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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극<오셀로와 이아고>

-공연 배리어프리버전 제작기-

탈춤극<오셀로와 이아고>
배리어프리버전 제작을 끝내고...


오랜만에 끄적임..
요즘 생각이 많아져서...
공연작업을 할 때마다 힘이 들고 한계가 느껴져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든다..
그래놓고 또 하게 되고...
필요에 의해서, 필요해서, 필요하니까 하는 건데 혼자 거의 하다보니 버거울 때가 많았던 듯ㅠㅅㅜ

이번에도 그랬다..
영화계보다 열악한 공연계..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함께 즐겨야 함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에서...함께 하고프단 생각을 가져준 사람들에게 감사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싶었다..
작품에 대한 욕심과 잘 하고 싶은 의욕, 그리고 내가 하겠다고 하면 도와주겠다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얀함을 가지고 다시 진행됐다..

<오셀로와 이아고>를 처음 접했던 건 2017년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아르코(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의뢰로 공연 하이라이트 영상의 배리어프리버전 제작을 하게 됐을 때였다..
20분분량 열 개 남짓의 작품들을 만났었는데 그 중 탈춤극<오셀로와 이아고>제일 힘들게 작업했었다..
언젠가 전체 분량의 화면해설대본을 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는데 인연이었던 건지 천하제일탈공작소에서 2월초에 연락이 왔던 거다..


천하제일탈공작소<오셀로와 이아고> 배리어프리 유튜브영상 캡처(2017)

2017오셀로와이아고_배리어프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제작)


기관이나 극장이 아닌 극단에서 진행하는 거라 제작비는 더 여의치 않았다..
영상이든 공연이든 제작비 부담이 늘 관건..
그래서 생각했던 게 창작자들의 배리어프리버전 제작 참여였다..
모든 작품들을 우리가 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배리어프리공연 제작에 있어서는 자막제작이라도 극단 관계자가 참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제작가이드와 샘플을 제공해 진행하게 했었는데 이번엔 그마저도 할 사람이 없는 상황..
나 또한 인력을 추가하기에는 여력이 되지 않아 거의 혼자 끌고 나가야 했는데 그 어떤 사명감에 자막오퍼레이터까지 떠맡게 됐다..


배리어프리제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남산예술센터에서 진행했던 것처럼 공연 관계자들 대상으로 배리어프리 특강을 진행했다..

'알면 이해, 모르면 오해'가 되니까 배리어프리버전 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됐기에..

교육은 시각장애의 이해와 화면해설의 필요성, 청각장애의 이해와 자막&수어의 필요성, 그리고 배리어프리제작 가이드 등의 내용으로 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구성했다..


배리어프리 특강을 진행하는 강작가


탈춤극...
처음 시도하는 작품이라 제작기간을 기존 연극보다 넉넉하게 잡는다고 잡았지만 혼자 진행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재연작이라 지난 2018년 실황 영상으로 어느정도 미리 작업할 수 있었지만 공연 특성상 수정될 여지도 생각해야 했고 극장 셋업이 된 이후에나 본격적인 수정작업이 가능했다..


(작년에 남산예술센터에서 배리어프리버전 제작으로 진행됐던 네 작품 중 세 작품은 초연작이었는데 첫공을 배리어프리버전으로 진행하기에는 변수들이 많아 수정작업시간이 부족했었다..
그래서 제작시간 확보와 완성도를 위해서 첫공 이후로 배리어프리버전 상연일정을 미루는 방향으로 극장쪽과 합의해서 진행됐었다..)


천하제일탈공작소<오셀로와 이아고> 배리어프리 유튜브영상 캡처(2018)

2018오셀로와이아고

<오셀로와 이아고>는 탈춤도 탈춤이지만 음악이 정말 좋았던 걸로 기억에 남았었다..
전통국악과 판소리, 클래식음악과 현대음악이 섞였다고 해야 하나?!

대사가 많지 않아서 자막대본 작업이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배리어프리자막은 대사뿐만 아니라 화자정보, 소리정보, 음악정보들이 추가되어야 해서 특히나 이번 작품은 음악정보에 집중했었다..
신재훈 연출님과 머리를 맞대 음악의 분위기에 주요 악기도 추가하면서 마무리를 했다..

