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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Jun 03. 2023

이스트리아 반도로 가자 7

크로아티아, 포레치 Poreč

아침 일찍 타르를 떠나 포레치로 가는 길. 풍경은 보통 들판이나 풀, 자연이다. 가만히 계속 보다 보니 흙 색이 바이에른과 다르다. 더 붉은빛이 도는 갈색으로 어렸을 적 크레파스에 있던 갈색. 한국에서는 더 자주 봤던 흙색인 것 같기도 하고. 꽤 남쪽으로 내려왔고, 바다도 가까우니 뭔진 몰라도 다른 기후권이겠지.


가는 길에는 맛집이라고 하는 빵집에 들렀다. 아침은 숙소에서 이미 먹고 나왔지만 구경이라도 할까 해서. 동글동글하게 소용돌이 모양으로 여러 덩이가 붙어 있는 커다란 빵이 주력 상품인 것 같았다. 저 동글이를 하나씩 떼서 먹으면 되는 건가. 여기에서도 독일 빵집과의 차이점이 한눈에 보인다. 바로 하얀 빵 투성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곡물을 사용한 어두운 색의 통밀빵은 찾아볼 수 없다.


도넛도 있고, 케이크도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맛을 알 것 같은 심심한 빵 몇 개와 헝가리 케이크인 크레미쉬처럼 보이는 것을 샀다. 목이 막힐 걸 대비해서 오렌지 주스도. 빵집 밖에 작은 테이블이 있어 그곳에서 몇 개를 먹었다. 크레미쉬같은 빵은 생긴 것만 조금 비슷했지 전혀 다른 맛이었다.


포레치에서는 약간 외곽에 주차를 하고 시내로 걸어 들어갔다. 마침 도착한 관광버스엣 내린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한 무리인 양 같이 걸었다. 시내 쪽으로 향하는 길이 하나밖에 없으니 뭐. 지금은 필요 없는 환전 사무소들이 몇 군데 보이는데 문은 물론 닫혀 있었다. 포레치를 포함한 이 근교 여러 여행지를 묶어 소개하는 관광객 센터도 있었다. 터치 스크린이 잘 작동하지 않아 모든 정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대강 여기 근교에 유명한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에 그곳에 가지 않을 거란 것도 결정했다.


조금 더 걸어가 도착한 중앙 광장에서는 부활절 행사가 한창이었다. 성당 앞에는 커다란 달걀 모양 조형물이 있고, 아주 어려 보이는 사람들이 유니폼을 입고는 다양한 빵을 나눠 주고 있었다. 이 부활절 행사 덕분에 빵을 잔뜩 얻어먹었다. 같은 디자인의 앞치마에 나이대도 어린 걸 보니 제과학교의 학생들인가? 그리스 찹쌀도넛 같은 루쿠마데스와도 비슷한 쫄깃한 도넛은 화이트 초콜릿과 다크 초콜릿 소스를 맘껏 찍어 먹을 수 있었고, 계피맛이 향긋한 케이크와 피스타치오가 들어간 듯한 디저트도 있었다. 종류별로 하나씩만 맛보겠다 했는데 그 종류가 너무 많았네. 가뜩이나 아침을 먹고 나서 빵까지 먹었는데 여기서 또 빵을 2차로 먹으니 점심을 안 먹어도 될 정도로 배가 불렀다.


요즘 유행인 건지, 포레치에도 크로아티아 다른 여행지에서도 젤리 가게가 많이 보였다. 나중에는 독일에서도 봤던 것 같다. 색도 모양도 다양한 젤리를 가득 쌓아놓고 파는 해적 컨셉의 가게인데, 크지도 않은 마을에 여러 곳이 있으니 궁금해서 한 번 들어가 보았다. 과연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알록달록하다. 사실 포레치는 당일치기로 몇 시간만 짧게 둘러보고 떠나려고 했던 곳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광장에서 도넛과 빵을 잔뜩 얻어먹으면서 뭐라도 사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기에는 배가 너무 부르고, 기념품은 원래 사는 스타일이 아닐뿐더러 끌리는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젤리를 사자. 


복작복작하고 단체 관광객들도 많아 정신없었던 시내의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라고 갑자기 한적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숨통이 트였다. 아마도 저녁에 본격 영업을 할 것 같은 해안 바로 옆의 해산물 음식점이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구경할 수 있는 성 같은 건물도 지났다. 갈매기도 있고, 정박되어 있는 요트들도 있고, 독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퉁퉁한 야자수도 있다. 


한국이 삼면이 바다인 사실상 섬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바다와 가깝게 자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뮌헨에서 살면서 바다가 없다는 것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슬로베니아의 피란에서부터 매일같이 바다를 보고, 다양한 바닷가를 거닐면서 윤슬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꿈꾸고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망망대해가 주는 그 기분은 강이나 호수와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아주 목 좋은 곳에 있는 거대한 빌라에는 익숙한 이름, '케링 아이웨어'가 적혀 있었다. 오호라. 크로아티아 지사인지 발칸 지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풍수지리가 좋은 곳에 사무실을 갖고 있단 말이지? 처음 와보는 나라, 처음 와보는 도시의 바닷가에서 익숙한 이름을 보니 그 순간이 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여기가 사무실이라니. 그럼 재택근무를 권장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사무실에 나오고 싶지 않을까.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야, 어디에 살면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그렇게 예상보다는 긴 시간을 포레치에서 보냈다. 다시 바닷가와 복작복작한 시내 거리를 지나왔던 길을 돌아가는 길. 관광객이 워낙 많기도 했지만 작은 규모 치고는 참 시끌시끌한 분위기였다. 


"여기 사람들은 말할 때 소리를 많이 지르는 것 같지 않아?"

"흠?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아니라 소리 지르는 건 다 이탈리아 사람들이잖아."

"아! 무슨 말로 떠드는지는 신경을 안 썼다."
"이탈리안 스타일이 그렇지 뭐. 그리고 너랑 한국 친구들도 똑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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