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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Sep 29. 2020

아름다웠던 청년


아름다웠던 청년                                   


   아름다웠던 기억이 추억이 되는 걸까, 지난 기억이라 아름답게 추억되는 걸까. 최근 공중파 방송과 문화 콘텐츠를 달구는 키워드는 ‘Retro’다. 복고풍의 감성주점이 유행을 하고 철 지난 패션이 주목받는가 하면 20여년 전 유행했던 노래들이 중장년층의 감수성을 일깨우며 각종 차트를 역주행하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 주말 저녁, 저녁상을 물리고 습관처럼 티비를 보던 나는 눈가를 촉촉이 적시고 말았다. 90년대 인기가수들을 찾아 추억의 노래를 듣고 최근 근황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내 고등학생 시절을 함께 했던 태사자가 주인공이었다. 교실에서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그들의 노래와 춤을 흉내내고 했던 기억이, 당시 함께 했던 급우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혔던 것이다.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 당시 노래를 찾아보던 나는 국민 비호감 ‘스티븐유’의 영상도 접하게 되었다.     

   ‘비록 병역문제로 얼룩지긴 했지만 대단하긴 했지.’     

   파워풀한 댄스를 추면서 동시에 노래를 완창할 수 있는 가창력에 랩까지. 무대 위에서 자유자재로 날뛰는 그의 재능과 열정을 보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질에 특유의 의로운 건달기가 더해져 각종 방송과 행사를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던 당시의 유승준은 단순한 가수가 아닌 그 시대를 관통하던 아이콘이었다. 외환위기로 혼란스러웠던 사회에서 유승준은 서민들이 현실의 시름을 잊을 수 있게 해주는 피에로였고 사춘기 특유의 반항기마저 건전하게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청소년에게 전파해준 청소년 지킴이이기도 했다. 10대부터 60대까지 전 국민이 사랑했던 그는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미국 시민권자로 병역을 수행할 의무가 없었던 그는 급기야 국민에게 해병대를 입대하겠다고 공언을 하고 이에 국민들은 더욱 유승준의 존재에 대해 열광을 하게 되었다. 군입대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그는 일본 콘서트 투어를 위해 불가피하게 출국을 허락해달라 병무청에 요청했고 그 길로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뒤통수를 때린 존재가 아름다운 청년이 아니라 차라리 옆동네 건달이었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 믿고 사랑했기에 배신당한 생채기는 더욱 컸다. 자숙이라는 미명하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방송을 재개하던 다른 연예인과 달리 유승준에게는 입국 금지라는 초유의 제재가 내려졌다. 성문법에서 다루지 않는 괘씸죄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국민 영웅은 국민 비호감으로 순식간에 변모했고 각종 매체에서는 ‘스티붕유’를 패러디하는 새로운 문화코드를 만들어냈다. 간간이 입국시도를 하던 그를 향해 일부 네티즌들은 사이버테러를 감행하며 그 혐오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나 역시 알게 모르게 스티븐 유를 비난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그 자체를 희화화하는 데 동조를 해왔음은 숨길 수 없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유승준의 입국 금지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재판이 내려졌다고 들었다. 그가 맘을 먹으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을 법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난 전 국민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긴 그를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보단 혐오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왜였을까. 오래된 영상 특유의 낡은 화질 속에서 춤을 추고 구슬땀을 흘리는, 달리는 호흡으로 끝끝내 랩을 다 부르고 마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뭉클하게 다가온 것은. 태사자 그 이상의 존재로 각인되어있던 유승준의 춤사위에 철없던 고교 시절이 떠오르고 친구들의 얼굴이 주마등같이 스쳐가는 것은.     

   스티븐 유를 난 결국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아름다웠던 청년 그 자체를 기억에서 지우고 부정하는 것 역시 난 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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