자막 제공 방식은 무대에 스크린을 설치해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개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PPT를 이용해 팝업(나타났다 사라지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오셀로와 이아고>자막대본(개방식) 일부
<오셀로와 이아고>자막대본으로 제작한 PPT 일부


화면해설대본도 대사보다 춤이 많아 어떤 걸 우선으로 설명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춤동작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동작 위주)로 채운 뒤 주관적인 정보(느낌과 분위기)를 추가하는 걸로 진행했다..
등장인물들이 수어를 사용해 대사가 많지 않았던 영화<마리이야기>를 작업했을 때를 생각하면 <오셀로와 이아고>는 시간이 더 든 것도 같다..
두 작품 다 1분분량 작업하는데 1시간이상 소요된 듯..


수어의 경우 앞서 계속 같이 작업했던 '잘함'의 김홍남(홍쌤)&황순(순쌤) 수어통역사님과 함께 했다..

24년 경력의 베테랑이시라 연출님과의 소통을 통해 번역작업이 진행됐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수어통역을 동시통역으로 생각해서(동시통역을 하기도 하지만) 준비시간을 넉넉하게 주지 않는다는 거다..

수어도 외국어와 같아서 특히나 예술작품의 경우 한국어를 농식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번역한 후(의역이 필요한 경우도 있음) 진행되어야 하므로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그렇게 진행하고 있는데 코로나 여파로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연 자체가 변경되고...
최초 배리어프리 실황 중계라는 큰 이름이 붙게 됐다..
개방식으로 준비했던 자막은 필요한 사람만 단말기 등을 이용해 볼 수 있는 폐쇄식으로 변경하게 됐다.. 

쉐어타이핑을 통한 실시간 자막서비스(롤업:한 줄씩 올라가는 방식)로 진행하게 돼서 자막대본 수정작업이 불가피했고, 몸이 하나라 화면해설대본 작업시간 확보가 힘든 상황이었다..

실황 중계 공연 관람시 쉐어타이핑 이용안내 메뉴얼


<오셀로와 이아고>자막대본(폐쇄식) 일부


허리디스크 두 개가 내려앉은 상태라 꼬리뼈 통증에 울면서 수정작업을 했다..
끊지 않고 전체로 진행되는 런쓰루 때 보니 동작들이 일부 삭제가 되거나 변경이 되어있었다..
수정시간이 부족했는데 다행이었던 건 내레이션을 맡은 윤진성 배우님이 작품을 잘 알고 있고 연습 때 계속 참관하셔서 동작들을 외울 정도라 배우님의 순발력에 기대를 걸었다..
그래도 공연 전까지 수정작업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오셀로와 이아고>화면해설대본 일부


내가 저시력이다보니 피드백을 중요시하는 편인데다 장애 관련 서비스를 제작함에 있어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들이 제작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의라 이번에도 공연 전날 최종리허설 때 시각·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섭외해 모니터를 진행했다..
자막에 대한 모니터는 음악정보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는데 반해 화면해설은 너무 동작 위주의 해설이라 느낌이 궁금했다는 의견이 있었다..
밤새워 화면해설대본과 자막대본 수정작업을 진행했다..

(화면해설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 N사의 작업 영향이 큰 것 같다..작가의 추측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통해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설하라는 가이드에 맞춰 작업하다보니 미사어구나 형용사와 부사의 사용이 줄긴 했다..이 또한 시각장애인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니 참고하는 방향으로..)


<오셀로와 이아고> 공연포스터

아르코 네이버TV 공연실황

아르코 유튜브 배리어프리 공연실황 (문자해설, 화면해설, 수어통역)


실시간 중계가 진행되는 본공연을 앞두고 10분 전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전안내멘트가 나왔다..
극의 이해를 돕기 위해 4분 정도의 분량으로 극단 소개, 작품 소개, 등장인물 소개, 배우가 쓰고 있는 탈과 의상, 무대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했다..
그런데 방송에 사전안내멘트가 나가지 않아 부랴부랴 사전안내멘트 없이는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래서 8시 공연이 5분 딜레이됐던 거..

