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마 온천과 고베에서 길을 묻다.
새벽에 눈이 떠졌다. 전날 동료들과 늦게까지 떠들썩하게 지냈는데도 정신이 멀쩡하다.
여행지에서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했다. 누군가 먼저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몇 분 후 멍하니 누워있을 때 S에게 전화가 왔다. 잠을 잘 잤는지 안부를 물은 후 준비를 하고 이동하자고 한다. 베개가 높아서인지 목이 아팠다. 손날로 계속 목을 치며 로비에 모였다. 전날 분명 과음들을 한 것 같은데, 정신들은 말짱한가 보다.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고, 웃으며 아침을 시작한다.
전 날 술김에 산 빵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크림이 들어간 빵과 카페오레가 잠재되어 있는 속을 깨우기 시작했다. 느끼한 유제품을 먹어서일까 표정들이 그리 좋지 않았다. 화장실을 한번씩 다녀오고 나서야 한결 표정들이 밝아졌다.
출근 시간,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일터로 또는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표정들은 한결같이 우리내 삶의 모습과 같았다. 쉬고 싶다 또는 가기 싫다. 그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우리대로의 길을 가고 있었다. 어제는 관광객들로 인해 힘들었는데, 오늘은 출근길 인파로 급 피곤해졌다.
아리마 온천을 가는 길, 도시의 번잡함은 사라지고 시골 풍경들이 보인다. 확실히 여유로운 풍경과 고즈넉함이 한결 느껴졌다. 여유로이 떨어져 있는 집과 집 사이의 공간이 도시와는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저런 삶을 동경했다. 도시의 번잡함과 빠른 속도에 내 자신이 못맞추고 있는 것 같아 퇴보된 듯 하다. 그럴 때마다 디지털 생활보다 아날로그적 삶이 그립기도 하다. 아니면 최근 유행중인 하이브리드 방식도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난 저 표정이 좋다.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 지금 이 시간에 만족하는 저 표정이 좋다.
아내와 나는 가끔 무인양품에 인테리어를 보러 가곤 한다. 디자인 자체가 말 그대로 심플 이즈 베스트였기에 그 디자인을 좋아했다. 최근에 방문을 했을 때, 무인양품 하우스라고 해서 공간 디자인을 해놓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일본에 전형적인 좁은 곳에 최대한 많은 수납공간을 확보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와 있는 하나의 집 사진은 나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일본 골목 안에 작은 집에 하얀색 목조 디자인과 집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 보였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그리고 생각하고 있는 집 풍경도 저 것과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아리마 온천....이른 시간에 도착해서일까? 문을 연 가게도 보이지 않는다. 목적은 하나였기에 지체 없이 온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대부분이 료칸 및 호텔과 같이 운영을 하고 있어 당일 온천을 하는 곳은 찾기가 어려웠다. 그때 온천 한 곳이 당일 온천을 한다는 한국어 표지판을 보고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닌 자판기에서 티켓을 구매 후 온천탕으로 들어갔다. 자판기에 천국 답게 티켓 계산도 사람이 하지 않는다. 너나 할 것 없이 옷을 벗어 던지고 욕탕으로 들어갔다.
온천을 하고 있으니 한결 표정이 나아졌다. 뜨거운 물에 있으니 노곤했다. 눈을 감고 있으니 기차에서 봤던 집들이 생각났다. 아날로그와 킨포크적 삶이하고 싶었다. 도시에 거리 풍경은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다만, 일본만이 담고 있는 고유의 느낌만이 다르고 색다를 뿐이었다. 깨끗하고 정리가 잘된 거리는 나도 부러울 뿐이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면 한적한 동네 이름도 모르는 이 곳은 작고 조용했다. 아수라 같은 곳이다. 앞면과 뒷면이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이런 매력이 나로 하여금 이 곳을 빠지게 만들었다. 킨포크 말로만 들어도 설레였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목욕을 한 후에는 바나나 우유를 하나 손에 쥐어 주시곤 했다. 목욕탕에 가는 날이 그렇게 싫었다.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야 하고, 아버지가 목욕을 하시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성인이 되고 온천에 오는 어른들에 마음을 알 것 같다.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아침에 결렸던 목도 괜찮아 진 것 같다. 자판기에서 커피 우유를 하나 꺼내 마시며,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했다. 사내 놈들은 대부분 비슷한가 보다, 목욕탕 가기 싫어했던 것은..
낡은 로컬 열차에 몸을 싣고, 고베로 향했다. 일본의 3대 미항이라고 하는데. 이 3대 미항은 누가 명명했는지 모르겠다. 많치 않은 사람들 속에서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 산노미야 역에 도착했다. 항구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모자가 날라갈 뻔 했다. 개항 항구라 그런지 아직도 전근대적 건축물들과 조형물들이 많이 보였다.
키타노이진칸 가는 길 한적하다. 다들 근무할 시간에 여행을 하고 있어서일까? 도시가 조용했다. 관광객들도 많이 보이지 않아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이국적인 풍경들과 근현대적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멈춰진 모습에 풍경이다. 그 중 가장 눈에 띈 스타벅스는 이 곳에서도 시그니쳐 매장 중 하나다. 근현대적 건물 안에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으니 커피가 아닌 가베(커피의 옛이름)가 있을 듯 하다. 잠깐 안에 들어가니 사람들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이 곳을 즐기고 있다. 시간이 멈춘 이 곳에서 말이다.
시간 여행과의 작별을 고한다. 점심은 고베규란다.
기대감을 안고 고베에서의 즐거운 만찬을 위해 발걸음이 빨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