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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Oct 28. 2022

도전인지 도망인지 하려다 깨지고 깨우쳤던 이십 대

남들처럼 잘 사는 게 나에게도 잘 맞는 길이 아니었구나

20대. 모두가 청춘이라고 부르고 아름답다고 하는 나이가 되면 자유로울 줄 알았다.

아니 자유로웠다. 

내가 듣고 싶은 강의를 골라서 수강신청을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을 사먹을 수 있고

밤늦게 술을 먹어도 되고 클럽을 가도 되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대학입학 하자마자 취업을 생각했다.

적성과 맞지 않는 과 수업을 꾸역꾸역 들었다.

맞지 않는 옷에 나를 욱여넣었다.

흥미로운 수업은 내가 잘 할 자신이 없어서

반짝이는 다른 아이들을 보며 지레 포기했다.

학과 수업 잘 들어서 자격증부터 따자, 취업 잘 되는 경영을 복수전공하자.

그림을 좋아해서 아니 잘하고 싶어서 회화과를 복수전공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복수전공이 자유로운 이 학교를 들어온 것이었는데...그 욕망은 동아리에서 풀었다.


'나는 스트레이트 졸업을 하고 직장에 들어가서 돈을 벌어서 

이 가난을 극복할거야. 힘들게 일하는 엄마 일 더이상 안하게 해드릴 거야.'

학교 근처 맛집대신 학식을 먹었고 영어학원을 다니고 

취업준비 프로그램 등 이것저것 다이어리가 빼곡했다.

뭐가 그렇게 바빴던지.


그러나 나는 아르바이트도 길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지만 용돈벌이를 위해서 

방학 때마다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했다.

그렇게 사회적 가면을 쓰는 법을 배웠다.

일터에서도 동아리에서도 꼭 못견디겠는 사람이 한 명씩 있었고

학교는 방학이라도 있지, 어떻게 일년에 그렇게 적게 쉬면서 일을 할 수 있지 싶었다.


전공 친구들과 나의 성향은 너무나 달랐고, 

나의 전공은 돈을 많이 버는 직업과는 거리가 멀었고

나의 스펙은 턱없이 모자랐다.

열심히 살면서도 해소되지 않는 불안 속에 학생상담소를 찾았다.

상담은 내 안에 있는 열쇠를 찾아주는 작업이었다. 

내 마음을 내가 모르겠어서 찾아간 곳이었다.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는 거였네, 하고 한 학기 정도 하다가 그만두었다.

가족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고학년이 될 수록 동기들은 휴학하고 해외로 나가며 구체적으로 도전하고 꿈을 펼쳐나갔다.

교환학생으로,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워킹홀리데이로, 배낭여행으로...

새로운 경험으로 새로운 기회들을 만들어 나갔다.


'좋겠다.

나도 그러고 싶다.

나도 영어실력도 늘리고 해외경험도 쌓고 싶다

그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휴학을 하면 다시 복학을 못할 것 같은 생각에

4학년 1학기까지 다니며 졸업사진까지 다 찍어두고 한 학기를 남기고 휴학을 했다.


돈을 모으기로 했다.

그리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꿈꿨다.

나를 못미더워하는 가족들은 반대가 심했다.


나와 가치관이 맞지 않는 일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에 대해 경험할 수 있었다.

직장이란 곳이 이런 곳이구나 

사회생활이란 이런 것이구나 배울 수 있었지만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니

나의 시간을 돈과 바꾼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몇 개월 간 출퇴근하며 돈은 벌었지만 워킹홀리데이를 위한 준비는 병행하기 어렵단 생각에

일을 그만두고 영어회화학원,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준비를 해나갔다.

시간은 흐르고 돈은 자꾸 줄어들었다.

지역을 정하고 표를 끊어야 하는데,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아직 준비가 안됐어'라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

주위의 반대에 '나 잘 다녀올 수 있어'라고 응대하지 못했다.

사실 나도 불안하고 걱정되고 막막했다.

자유롭기 위해 시작한 도전이 

'이러다 돈도 다쓰고 시간도 흘러가고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며

나를 끊임없이 재촉하는 것 같았다.

'비자는 나왔는데, 벌써 5월인데, 지금이 그곳 날씨가 제일 좋은 때라는데

계절이 바뀌기 전에 나가야지, 복학시기도 생각해야하고...'

새벽까지 워킹홀리데이 정보를 찾아보며 잠도 잘 못자고 

이런 저런 생각에 불안해하며 하루하루가 흘렀다.