드디어 공연 시작!
비장애인의 관람을 위해 채널을 나눴다..
네이버TV에서는 오리지널 공연이 나오고, 유튜브채널에서는 화면해설과 수어가 나오게 했다..
자막은 쉐어타이핑앱을 통해 속기가 아닌 자막으로 실시간 제공이 되었고, 그 조작을 내가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막이 방송보다 먼저 나오고 있다는 걸 팀원들에게 톡으로 전달받았다..
현장과 방송의 시간차가 있다는 걸 그제야 파악하고 박용휘 피디님 노트북으로 유튜브 방송에 나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막을 띄웠다..
현장소리와 방송소리가 섞여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공연을 마무리했다..


쉐어타이핑 웹사이트에 개설된 <오셀로와 이아고>공연방 캡처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청각장애관람객이었지만 이 좋은 작품이 정말 좋게 느껴지길 바랐다..
최초 배리어프리 실황 중계..
네이버 8000명, 유튜브 230명 동시접속..
공연이 끝나면 늘 그렇듯 아쉬움이 너무 컸다..
다시는 못 할 것 같고 안 하고 싶고...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하지 않을까 울고 있는데 이연경님에게서 톡이 왔다..


이연경님 톡 캡처(동의하에 첨부)


이연경 :
어제 멋진 공연 잘 보았습니다 샘~ 중학교 무렵 시력을 잃었었는데 다시 빛이 돌아온 것 같은 시간이었어요~ 앞으로도 화이팅입니당~^^*

강내영 :
아..안녕하세요?!
동작설명을 너무 많이 했나 싶기도 하고...느낌이랑 분위기만 전달하기엔 동작이 많아서 화면해설하는데 고민 많이 됐던 작품이어서...의견이 궁금해요..동작 설명 부분이 그림이 그려지긴 했는지...

이연경 :
네 초반에 작품내용설명 먼저 해주신 것과 공연세팅이 인물들의 심리변화에 따라 어떻게 바뀌어갈지도 설명해주신 점 덕분에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강내영 :
어제 작품 새로 촬영해서 배리어프리버전으로 제작될 예정인데 동작 설명을 줄이는 부분 고민 중이거든요..

이연경 :
그리고 단순히 너울거리면서 춤을 춘다고 하기보다 팔동작과 몸동작을 중심으로 설명돼 있어서 상상을 해볼 수 있었어요. 이런 작품은 특성상 중도실명시각장애인들에게 특히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ㅎㅎ

강내영 :
아..감사합니다ㅠㅅㅜ

이연경 :
근데 초반에 작품설명과 인물들의 공연중 의상에 대한 설명은 직접 제작하신 건가요?

강내영 :
네..제가 대본 썼어요..
저도 저시력이라 그런가 배리어프리버전 제작 때마다 한계에 부딪혀서 계속해야 하나 하고 있다요ㅋ

이연경 :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이 독특한 작품을 조금 이해한 다음에 감상할 수 있었어요~ 아무래도 외국고전을 탈춤으로 그려낸 독특한 구성때문에 말이죠.
너무 잘봤고요~ 앞으로도 힘닿는데까지 잘부탁드립니다용 ㅎㅎ

강내영 :
응원 감사합니다ㅠㅅㅜ
연경님..
연경님이랑 대화 나눈 거 공유해도 돼요?!
제가 훗날 못 하게 돼도 저같은 누군가가 애써줄 수도 있으니ㅎㅎㅎ

이연경 :
네 당연 좋아요 즐겁고 다채론 문화생활로 가야죠 늦은 시간 문자드리네요
그리고 고민한 시간 있던만큼 새론 힘이 생기실거라 믿고 있어요 감사합니당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강작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지금 난 어떤 게 힘이 드는 걸까?!
내 능력의 한계?!
함께  사람들의 부재?!
제작 환경?!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들 하는데 즐기지 못 하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기분..
엄살부리는 걸지도 모르고 투정부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난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나 역시도 아무 생각없이 작품을 온전히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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