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풀어놓는 새 직장 이야기
내 재능과 적성과 상반된 일을 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간다. 오늘 오랜만에 들어와서 보니, 브런치에 2년 전에 썼던 제자리걸음 어쩌구 글이 2000뷰을 찍었단 내용이 무색하게 나는 그 사이 그 직장을 그만뒀고 일년 반을 쉬었고 일을 다시 시작했다.
좋은 점은 내가 관심 없는 분야라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없다. 직장을 정말 밥벌이로 생계유지로 생각하고 다니니 이런 점이 좋다. 승진하기 위해 눈치싸움 하지 않아도 되고 더 좋은 포지션과 롤을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직장을 고를 때 기준과 상반되는 점이 많아서 하루만에 그만둘 뻔 했다.
남성중심의 문화가 짙다. 담배타임이 있어서 뒷담화와 비공식적인 대화, 협상(?)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회식을 강요하고 술자리에서 취한 사람들을 놀리기도 하고 흥청거리는 분위기를 즐긴다. 성차별적인 대화,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선을 넘는 대화가 일상적이다. 공개적으로 나이를 까발리지 않나, 어린 직원과 비교 아닌 비교를 하며 나이차별적인 얘기까지 들었는데 드는 생각은 차라리 결혼을 해서 진짜 애엄마였으면 덜 억울하겠다는 마음과, 그래 성모님도 엄마인데 성모님을 닮자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외국에서는 나이로 사람을 단정짓지 않아 좋은데 우리나라는 유독 특히 여자는 나이로 사람 우스워지기가 쉬운 것 같다.
내가 이 나이 먹고 이런 취급을 당하면서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계속 하는 게 맞을까?
요새 정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 삼키느라 애를 먹었다.
참고로 내가 하는 일은 외근직으로 신규입점을 도와주고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불편이 있으면 이용방법을 알려주고 프로그램이 오류났으면 고쳐주고, 우리 서비스에 이용등록 해놓고 안쓰는 곳에는 찾아가서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해주고 계속 쓸 수 있게 독려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기업이어서 세번은 이름을 반복해서 외쳐서 알아들을 때까지 말해줘야 하고 문전박대도 당한다. 잡상인 취급, 푸대접도 당한다. 짜증도 기다려달라는 요청도 받아줘야 한다. 나이 많은 고객의 경우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려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님께서 보내주신 직장이라 생각하고 다니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훈련이라고.
바리사이들에게 푸대접을 당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헤아려드리고
(선교를 다녔던 사도들은 물론 성령에 힘입어 말하고 선포했겠지만)설득력과 언변, 임기응변을 기르고 거절에 익숙해지는 시간.
길찾기도 익숙해지고 우선 부딪쳐보고 다가가보는 용기를 기르고
안되는 것은 바로 내려놓고 순간 판단력을 기르고
상대 상황을 헤아리며 융통성을 기르는 시간.
자존심을 내려놓고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는 희생정신을 배우는 시간.
세상의 기준을 다 내려놓고 겸손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시간.
첫째, 보고 배울 수 있는 역할모델이 있다. 상사가 배려심이 많고 정이 많고 협상의 귀재(?)다. 결단력이 뛰어나고 빠릿빠릿하다. 유도리 있게 사람들 상황들을 배려해서 일을 만들어서 나눠준다. 우리가 을 회사여서 갑 회사의 엄청난 갑질(?) 속에서 깔데기 역할을 해주어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정도로 나눠준다. 사방팔방에서 연락이 오고 조율을 해야하는데 다 처리한다. 해결 못해서 들고가면 군말없이 해결해준다. 일을 나눠줄 때도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적절한 구실을 만들어서 설득하고 다른 당근을 섞어 주면서 어르고 달래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좋은 리더가 되고 싶다고 비전을 가지고 또 그 기회를 주님께서 주셨지만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고 있던 터였기에 리더로서의 내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스스로를 바꿔나가고 있다.
둘째, 봉사를 병행할 수 있다. 외근직이라 자유롭다. 일정짜는 것도 내 재량껏 짜고 허락받고 나가서 정해진 일만 잘 처리하면 터치하지 않는다.
머리형이라 생각이 많고 머리가 자주 복잡해지는데 밖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면 기분전환도 되고 환기가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져서 좋다. 동네마다 다른 분위기와 거리를 보는 재미, 가게 인테리어나 판매하는 품목을 보기도 하고, 가게마다 이렇게 굴러가는 구나, 어린데도 야무지게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 내 또래인데 버젓한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 할매할배 사장님, 부모님에게 물려받아서 자영업에 뛰어든 청년 사장님, 같은 상황 속에서도 어떤 사장님은 승질을 있는대로 내고 어떤 사장님은 정말 겸손하게 친절하게 한결같이 사람들을 대하는 구나 배우기도 한다. 일 이외에 멀티로 여러 가지를 결정하고 정리하고 소통해야하는 나에게 자유로운 업무환경은 정말로 절실하다.
