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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Sep 28. 2020

詐(사)'짜가 판치는 세상

   영화를 평하는 일에 흥미가 갓 생겼을 때의 일이다. 하류 인생을 살고 있는 전직 복서 이병헌과 그의 씨 다른 형제 지체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룬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영화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었던 나는 유투브에 영화 제목을 검색했다. 수십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유투버 ‘리뷰엉이’의 콘텐츠가 일순위로 검색목록에 올랐다. 저명한 이가 만든 콘텐츠이니만큼 그 저작물 또한 멋지리라는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다.      

   “우와, 이병헌 연기 진짜 쩔고, 우와, 박정민은 진짜 장애인 같고, 우와, 영화 진짜 재밌어요.” 감탄사를 반복적으로 내뱉는 것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전부인 듯 리뷰엉이는 15분 동안 ‘우와’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영화 속 숨은 의미나 메시지, 철학에는 아무런 관심도, 평할 수 있는 능력도 없어보였다.      

   그로부터 석 달여의 시간이 흐른 뒤, 아무 생각 없이 TV채널을 돌리던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리뷰엉이가 한 케이블 방송에 나와 마치 전문가인양 행세를 하며 최신 VOD를 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독의 필모그래피와 배우의 연기, 그리고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까지 차분한 어조로 설명하는 이는 분명 유투브에서 보았던, 내 기억 속에서 감탄사만 연발하던 ‘무식쟁이’ 리뷰엉이가 아니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을까하는 호기심에 알아본 나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VOD 소개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필요했던 것은 ‘리뷰엉이’라는 대중적인 이름이지 리뷰엉이라는 전문가가 아니었다는 것. 리뷰엉이는 영화에 대해 평할 수 있는 지식과 철학이 없으니 그냥 진행자로 출연만 시키고 방송작가를 따로 붙였던 것이었다. 리뷰엉이는 작가가 쓴 시나리오를 그대로 읊어내는 프롬프터에 불과했다.      

   TV와 인터넷을 비롯한 미디어산업이 발전하며 대중들은 단편적인 문화를 소비하는 데 익숙한 모습이다. 본질보다는 화려한 겉모습과 말초적인 가십거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기에 유투브라는 걸출한 1인 미디어와 SNS가 대중문화의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그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약간의 집중력이 필요한, 제대로 된 평론 글보다는 단순 흥밋거리로 가볍게 보고 넘길 수 있는 리뷰가 접하기 더 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리뷰엉이 같이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저급한 유투버가 평론가로서 득세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본질에 대해 더 진중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가 하나 더 있다. 반년전이었다. 기회가 닿아 국내 가치투자계의 최정점을 이루고 있는 슈퍼개미와 그의 제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사실은 나 역시 그 분의 제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손수 분석한 기업 리포트를 들고 찾아뵈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겠다. 투자금도 작고 지식과 경험이 일천한 일개 개미가 그런 경제계 거물을 만나 뵙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 분께서 리포트의 질은 차치하더라도 한 기업에 대해 30장을 넘어가는 리포트를 써낸 나의 열정을 높이 사주셨기에 가능한 만남이었다.      

   그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기업분석 내용물을 발표했지만 돌아온 것은 ‘신랄한’ 비판이었다. 초심자가 최선을 다해 공부한 티는 나지만 아직 성공한 투자자가 되기 위한 깜냥은 부족하다는 것. 두 번의 발표 기회를 더 주겠다는 그에게 난 그 두 번의 기회를 아껴두었다가 추후 내공을 쌓은 뒤 찾아뵙겠노라며 후일을 기약했다.      

   기업분석과 투자에 대한 토론은 약 한 시진 반을 넘게 진행되었다. 뒤이은 식사 자리에서 그 슈퍼개미께서는 ‘그래도’ 가치투자의 씨앗을 잘 품고 있는 나의 성정을 칭찬하시며 “씨앗이 좋으니 발아하면 대성할 나무가 될 것이다.”고 하시며 격려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현재 투자업계 행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셨다.     

