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진원 Sep 14. 2020

다시 글을 쓰는 이유

리뷰 인생을 그만 두다. 

 책상에 엎드렸다. 아이폰과 패드의 화면을 한쪽으로 돌려놓은 채로. 늦여름의 매미 소리가 쯔르르하며 한껏 소리를 키웠다 저 멀리로 줄여나갔다. 


 지나버린 봄부터 여름이 끝나가는 오늘까지 단 한 편의 글도 써 놓지 않은 노트를 보니 글을 쓰기 더 싫어졌다. 지난번 회사를 나올 때만 해도 올해는 꼭 글로 무엇이든 이뤄보자고 다짐했었는데 그 다짐은 이제 오간데 없었다. 마지막으로 노트를 쓴 날짜를 보니 작년 11월이다. 써놓은 글이 없으니 지난겨울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난겨울과 짙었던 그 밤들을 생각하면 머리맡에서 발광하던 패드의 화면이 어지럽게 떠오른다. 


 패드 안에는 음식 리뷰부터 영화 리뷰, 게임 리뷰, 시리즈 드라마 몰아보기 등등의 리뷰들이 가득하다. 조회수가 100M이 넘는 것을 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내가 보는 콘텐츠에 같이 매몰되어 있나 싶다. 처음에는 동영상 플랫폼만 독립적으로 시청했는데 어쩌다 보니 뒷 배경으로는 자동 사냥이 가능한 게임을 돌리고, 폰으로는 텍스트를 주고받고 패드로는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빈틈이 없는 치열한 삶을 보내고 있다. 손과 발을 가만히 둔 채 눈으로 끊임없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뇌의 어떤 부분을 자극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원하는 만큼의 만족을 얻기 위한 머리의 요구는 점차 거세져서 배터리가 닳아 없어져도 충전기를 꽂아놓고 기기들을 켜 놓을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니 글을 쓸 생각을 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점차 내가 유튜브를 포함한 콘텐츠를 왜 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흐려지고 계속해서 무언가의 리뷰를 찾아다니게 되고 말았다. 유튜브 안에서 계속 슬롯머신을 당기듯 새 로고 침하며 뭐 볼 것이 없나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어쩌나 싶다가 몇 달이 흐르고 나서야 책상에 엎드렸다. 숨과 소음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을 나로부터 돌려놓은 채로. 어떻게 될까 생각하다 보니 선잠에 들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예전에 글을 쓸 때도 참 많이 졸면서, 한낮의 더위와 에어컨의 추위가 낯 뜨겁게 공존하던 도서관 열람실에서 참 많이 졸며 타이핑했던 기억이 났다. 이제는 남의 인생 리뷰는 그만두고 책 몇 권 읽는 것부터 다시 읽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놀란다.


 집어 든 소설의 글자가 낯설다. 너무 가만한 활자가 이상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