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차이
언제 어디에서 살았을지 모를 루돌프는 반짝이는 코를 가진 사슴이다. 여느 사슴과 달랐던 그는 모든 이들의 놀림과 조롱 섞인 웃음을 받았다. 외톨이가 된 루돌프의 다름을 인정해주는 유일한 존재는 산타였다. 그는 다른 이가 불붙는 것 같다며 놀리는 루돌프의 밝은 코를 보며 안개 낀 길을 밝혀주는 역할을 제안했다. 반짝이는 코를 보며 누군가는 놀렸고 누군가는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차이는 결국 가능성이 되어 다른 이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았다.
우리는 저마다 가진 고유한 특징이 있다. 목소리, 피부톤, 홍채의 색, 성격,... 모든 것이 모여 한 사람을 이루게 되며 각자의 개성으로 나타난다.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완벽하게 동일한 존재는 없다. 당신과 나의 다름이 차이가 되고 개인의 매력이 된다. 그저 다를 뿐이지 어느 쪽이 옳고 우월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차별과 차이는 혼용되며 오랜 기간 논란을 겪어왔다. 초등학생 때부터 논술 시간에 단골 주제로 거론되었던 만큼 알게 모르게 우리의 피부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계급, 인종, 젠더 등 시대마다 있어진 다양한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식지 않는 뜨거운 화두로 존재한다. 서로의 다름을 옳고 그름으로 규정짓고 위와 아래로 나누려는 생각들은 결국 크고 작은 분쟁으로 불거지고 끝내 우리를 너와 나로 갈라놓았다.
참과 거짓을 가를 때는 기준을 두고 합당함에 따라 결정 내리게 된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타당하고 신뢰할만한가'부터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제정되어있는 법도 시간이 흐르며 바뀌기도 하기에 변하지 않을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일까
자신이 가진 생각은 경험을 기반해서 발생하고 경험은 보고 들으며 겪은 것을 통해 쌓인다. 보고 듣고 겪은 것도 모두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일 텐데, 그것에 대한 진위는 밝혀진 것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통용되는 지식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 스스로 확인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보고 들으며 배운 모든 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생각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서로 말하기만 바쁘다면 대화는 되지 않는다. 듣고 생각하는 과정이 생략된 대화는 서로의 목소리만 높일 뿐이다.
우리가 복제된 존재는 아니기에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수 없다. 다름은 단지 서로가 같지 아닐 뿐이다. 당신과 나의 차이가 누군가를 차별할 이유는 아니다. 다름을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조금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는 성숙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성숙은 개인의 발전뿐이 아니라 더 넓은 성장을 이뤄낼 것이다. 서로의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성숙한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