   “증권방송에 나오는 전문가들이 말이야, 차트 죽죽 그어서 그래프가 올라간다, 떨어진다 홀짝게임만 부추기고 있지 어디 제대로 된 분석물을 내놓은 적이 있어? 게네들 알고 보면 재무제표도 읽을 줄 모르는 놈들이야. 주식시장에서 깡통차고 주워들은 거는 있으니 방송활동하며 개미들 홀려서 돈 버는 놈들이야. 진짜 돈 번 사람은 그런 활동 안 해.”     

   그 분께서는 투자를 하시기전 최소 반년을 투자대상을 공부하는 데 쓰신다고 하셨다. 재무제표 분석은 물론, 제품을 직접 써보고 회사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임직원의 표정까지도 점검한다.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경쟁사에 대한 분석까지 마치고 그 기업에 대해 확신을 가진 연후에야 비로소 투자를 시작하신다고 덧붙이셨다. 어려운 시장에서 Low-risk, High-return의 결실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기업의 ‘본질’에 집중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중과 시장이 자기와 반대로 움직였기에 현재의 부를 이룰 수 있었지만 개미들이 쌈짓돈을 털어 투자가 아닌 투기에 매달리고, 결국은 본전을 모두 잃는 행태는 못내 아쉽다고 하셨다.      

   실제 증권방송을 한 번 봐보니 가관이었다. 한 시청자가 오뚜기 주식에서 손실을 내고 있는데 전문가라는 사람은 그래프에 선을 죽죽 긋더니 “이 선을 넘었으니 팔아라.”며 단 2분 만에 진단을 내렸다. 분기 실적은 어느정도 수준이었고 마트에서 진라면이 신라면에 비해 얼마나 잘 팔리는지, 경영진의 위기대처 능력은 어떠한지에 대한 통찰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단순히 그래프가 지지선을 깼고 더 떨어질 수 있으니 주식을 팔라며 인스턴트 식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오뚜기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하인즈를 제치고 맥도날드에 케첩을 납품하는 데 성공한 위대한 기업이다. 이 위업은 모른 채 그래프만 들여다본 증시전문가들의 망발은 오뚜기케첩 라인 근무자가 비웃을 일이다. 이러다가 진짬뽕이나 허니버터칩과 같은 메가히트 제품이 나와서 주가가 급등하게 되면 그 전문가라는 사람은 시청자에게 어떤 표정으로 어떠한 변명을 늘어놓을까.          

   때는 바야흐로 개인과 개인이 초단위로 연결되는 ‘초시대’다. 클릭 몇 번으로 타인의 콘텐츠를 접하고 향유할 수 있다. 이는 그만큼 대중들이 무분별하게 콘텐츠를 수용하게 되고 또 전문가를 빙자한 ‘詐(사)’짜들이 활개를 치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집 조리사는 춘장을 볶는 데 일가견이 있어야하고 영어강사는 영어를 잘 가르쳐야하며 글쟁이는 누구보다 글을 잘 써야한다. 무엇을 하든 ‘본질’을 자각하고 본분에 충실할 때 그 정체성에 당위가 생긴다는 뜻이렷다.     

  나는 영화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평론가가 되기를, 그리고 기업 경영진과의 장기적으로 동업을 하는 건전한 투자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극강은 통한다고 했던가. 글쓰는 일과 투자는 모두 인문, 철학, 역사를 망라하는 통찰력을 요한다. 쉽지만은 않은 길이겠지만 다행히(?) 본질이 아닌 외형만 그럴싸하게 갖춘 ‘詐’짜들이 많기에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마냥 불가능할 것 같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필요한 것은 잔기교가 아닌 진정성”이라는 그 슈퍼개미의 말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고 두꺼운 책을 집어 든다. 내가 걸어야할 길은 직진의 대로가 아닌, 모래자갈 질곡한 가시밭길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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