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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디브라운 Sep 02. 2020

귀여운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


운전면허의 마지막 코스, 도로 주행만이 남았다. 기능 시험을 3번 보게 되는 바람에 원래 내 계획보다, 일정이 많이 밀렸고, 면허를 반만 딴 채로 상주에 내려가야 했다.   


도로주행은 상주에서. 

사람들은 또 알은체를 했다. 


"시골에서 도로 주행 시험 보는게 안 복잡하고 훨씬 쉽지."

"시골 길이 의외로 돌발 상황도 많을텐데. 시골길에서 연습하면 실제 도로에서 운전 하기 어렵지 않나?"


_


일단 교육 예약을 위해 새로운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주말에는 오픈하지 않고 평일 9-6시 교육만 있다고 한다. 시험은 무조건 평일 오후에만. 벙찐채 물었다. 


"아... 그럼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교육받아요...?"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말 

"아니 뭐... 그 정도 시간 내기도 어려워요? 어떤 일 하시는데요?"


그렇지 이게 마, 상주다. 

아니 대체 뭐, 얼마나 빡빡한(대단한) 일을 하기에 이 정도 시간 내기도 어렵냐 되물어 오는 상대의 기세에, 그럼 제가 다시 한번 시간을 조절해보고 연락드리겠다 말씀드리고 끊었다. 일단 교육 예약도 직접 내방해서 해야 한다고 하셔서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출근 전에 들렀다 가기로.


서울 살 때, 집 근처에 면허 학원이 있었다. 주말 아침이 되면 줄줄이 노란 차들이 교차로에 서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회사에서 면허를 딴다고 하는 동료들은 보통 주말을 이용해 연습과 시험을 봤더랬다. 며칠 쭉 이어서 연습하고, 바로바로 시험을 보고 싶은데 일주일에 한 번씩 밖에 시간을 못내서 감이 떨어진다는 얘길 얼핏 들었던 기억도 났다. 그땐 뭐 고개만 끄덕였는데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기능 시험을 봤던 경기도 학원도 마찬가지였다. 주말 아침 15층 집에서 내려보면 귀여운 쪼르르 노란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야간 연습도 있었고, 시험도 항상 주말에 사람이 제일 많았다. 그런데 여긴 상주다. 상주니까.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는거다. 



_



등록하러 학원에 가는 날, 터미널 앞에서 나를 태운 셔틀승합차가 온 시내를 다 돌고 나서야 학원에 들어갔다. 



그런데 첫인상, 마치 이국의 운전면허학원 같이 알록달록한 것이. 분위기 아기자기하고 뭔가 낡고 귀여웠다.  


마치 몇 십 년은 타임슬립 한 것 같은 단층짜리 낡은 건물이 사무실이었다. 금방 접수를 마치고, 시내로 나가는 셔틀승합차를 다시 탔다. 셔틀 한 대가 또 다시 온 시내를 다 돌고 한참 만에 터미널에 나를 내려줬다. 


_


머릿속으로 우선 계산부터 했다. 4시부터 교육을 받으려면, 적어도 사무실에서 3시에는 나와야 하고... 터미널에서 부랴부랴 30분 셔틀버스를 타고 학원에 들어가면 딱 맞겠다. 기본 6시간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고 하려면 월차를 두세 번 써야 될 수도 있겠구나. 아, 시험은 징검다리 휴일에 봐야겠다. 


이렇게 저렇게 계산하고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했더니, 동료들이 얼른 그런다. 


"아우 뭘 그렇게 어려워해. 안 바쁠 때니까 전혀 신경 쓰지 말고 편히 다녀와요." 


갑자기 학원 직원분의 목소리가 귀에 울린다. 

'아니 뭐 그 정도 시간 내기도 어려워요?' 


마, 이게 상주다 마. 다르다 달라여. 확실히 좀 다르다. 

시골이 다 그래, 시골은 원래 이렇지 할 게 아니라 배려라는 걸 잊지 말아야지. 감사히 감사하게도 배려해 주셔서 평일에 마음 편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아주, 나이스! 


이제 도로주행 연습 시작이다, 소식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댓글이 달렸다.

[이 좋은 봄날에 도로주행�� 행복하시겠어여!!!!!�] 

사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다. 날씨가 좋을 때 나는 '아 걷기 좋은 날씨네, 자전거 타기 좋은 날씨네'라고, 내가 해본 경험 정도로 생각하니까. 댓글을 보고 조금 설렜다. 내가 모르는 경험치가 곧 생기겠구나. 


도로 주행 시험 코스를 연습하기 전, 강사님께서 사람 없는 도로에서 먼저 연습을 해보자고 하셨다. 긴장이 좀 되던 참이었는데... 시내 도로를 벗어나 샛길로 들어가자마자 '아, 세상에 길이 너무 예쁘다' 

오후 4시. 반짝반짝한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빛나는, 연초록 이파리들이 나풀나풀 팔랑팔랑 날리는, 그 길을 지나갔다. 근사하다. 나도 모르게 "와하하 너무 예뻐요 이 길."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 순간 어쩌면 내가 운전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난생 처음 해 본 생각. 앞으로 펼쳐질 도로 주행 연습을 생각하지 못하고 이런 시건방진 생각을 했더랬다. 이 좋은 봄날에 도로주행이라니 행복한 게 맞다.  

암튼 마음이 촐싹 촐싹 설렜다. 


선생님은 말이 느리고 좀 푸근한 타입이셨다. 다행이다, 이런 쪽이 나랑 맞는다. 


도로에 나가 아주 천천히 차선을 달렸다. 어차피 우리가 탄 노란차는 다 비켜가니까 앞에 옆에 뒤에 신경쓰지 말고 내 차만 생각하면서 달리면 된다고. 이제는 이해하는 말이지만, 그때는 온 몸을 굳게 만드는 긴장감에 신경을 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고, 신경을 쓸래야 쓸 수가 없었다. 


연습 첫번째 날, 두 시간 연습을 마치고 시내 나가는 셔틀을 기다리는데 강사님들도 6시 퇴근하시느라 우르르 나오셨다.  


“집 어디에요?” 모여있던 수강생들에게 물으셔서 각자 어디 어디라고 각자 위치를 말했더니만 각자에게 차를 할당해주신다. 내겐 뒤를 가리키며 저 강사님 차를 타라고. 네? 얼결에 강사님 차에 올라탔다. 강사님들이 자기 집 방향이랑 맞는 수강생들을, 자기 차에 태우고 퇴근을 하신다. 세상에. 마 이게 상주다 마. 

(나중에 들었는데 이 날 강사님 셔틀은, 셔틀 기사님의 월차라 그랬다고. 매번 있는 일은 아니었다. 껄껄.)


상주에는 아주 귀엽고 정겨운 운전면허학원이 있다. 

어쩐지 푸근해지는 기분, 왠지 한번에 붙을 것 같은 기분으로 첫번째 연습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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