워킹홀리데이를 하려면 체력도 좋아야 한다는 생각에 

동네 뒷산 올라가자고 하는 제안에 따라 나섰다. 

등산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전날 두 시간밖에 못잤던 저질체력인 나에겐 벅찼던 루트였다.

자꾸 뒷골이 얼얼하고 붓는 느낌이 나고 땡겼다

얼음생수로 냉찜질 하면서 피곤하면 자주 그랬으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마지막 코스는 빈대떡집.

파전에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네 언니 오빠들과 헤어지며 잘가 라고 웃는데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토요일이었고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고나면 괜찮겠지. 

자고나니까 한쪽이 굳어버렸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안면마비가 왔다.

슈렉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안그래도 외모에 대해 불만이 컸는데

이젠 사람들 앞에 나설 수가 없게 되었다.

거울을 보기 싫어했는데 더 보기 싫은데

재활을 위해서는 거울과 마주해야 했다.


월요일부터 치료를 시작했지만 쉽사리 좋아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6~8주면 자연회복이 된다고 했지만

나는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에 속했다.

그런 얼굴로 내 상태가 금방 좋아질 줄 알고 컴퓨터 학원을 마저 다녔다.

얼굴 좋아지면 워킹홀리데이 갈 꺼니까 마저 배워놔야한다고.


마음을 긍정적으로 먹고 푹 쉬고 거울을 보며 

얼굴 근육 움직이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했지만

매일 밤마다 혼자 울었다.

잘못 살아온 벌을 받은 것 같았다.

가족들은 생각없이 일그러진 얼굴로 웃는 나를 보며 울었다.

그때 또 하필이면 짝사랑하던 남자사람친구가 있을 때여서

더 속상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포기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아등바등 몇 달 간 모아놨던 돈들도 

치료비로 눈 녹듯 사라졌고

학원들도 결국 그만두고

짝사랑도 그만두고

성당도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고작 얼굴 하나 일그러진 것일 뿐

사지 멀쩡한데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절망감이 밀려왔다

이 얼굴로 평생 살아야 하나?


자려고 하는데 눈도 감아지지 않아서 안대를 끼고 

귓 속 고막도 같이 마비가 되어서 제어가 안돼

지나가는 버스 소리가 항공기 소음처럼 크게 들리고

음식을 먹을 때는 볼에 끼고 입을 타고 흘러내렸다 

혀도 뻣뻣해져서 말아지지도 않고 도통 맛을 알 수가 없었다


아등바등 가지려했던 것 

이루려했던 것을

포기하니까 오히려 편했다

담담했다

이런 나를 보고 가족들은 더 마음 아파했다


나는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길이

이제 와서 돌아보니 도망이었나 싶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준비 덜 됐어도 그냥 지르고 갔으면

어떻게든 굴러가고 어떻게든 살아보고

왔을 텐데 나를 못믿어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 내려놓고 다 비우고 나니 

나 뭐하고 싶지?

마음 속에서 솟아난 목소리.


세상에서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어

이렇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어

이렇게 하면 인정받을 수 있어

뱁새가 황새 쫓아가는거 이제 그만두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하는거 그런거 신경쓰지말고

나 뭐하고 싶은거지

물어보게 되었다


해묵은 사진첩에서 빛바란 사진을 꺼내 보듯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두 가지가 떠올랐다.


어릴 때 학교에서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들이다.

때떄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몰입의 즐거움을 느꼈지만

그 자체를 즐기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뛰어나게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

더 잘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무엇보다도 그걸로 벌어먹을 자신이 없어서 

취미로 하자며 덮어두었다.

그러나 취미로도 즐멈길 마음의 여유가 없어 점점 멀어졌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가서

좋은 직장 들어가서 돈을 많이 벌어서

가난을 벗어나자 라는 마음의 소리에

밀려났던 것들이 꾸물꾸물 올라왔다.


십년이 흐른 지금도 온전히 회복되지 않아 

얼굴이 일그러져 있지만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었던 

이 시기가 지금 와서 돌아봤을 때 감사하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직업관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말하는 


안정적인 고용환경

직원복지

네임밸류

많은 급여


이게 나에게 중요했던 게 아니었구나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거구나

일을 하면서도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구나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사람들과 

함께 마음을 맞추어가며 일한다면

방학처럼 긴 휴식이 없이도 오래 일할 수 있는 거구나


알게 되었다

 

나에게 잘 맞는 직업을 찾아갈 수 있었던 시간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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