한때 내근직을 했는데 관재업무라 모든 일을 크게 보고 조정하고, 즉시 반응하고 소통하는 훈련이 되어서 좋았지만, 이곳 저곳에서 날라들어오는 공을 쳐내느라 눈코뜰새가 없어서 머리가 더 복잡해지고 사방에서 감시(?)를 해대는 통에 봉사를 병행하기가 어려웠다.
셋째, 함께 일하는 어린 직원들을 알바들을 만나면서 내 이십대 시절을 돌이켜보고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그때 상처들 어려움들과 화해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내가 그랬듯 워킹홀리데이를 꿈꾸고 준비하는 친구들, 진짜 원하는 직장을 위해 거쳐가는 마음으로 일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에게 일은 어떤 의미지 돌아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어디서 어떤 상황 속에 일을 하든 무엇이든 배울 수 있고 무엇이든 시도하고 키워갈 수 있는 가능성과 여지가 있다는 걸, 야무지고 확실한 성격을 지닌 어린 친구들이 일하는 모습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나도 이제 사람들을 키우고 관리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새삼 깨닫는다.
과장님 대리님 밑에서 일 배울때가 편하고 책임도 덜했는데, 아무리 관심없는 직종에서 일을 하더라도
이제 책임지는 자리 어려움을 덜어주고 해결해주는 자리에서 끌어줘야 하는구나.
내가 사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만 먹었다고 생각이 들 때가 많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또 아닌가보다.
동료나 후배들이 여성으로서 편견, 말실수, 불편한 상황을 겪을 때 나서서 중재해야 하는구나, 나에게 그럴 수 있는 힘과 경험과 지혜가 있구나, 깨달았다.
아닌 건 아니라고 당차게 말하고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어린 친구들이 불편했는데 사실은 부러웠던 것 같고 억울하기도 했나보다. 나도 표현하고 싶은데 눈치보고 있었구나. 표현을 안하다 하려다보니 거칠게 나오고 그게 싫어서 꽁꽁 숨기고. 화법도 말의 강도는 중요하지 않구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 만으로도 어느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는 힘이 있구나, 이게 바로 자유의지가 지닌 힘인가 싶다. 의사를 표현하는데 단순해져도 되고 떳떳해도 된다는 걸 배울 수 있었다.
넷째, 지난 인간관계에서 해결되지 않은 상처를 다시금 발견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정말 묘한게 그게 전혀 다른 업종에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는데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거다. 그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은 내가 어떻게 되는 상관치 않는 용기있는 사랑이라는 것도 어느 동료를 통해 배웠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하며 달라져가고 있다.
또 세상의 기준을 받아들이면 세상의 잣대에서 벗어난 내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을 지적하는 이들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상처를 받지만 그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게되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
강추위에 손이 얼고 감기도 걸리고 일 갔다오면 피곤에 절어서 뻗기 일쑤고 자주 길을 잃고 헤매고 싸늘한 사장님들을 응대하면서도 친절과 평정심을 유지해야하고 기껏 깔아논 프로그램을 지우고 취소하는 걸 오델로 게임하듯 엎치락뒤치락하는 데 이거 계속 하는게 맞나 나 생각보다 감정노동 강도가 심한 일을 하는구나 싶고 회의감에 휩싸였던 요즘이었다.
나는 일의 의미가 중요한 사람이다.
친구를 통해 그걸 깨우쳐 주셨다. 소상공인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남지 않는 장사를 하는 사장님들이 많다. 자영업을 하면 재료비나 인건비 때문에 돈을 빌려서 쓰다가 신용등급이 최하로 떨어지기도 한다는데… 장사는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성실하게 고단하게 살면서도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일 거다.
사실 지금 다니는 직장은 내 마음 속에 시한을 정해두고 다니고 있었고 가족들에게도 공공연히 말했다.
엄마가 그랬다.
이제 민들레 홀씨처럼 이리저리 바람에 휩쓸리며 다니지 말고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다고.
이전 직장을 6년 다닌 건 내게 기적이었다.
그런데 어제 전 직장 팀장님과 통화를 하면서 다시금 느낀 건 나 정말 그 직장에서 온갖 애를 쓰면서 버텼구나.
그리고 비슷한 처지와 아픔을 겪게된 친구 이야기를 접하면서 느낀 것. 그때 내려놓길 잘했구나. 더 붙잡고 있었다면 그건 미련이고 나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었겠구나.
자꾸만 가족들이 걱정되고 그 품에 파고들고 싶고 내가 뭔가 해야할 것 같고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들이 후회될 것 같은 마음 때문에 불편하고 두렵다.
그런데 난 알고 있다.
그건 교만이고 자기기만이고 퇴행이라는 거.
나는 이제 부르심에 따라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거.
내가 곁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삶을 개척하며 잘 살아가는 걸 누구보다도 바란다는 거.
날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난 잘 살아야 한다.
나의 영혼을 위해서.
나의 영혼을 구하신 하느님을 위해서
다른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서.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야고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