는 단순한 반대를 넘어, 반드시 이겨야 하는 대상이었으며, 단합해서 궤멸시켜야 하는 악마의 존재였다. 군대 생활을 보낸 25사단의 경례구호는 ‘초전박살’이었다.


 1974년 8월 재일교포 문세광의 저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사망했을 때, 우리 학생들은 반일 구호를 외치며 신촌에서 일본대사관까지 행진하며 거리시위를 벌였다. 1985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 5개 대학교 학생 73명은 서울 미국문화원을 기습 불법 점거하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탄압에 미국은 책임 지고 공개사과를 하라며 반미구호를 외쳤다.이처럼 반공, 반일, 반미는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일본에 저항하며, 미국에 항거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영어로는 ‘Anti-’가 된다. 좋아하면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반대는 싫어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반공이 승공이 되듯, 싫어함(dislike)이 지나치면 미움(hate)이 되고, 미움이 발전하면 증오(hate)가 된다. 영어단어로는 미움이나 증오가 같지만, 한국말은 차이가 크다. 증오는 미움을 넘어 사무치게 미워하는 것을 말한다.


 ‘혐(嫌)’이라는 한자어가 있다. 네이버 사전에는 ‘嫌 (싫어할 혐) 1. 싫어하다 2. 미워하다 3. 의심하다(疑心--) 4. 의심스럽다(疑心---) 5. 혐의하다 6. 불만스럽다, 불평스럽다 7. 가깝다, 닮다 8. 혼동하기 쉽다 9. 나쁜 일 10. 불운 11. 미움’이라고 설명하는데 무언가 부족하다.


 증오와 혐오는 의미상 다르기 때문이다. 증오는 사람이 대상이지만, 혐오라는 표현은 인간을 대상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영어로는 ‘disgusting’에 가까워서, 여성이 뱀이나 바퀴벌레를 극도로 징그러워할 때 쓰는 표현이 바로, 글자 ‘혐’이다. ‘너무나 사랑해서 당신을 증오한다’라는 표현에서 증오를 혐오로 바꾸면 어감상 말이 안 되는 것과 같다. 증오는 후천적으로 갖게 되는 감정이지만, 혐오는 본능적인 싫음의 감정표현이다.반공 대신 ‘혐공’, 반일 대신 ‘혐일’, 반미 대신 ‘혐미’라고 쓰지 않는 이유도 그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반한단체들은 한국에 대해 ‘혐’이라는 글자를 써서 ‘혐한(嫌韓)’이라고 한다.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의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혐오스럽다고 할 때는, 식인 습관이 있는 야만인이라든지, 쥐나 바퀴벌레를 잡아먹는 것을 보는 경우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영화는 일부러 피한다. ‘링’이라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본 공포영화가 있다. 우물에서 기어 올라와 텔레비전을 뚫고 나오는 괴상망측한 혐오 설정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문화적 정서가 다르기 때문일까? 너무 혐오스럽다.


 젊었을 때 호기심으로 포르노를 찾아본 적이 있다. 일본 것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인간의 오물이 나오고, 교복 입은 어린 여자가 등장하고, 묶어놓고 때리고 학대하는 장면은 인간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말 그대로 혐오 그 자체였다. 일본 만화는 또 어떤가. 웬만한 비위가 아니라면 견디기 힘들다.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를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일본인들, 그것은 그들이 바로 혐오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과 친근하기 때문은 아닐까.


 극우든 극좌든 모든 극단주의는 증오를 먹고 성장한다. 나치의 히틀러는 유대인과 소련의 공산주의가 증오의 대상이었다. 아베의 일본은 이웃 국가를 혐오의 대상으로 삼아 유권자의 표심을 유혹하고, 한국의 박근혜 정권은 반대하는 사람들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아서, 블랙리스트에 올려 모든 활동에 불공정과 불이익을 주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언론이나 표현의 자유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90%가 넘는 독일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히틀러는 30개가 넘는 군소정당을 강제해산하고, 모든 반대자를 숙청하고 언론을 통제했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2013년 말, ‘특정비밀보호법’을 만들어서 비밀을 누설하는 모든 공직자를 처벌할 수 있게 했으며 한국의 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 '테러방지법'을 만들었다. 그 결과 국제언론감시기관에서 매년 발표하는 일본의 언론자유지수는 2010년 11위에서 2017년 72위로 하락했다가 금년 67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지난 7월 7일 일본의 언론통제가 독재국가 같다며 정면으로 비판했다.(관련기사 보기)


 한국은 반대였다.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31위로 최고순위를 기록한 언론자유지수가 박근혜 정부인 2015년 70위까지 떨어졌다가 금년 41위를 기록해서 48위인 미국에 앞섰으며, 아시아에서는 가장 높았다.(관련기사 보기) 과거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은 민간인이고 공무원이고를 가리지 않고 사찰했다. 현재 막말을 하는 한국 사람들은 언론자유에 힘입은 바가 크다.


 아베의 인격이 얼마나 치졸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낮은 의자’다. 아베는 2017년 당시 야당 대표였던 홍준표 씨가 방문했을 때와 여당 문희상 의원이 방문했을 때 자신보다 낮은 의자에 앉혔다. 총리 관저 접견실에 있는 소파를 일부러 낮은 것으로 교체했던 거다.(관련 글 보기) 그뿐이 아니다. 아베는 작년 평창올림픽에 참석해달라는 한국정부의 요청을 거절했다. 무엇을 뜻할까? 속국으로 대하겠다는 무언의 의사표현은 아니었을까?


 2012년은 동북아 한·중·일 3국에는 획기적인 해였다. 한국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씨가 대선에 승리했고, 일본에는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1896~1987) 전 총리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1954~)가 총리에 재취임했으며, 중국에서는 중국 공산당 최고위급 귀족 출신 시중쉰(習仲勳)의 아들 시진핑(1953~)이 국가주석에 취임함으로써 3국 모두에 우익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가장 먼저 정권이 바뀐 곳은 한국이었다. 우익에서 극우로 함께 돌아선 두 나라는 행보까지 흡사했다. 일본은 전쟁패배로 수치(?)스럽게 강제된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전쟁 수행이 가능한 국가로 개조하려 들고, 중국 또한 헌법을 바꿔 시진핑의 종신 집권을 획책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히틀러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혐오도 그냥 혐오가 아니라, 젊은 세대가 사용하는 요샛말 그대로 극혐(極嫌)이다.


 <후기>

 금년은 우리 민족의 거국적인 삼일운동이 일어난 지 백 년이 되는 해로, 다시 반일감정인 민족적으로 일어나는 게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조상의 혼이 살아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백 년 전 삼일운동의 결과로서 일본은 문화통치라는 핑계를 대고 경제적 예속을 강화합니다. 그 결과 기독교계 민족 지도자들은 1920년 평양에 모여 조선물산장려회를 발족하고 물산장려운동을 벌여, 국산품을 애용하여 실업자를 구제하자는 범민족운동을 실행에 옮깁니다.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백 년 전의 그것과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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