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와 청담동과 칭다오와 뮌헨

by mig

one line a day라는 일기 쓰기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일어난 일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1년 전, 2년 전, n년 전의 오늘도 함께 짧게 적는 방법이란다. 이 방법을 위한 다이어리도 판매하고 있지만 펜보다 키보드로 쓰는 것이 편하니 온라인에 적어 본다. 물론 이는 내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이나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남겨둔 흔적을 보고 다시 쓰는 것이다. 기억력이 그리 좋지는 않다. 나의 온라인 기록의 단점은 부지런히 실시간으로 그날그날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n년 전 오늘이라고 알려주는 기록들이 사실 그날 일어난 일이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대충 그 언저리 즈음에 일어난 일이겠거니 하고 우선 오늘자를 써본다.


6년 전.

쿠바 여행이 한 달 정도 남았던 때. 그냥 문득 쿠바에 가보고 싶어서 몇몇 친구들에게 “쿠바 갈래?” 했는데 냉큼 가겠다고 해서 총 다섯 명이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스페인어를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 온갖 소통과 통번역을 내가 하게 되었고, 그 여행을 준비하는 겸 취미 겸 온라인 스페인어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감만 살리려고 한 달만 했는데, 멕시코에 계신 선생님과 통화를 하는 방식이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평일 늦은 저녁에서 밤 시간이었고, 그 시간대에 내가 집에 있을 확률은 0에 가까웠다. 친구들과 먹고 마시다가 중간에 30분 시간을 내 수업을 했고,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스페인어로 떠드는 내 모습을 친구들은 재미있어했다. 사실 스페인어가 본격 편해진 것은 나중에 라틴아메리카 배낭여행을 했을 때와 라티노 친구들을 잔뜩 사귀어 매일 함께 놀았을 때였다. 독일에 살고 있는 지금도 연초엔 몇 달간 페루 선생님과 수업을 했었고 다음 달에 친한 친구를 꼬셔 같이 시작하는 또 다른 스페인어 온라인 스터디 역시 기대하는 중. 계속 온앤오프로 어찌어찌 스페인어를 잡고는 살았구나.


5년 전.

나의 좋은 친구이자 멘토인 선생님과 우리의 구역(!)인 청담동의 트리아농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넓은 인맥의 필요성도 잘 못 느끼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지도 못해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친구가 된 경험이 많지 않은데, 쌤은 내가 책을 통해 알게 되어 먼저 다가가서 가까워진 사이다. 나이는 삼촌뻘이지만 서로 파파와 딸이라고 부르는 관계. 하지만 만날 때마다 넓고 깊은 대화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몇 시간씩 수다를 떨게 되는 친구사이이기도 하다.


4년 전.

칭다오 여행 중이었다! 베이징에서 침대 기차를 타고 갔던 여행. 해산물도 원 없이 먹고, 칭다오 맥주 박물관에 가서 한 시간 동안 생맥주를 무한으로 마셨다. 앵두가 유명한 곳이라 길가 리어카에서 파는 앵두도 사서 맘껏 먹었고. 맛있고 가격 좋은 안후이 국숫집도 기억에 남는다. 중국에 있을 때 여행을 충분히 자주 갔다고 생각하는데도 이 시국이 되고 나니 더 자주 다닐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동시에 또 베이징도 더 잘 알고 싶었고... 힘든 선택이었군.


3년 전.

중국 생활을 마치고 잠시 한국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이 날은 마침 친구들이 같이 사는 집에 놀러 가서 요리해서 먹고 논 사진이 있네. 사람 많기로는 빠지지 않는 베이징에서 살다 들어갔으면서도 매 순간 서울에 사람이 참 많다며 놀라고 다녔다. 하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바로 더위였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2018년 여름이 유난히 심했다고는 하더라. 고작 2년이지만 건조한 대륙성 기후에 적응을 아주 잘하고 살고 있었는데.. 고국에서 습하고 쪄 죽는 한국의 여름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이때 매일매일 친구들과 놀러 다니면서도 중국 생활의 마무리를 한답시고 HSK 6급 시험도 보고, 독일로 넘어간다고 괴테 A1 (ㅋㅋ) 시험도 봤다. 그리고 이후로 아직 여름에 한국에 들어간 적은 없다... 강렬했던 기억이여.


2년 전.

와, 독일에서 한참 고민 많던 시기였다. 고민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배부른 생각이긴 했는데 이때 독일에서 “어떤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형태”로 일을 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5월에 본 Leben in Deutschland 합격증이 7월 말이 되어가도록 안 왔기도 해서 그 핑계로 본격 취업 준비에 뛰어들지는 않았던 시기. 뮌헨으로 왔던 5월부터는 친구들이 뮌헨으로 계속 놀러 와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나도 관광객처럼 도시를 탐방하며 놀러 다녔다. 막 독일어 A2/B1 시험을 통과해놓고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면서 이때부터 독일어를 놓은 것도 함정. 그래도 2년 좀 넘게 뮌헨에 살면서 그 절반 이상을 락다운으로 보냈는데, 이 시기에 조금 도시 곳곳과 근교 호수들에 놀러 다닐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1년 전.

간격을 지키고 연락처 정보만 쓰면 그래도 카페 내부에 앉을 수 있었네. 봄과 가을 락다운 사이에 잠시 규제가 느슨해진 여름이었다. 시내에서는 온갖 여름 축제가 열리고, 영국 정원을 비롯한 공원에는 사람들이 미친 듯이 터져 나오던 때. 조심조심하며 동네 카페와 음식점만 다니던 시기였다. 동시에 고새 취업을 한 나는 회사에서 첫 번째 반기

리뷰를 하기도 했다. 주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독일어 공부를 하겠다고 구두로만 약속을 하고 (실행은 결국 그다음 해에), 부족한 독일어를 만회하고자 영어가 필요한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겠다고 했다. 전사적으로 꽤나 적극적인 사내 교육 Weiterbildung 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는 좀 열심히 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쌓여 있는 강의들만 수두룩이구나. 그래도 조급해하지 않고 야금야금 들을 테다.


더 찾아보면 7년, 8년 전의 기록들도 나올듯한데 (생각해보니 최근 한 친구가 7년 전 기록을 공유했네.)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일자가 정확한 기록이 아니라 매일 하는 의미는 없겠지만, 주기적으로 해보면 꽤 재미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