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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Sep 29. 2020

장산곶 매

장산곶 매


  내가 군 생활을 했던 백령도는 이즈음이면 한가하다. 꽃게와 멸치도 잡이가 끝물이고 가리비와 왕소라도 알이 잘아 잘 건져 올리지 않는다. 여름내 분주하게 움직였던 선외기들은 모터를 수리할 겸 포구에 정박해 움직이지 않고 마을 아낙들은 그물코를 손질하며 한겨울 지루함을 달랜다. 거친 일과에서 한시름 자유로워진 남정네들은 대낮부터 소주에 횟감 걸쳐 먹으며 피로를 푸는 것이 일상이다. 이따금 혹한기 훈련을 뛰는 군인들의 함성만이 포구의 고요한 겨울을 울린다.    내가 해안 경계근무를 했던 포구는 두무진이었다. 제멋대로 뻗어나간 기암괴석들 사이로 물범과 해오라기 등 희귀 동물들이 서식하는 것으로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했다. 북녘땅까지 직선거리로 17km. 시계가 맑은 날이면 군인 농으로 북한군 빳다 맞는 장면까지 다 볼 수 있을 만큼 이북이 가까운 곳이어서 죽기 전 북녘땅을 한 번이라고 보고자 하는 나이 든 실향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초소용 망원경으로 북녘땅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주 기다란 날개를 펼친 채 날갯짓 없이 장시간 동안 허공을 가르는 새가 종종 보이곤 했는데 어민들은 이 새를 두고 장산곶 매라 불렀다. 일반 매보다 골격이 클뿐더러 날개가 매우 길어 날갯짓 몇 번 하지 않고 백령도와 장산곶을 오고갈 수 있는 매라고 했다. 먼 땅에서 나는 건 종종 보지만 남녘으로 날아오는 일은 극히 드물어 가까이서 이 새를 봤다는 어민들이 거의 없다고 들었다. 

  우리 분초에서 관리한 초소 중 하나는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위로 이루어진 산비탈이 무척 가파른 데다 군인의 잰걸음으로도 30분은 족히 걸리는 코스여서 고참들은 근무를 꺼리는 초소였다. 근무 진입과 철수에만 왕복 1시간이 걸렸기에 한 번 근무에 4시간을 돌리는 곳이었다. 고립된 환경에서 장시간 근무를 서야 했으므로 누구와 근무 파트너가 되느냐에 따라 그 날의 명운이 결정되는 초소이기도 했다. 

  그날은 해무가 유독 진하게 낀 날이었다.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1m 이상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정도였다. 근해 사고를 우려한 군인들은 어민들의 조업을 금하였고 두무진의 기암괴석과 북녘땅을 기대하고 온 관광객들은 볼멘 표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날따라 근무 순번이 꼬였는지 언제나 후임 근무만을 서던 내가 선임 근무로 발령이 났다. 후임 근무자는 몇 기수 차이 나지 않는 동생 같은 녀석이었기에 4시간의 근무가 우리에겐 달갑기만 했다. 

  한겨울이지만 쉬지 않고 30분 동안 산길을 오르면 땀이 흥건하게 온몸을 적신다. 온세상은 짙은 해무로 뒤덮여 아무것도 식별되지 않는다. 이런 날, 북한군이 수영해서 건너온다면 아무도 발견해낼 수 없을 것이다. 

  초소 도착 후 땀을 식히고 관례처럼 담배를 일발 장전한 우리는 약간의 담소를 나눈 뒤 교대로 두 시간씩 자기로 했다. 적진이 코 앞인 서해 최북단의 초소에서 어찌 그리 기합빠진 행동을 할 수가 있느냐 반문하면 답할 길이 없다만, 어차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고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근무한다고 할지라도 4시간 내내 짙은 안개가 걷히는 것을 바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소득이 없을 터였다. 절대적으로 잠이 부족했던 졸병 처지에 올지 않올지 모를 북괴뢰군보다 지금이 아니면 오늘 잘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잠이 우리에겐 더 중차대한 숙원 과제이기도 했다. 

후임 근무자를 먼저 재우고 멍하게 먼바다를 보는 둥 마는 둥하며 살짝 잠이 들었나 보다. 인기척이었을까? 

  장산곶 매였다. 암수 두 마리가 서로 초소 위로 원을 그리며 서로의 꽁지를 쫓고 쫓기며 노닐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공간에 하얀 분말을 흩뿌려 놓은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공에 황갈색 장산곶 매 두 마리가 초소를 중심으로 끝도 없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때론 높이 날았다가, 때로는 초소에서 약간 비껴나게 원을 그리며 두 마리가 교태를 부리듯 노닐고 있었다.  

너무나 엄청나 말할 길이 끊겼다는 뜻을 나타내는 사자성어가 언어도단(言語道斷)이었던가. 자연이 선사한 형언할 수 없는 광경에 이미 넋을 놓은 두 해병이 할 수 있는 것은 장관이 끝날 때까지 바라보는 일뿐이었다. 

  한 오 분쯤 지났을까. 두 해병의 혼을 쏙 빼놓은 장산곶 매는 흰색으로 몸을 서서히 적시더니 어느 순간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스스로가 강인하다며 하루하루 최면에 빠져 살았을 두 청춘이, 사소한 일에 흔들릴 감정 따위는 훈련소에서 버리고 왔을 두 군인의 눈가에 촉촉이 이슬이 맺힌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난 장산곶 매의 공연을 영물이 고된 일상에 지친 졸병을 동정하여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싶어 개최한 것으로 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 단독공연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군생활이 잘 풀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여전히 실수하며 혼이 나고 기합을 받으며 난 그렇게 계급장과 짬을 채워갔다. 

  이후 20년 남짓한 시간이 흐르며 군인에서 민간인, 회사원에서 공무원으로 삶의 궤적을 그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추운 겨울, 안개가 낀 날이면 그 장관이 눈앞에 떠오르곤 한다. 짙은 해무를 뚫고 창공을 누비던 그 의연한 자태. 지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여정을 걸어가고 있지만 언젠가 나 역시 창공을 누비며 여유를 만끽할 날이 오지는 않을는지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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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라고 핑계를 대고 싶지만,

사실은 역량 부족으로 잘 나가다가 '일기글'이 되어버렸네요.

그 광경을 보고나선 느낀 감정을 풀어헤치고 싶었는데

역량부족입니다 ㅠㅠ

2020년 열심히 배워 1년 뒤에는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저를 상상하면서...

마음껏 질타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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