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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Sep 29. 2020

들국화 당신



   다시금 선선한 바람이 분다. 벌써 사계가 흘렀다. 지난 해 오늘, 면사포 아래로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었던 그대를 잊지 못한다. 그대 얼굴은 갖은 보석으로 치장한 드레스보다 훨씬 더 영롱하고 밝았다. 그대와 함께 지낸 일 년의 시간은 비루하기만 했던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대는 가을 들판에 피어난 들국화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아하고, 겸손하지만 강건하다. 그대는 생머리에 청바지, 기본 티셔츠를 맞춰 입기를 즐기지만 격조가 떨어진 적은 없다. 매무새는 늘 단정했고 다가가면 맑은 향이 났다. 평소 오만함을 경계한 그대는 강하게 자기주장을 펼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릇된 논리, 혹은 가진 자의 불손 앞에서는 언제나 자세를 높여 미혹됨 없이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그대는 강자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형평을 헤아릴 수 있는 강단이 있는 사람이다.      

   들국화는 비옥한 토지와 거름, 꽃대를 가꾸어줄 농부가 없어도 야생의 들을 수 놓는다. 들새 지저귀고 맑은 햇살이 드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씨앗을 움 틔워내는 자연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거센 바람이 몽니를 부려 이파리에 생채기를 낼 때면 온몸 흔들어가며 그 바람마저 결국 포용해내는 넓은 성정을 갖고 있기도 하다.      

   촛불로 온 세상이 뜨거웠던 3년 전 어느 겨울밤, 그대는 한 남자를 만났다. 나이는 마흔 언저리에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그대 삶에 당장 훌륭한 거름과 토지가 되어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낮췄지만 그대는 그 사람의 씨앗 자체를 보았다. 그 사람의 눈빛과 포근한 말투, 그리고 흔들림 없는 심지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이내 둘은 서로의 곁을 지키는 짝이 되었다. 어쩌다가 둘의 일이 아닌 일로 마음 아파한 날도 있었지만 둘은 그럴수록 서로를 더 믿으며 시련을 이겨냈다.      

   그리고 들국화에는 특별한 치유력이 있다. 특히 국화과에 속한 구절초는 부인병, 위장병에 효능이 탁월하고 진통제로도 두루 쓰이는 천연 약재다. 그대가 만난 보잘 것 없던 그 남자는 몸이 아픈 사람이었다. 골격계통 질환으로 한 시절에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남자는 그대에게 그 부분을 항시 미안해했다. “더 부자였으면, 더 건강했으면 큰 고민 없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습관적으로 말하곤 했던 남자에게 그대는 쉼터가 되어주었다. 육체노동이 필요하면 자기가 하면 되고 부족한 자산은 알뜰히 아껴가며 힘 모아 살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그대는 말했다. 남자는 그대 안에서 생의 희망을 품었고 다시금 꿈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내 사주가 옆에 있는 남자 잘되게 하는 사주래. 오빠는 분명 건강을 찾을 것이고 원하는 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야. 내가 옆에서 지켜줄 거니까.”     

   그 사주가 맞아떨어진 것일까. 그대와 삼 년의 시간을 함께한 남자는 어느덧 일상생활에 이상이 없을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그리고 가슴 한편 끝끝내 버리지 못했던 ‘글’에 대한 꿈을 키우며 미래에 대해 호언할 정도로 충만한 자신감으로 목표에 다가서고 있다.                    


   겨울바람이 진양호 전망대를 에던 어느 날이었다. 쉬지 않고 오르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365계단을 오르던 중 그대는 그 순결한 입술을 내 뺨에 포개며 말했다. “오르막이 가파르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둘이서 천천히 손잡고 오르면 그렇게 힘들기만 한 일은 아니야.”라고.          

   그대와 혼사의 예를 올린 지 365일이 지난 지금, 우리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생각해본다. 아주 멀고 험한 여행길, 이제 갓 걸음을 뗀 상황이고 비탈길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곧 아주 가파른 오르막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욕심내지 않고 그대 손을 잡고 천천히 비탈진 길을 오르리라, 신분 상승의 곡선을 서두르지 않고 만끽하며 올라타리라.                    


   박명(薄明)의 순간, 그대 얼굴을 한 번 올려다봐 본다.      

성스러운 그대여, 운명이란 게 허한다면 내 그대 곁에 영원히 있으리라.                    

============     

『...라고 써』 / 조홍                     


   아내에 대한 닭살스러운 예찬과 사랑고백이다. 감정 하나를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비유와 묘사를 얼마만큼 잘 보여주는지의 능력이다. 문장력을 키우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구체적인 스토리가 적어 감동은 들 할 수 있지만 집중력과 관찰력이 돋보인다.      

   ‘그녀’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표기했다. 이러한 2인칭 화법은 한두 번의 실험으로 그치고 앞으로는 정석적인 인칭시점으로 글을 썼으면 좋겠다. 어차피 수필은 독자가 대상이지, 그녀에게 보내는 서간문은 아니다.      

“촛불로…” 시작되는 단락과 “그리고”로 시작되는 단락 사이에 뭔가 빠진 문단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아내를 들국화로 비유하게 된 동기나 사건이 들어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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