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말 좀 하지 마오
CT, MRI 등 방사선을 아주 많이 쬐며 촬영하는 것 외
피검사, 소변검사, X-Ray, 유방 초음파 등은 어느 병원을 가도 다시 해야한다.
덕분에 가는 곳마다 피를 왕창 뽑아가며
다시 진단, 또 진단...
덕분에 양 팔 모두 바늘 자국이 나기 일쑤였고
멍든 팔에 또 다시 바늘을 찌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소득은 없었다.
대부분이 왼쪽은 다발성이니 전절제를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오른쪽은 병변이 작고 한 군데니 부분절제도 가능하지만
균형을 위해 양측 전절제와 보형물 동시복원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조금 다른 의견으로는
어차피 전절제를 해도 후항암을 할테니
매를 먼저 맞는 마음으로 선항암으로 크기를 좀 줄여보면 부분절제도 가능하겠다가 있었다.
(심지어 호르몬 양성의 경우 항암제에 크게 반응하는 편이 아니라 운에 맡겨야한다.)
하지만 늘 긴머리였고,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나에게
머리가 빠진 삶이란 상상만으로도 너무 큰 괴로움이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60년 간 내 원래 가슴을 지켜낼 수 있다면
지금 6개월 고생이 낫지 않을까?
항암 필수품은 모자와 가발이다. 일단 가볍게 모자를 하나 사고,
가발 가게를 향했다.
점원은 지나치게 친절했고 긴머리 가발을 찾는 내게
"어머~ 머리가 이렇게 길고 예쁜데 무슨 가발을 쓰려고 해요~?"
라 물었다. 왜냐고?
안 그래도 심란한데 눈치 없는 점원까지...
그야말로 환장의 콜라보에 같이 간 친구들은 나보다 더 화를 냈다.
어쨌든 있는 가발을 하나 써봤는데 정말 너무 어색하고 별로였다.
지금 내 머리같은 가발 제작을 물어보니 400만원 좀 넘을거라 하더라.
휴... 가슴도 머리카락도 멀쩡한 내 것이 있는데 왜 이래야하는지...
억울함에 한동안 안 나오던 눈물도 나왔다.
그날을 계기로,
항암은 진짜 피하고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먹으며
더 가열차게 병원을 향했다.
다행히 괜찮은 의견도 있었다. 항암은 필수는 아니고
수술 후 세포를 분석해 결정한다고.
이 분석은 미국에 보내서 하는 방식인데 보험이 안 되고 한 쪽당 400만원 정도 든다고 하더라.
고로, 양측성인 경우 2배인 800만원.
유방암은 돈잡아먹는 병이라고 하던데 정말이다.
수술만으로도 비용이 상당하다. 전절제 보형물 동시복원술의 경우 한 쪽에 약 1,500만원.
에르메스 백 하나도 없는 나인데 그 가격 이상을 가슴에 하나씩 들이게 생긴 것이다.
(남자분들에겐 중형차 한 대 정도란 비유가 더 와닿으려나?!)
비용도 비용이지만 병원 유랑을 이쯤 하다보면 슬슬 마음이 비워진다.
그래, 수술은 하더라도 항암만은 피하자.
지금부터 내 모든 생활을 암이 자랄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자.
초록창부터 너튜브까지. 요즘은 의사분들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인 덕분에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많은, 내가 좋아하던 것들과 작별했다.
단백질 공급원이긴 하지만 암 세포가 자라는 것도 돕는다기에 붉은 고기는 이제 그만.
단백질은 닭고기, 오리고기 같은 화이트미트나 생선, 어패류로 채우자.
달걀도 난번호 1번(달걀에 찍힌 번호 중 가장 끝자리가 난번호다.),
자연방사된 닭이 낳은 알만을 골라먹었다.
(난번호 4번의 경우 케이지에서 낳은 알인데 그런 닭은 대부분 알을 빨리 많이 낳기 위한
촉진제를 사용한다더라. 그 성분이 내 몸에도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담배는 원래 안 피웠고, 그 좋아하던 술도 끊었다.
(만취될만큼 거하게 마시진 않았지만
와인이나 위스키를 조금씩 홀짝이며 맛보고 그걸 공부하는 게 취미였기에
내게 술을 완전히 끊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커피도 커피콩을 볶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생성된다기에 과감히 안녕을 고했다.
(커피 역시 정말 좋아해서 각종 원두를 사놓고 마실 대마다 갈아서 마시던 사람이었다.)
그 좋아하던 바삭바삭! 과자도 끊고 (자타공인 신상과자 마니아였는데!)
빵(밥은 안 먹어도 빵은 먹어야하던 내가!)과도 이별했다.
이 식단은 흡사 비건?!
비자발적 비건 생활은 상당히 힘들었지만
암세포가 작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버텼다.
그렇게 또 병원 유랑을 하던 어느 날, 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산부인과로의 안내.
갑자기 웬 산부인과? 이유는 이렇다.
나는 호르몬 양성 유방암인데
간단히 설명하면 여성호르몬에 많이 노출돼 생긴 것이다.
이를 치료하려면 수술 후 여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약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가임력이 낮아질 수 있다고 한다. (항암치료의 경우 더더욱)
그러면서 2세 생각이 있다면
난자 냉동을 해놓는 걸 추천한 것이다.
남편이 있었다면 둘 다 한 살이라도 젊은 정자와 난자로 수정을 해서 수정란 냉동을 했겠지만
미혼인 나는 그럴 순 없었다.
난자 냉동...
사실 작년에도 이 생각은 했다.
나이가 꽉 차고도 넘쳤음에도 결혼을 안했고, 아이도 가져본적 없으니
슬슬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 심지어 동생들까지 임신이 잘 안 된다며
난임센터에 다니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기 갖는 게 그렇게나 힘들다고?
심지어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데?!
(실제로 내 친구 중에 27살에 결혼한 친구가 있는데 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했다.
20대 후반부터 시험관 아기도 여러 번 시도했으나 실패해서 현재는 강아지 키우며 사는 중.
나팔관과 자궁이 임신하기 힘든 환경이라 했는데 자세한 이유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 잘 모른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걸 알게된 것이다.
나름 좋다는 산부인과에 가서 난소 기능검사를 했다.
(난임 부부의 경우 지원금으로 가능하다는데 미혼인 나는 100% 자기부담금으로 진행...
당시 7만원 정도로 기억한다.)
피를 뽑아 난소 기능을 나이로 환산해서 알려줘 일명 난소 나이검사라 부르기도 한다.
다행히 20대와 다름없다는 평가를 들었고
자궁 초음파 결과도 이상 없었다.
덕분에 자연임신을 기대해봐도 좋겠다는 의견을 들었고
굳이 냉동해놓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 그리고
임신과 출산이 주던 뭔가 쫒기는 마음에서 조금은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
(당시 친구들이 난소퀸이라며 소개팅 나갈 때 난소나이를 이마에 적어 나가라고 했던.)
물론 한 해가 뭐야. 우리 몸은 하루하루가 달라지니
(어제보다 더 피곤한 오늘) 한 달 후, 1년 후까지 안심할 순 없지만
주변에 하나 둘 씩 시험관 시술을 하는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내 배에 매일 주사를 놓는 것도 자신없고. 감정 기복에 몸도 힘들고 살도 찐다기에
보통일이 아니구나... 저거 안 하길 잘했다...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걸, 하는 게 좋겠다는 거다.
후... 신발이 너무 무겁다...
느릿느릿... 산부인과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