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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Sep 29. 2020

무계획과 우연의 플롯에 잡아먹힌 계급 투쟁의 연대기

<기생충>에 투영해 본 <이태원 클라쓰>의 저열한 클라쓰


무계획과 우연의 플롯에 잡아먹힌 계급 투쟁의 연대기     

<기생충>에 투영해 본 <이태원 클라쓰>의 저열한 클라쓰                                   


  “오늘 근본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돈을 아주 많이 벌어 이 집을 사겠습니다.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타고 올라오시면 됩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영화 <기생충>에서 격렬한 계급 투쟁의 피바람이 지나간 후 기택(송강호)은 대저택의 지하에 유폐된다. 아들 기우(최우식)는 자기 아버지를 구해내기 위한 근본적인 계획을 세웠다고 방백한다. 하지만 목표만 있고 방법은 없는, 자본주의의 체제가 공고한 가운데 세웠다는 근본적인 계획은 사실상 무계획이다.      

<이동진, 기생충 평 中>                                             


  “내 계획은 12년짜리고 7년이 흘렀어. 그리고 이제 5년 남았어.”      

아버지의 원수이자 자기 삶의 최대 적인 장가를 무너뜨리겠다는 박새로이(박서준)의 호기로운 이 계획 역시 기우의 공허한 계획의 맥을 잇는다. <이태원 클라쓰>의 몰입도가 떨어진다면 이 무계획의 플롯이 ‘우연’을 만나 서사를 풀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이는 원양어선에 막노동을 거쳐 일류 외식 프랜차이즈 ‘장가’를 무너뜨리기 위해 최소한의 자금을 마련하고 작은 포차를 개업하지만 마땅한 비전과 리더십을 상실한 채 표류한다. 이때 SNS 스타이자 IQ 162의 천재 조이서(김다미)가 우연히 포차에 나타나 영업을 방해하고, 며칠 뒤 우연히 다시 공중화장실에서, 길거리에서 마주치며 인연을 맺게 된다. 고교시절 새로이의 숙적 장근원은 무면허로 차를 끌고 산길을 드라이브하다가 우연히 새로이의 부친을 치며 다시 한 차례 더 악연을 쌓는다.     

  <이태원 클라쓰>는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시간과 장소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이며 그 작법에 판타지적 요소와 만화적 허용을 제한 ‘사실성’을 서사의 근간으로 깔아 ‘상층 계급에 대한 하층 계급의 승리’라는 카타르시스를 시청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거듭되는 우연은 결국 필연과 논리를 잡아먹어 버리고 결국 서사의 뼈대에는 판타지적 성공의 신화만 앙상하게 남는다.      

  <이태원 클라쓰>의 전개 구도는 얼핏 보면 <기생충>의 그것과 닮아있다. 두 작품은 영상의 거시적인 틀이 상하 수직의 틀로 정교하게 짜여있다. <기생충>에서 대저택-반지하-지하로 이어지는 신분의 수직 층위는 <이태원 클라쓰>에서 장가 그룹의 고층 빌딩과 단밤의 단층 짜리 임대 점포와 완벽하게 조응한다.      

  두 작품은 인물 구성 역시 큰 궤를 함께한다. <기생충>에서 기택 가족은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상위 계급의 시험을 통과해 주류 계층으로 입성하고자 한다. 신분 상승에 대한 의지는 있지만, 자신이 하층민임을 부정하거나 상위 계층에 저항하는 의사는 없는 사람들이다.                               


  다만 기정(박소담)은 그중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공격적으로 신분을 거부한다. 다송의 미술 교사자리에 면접을 보러 간 기정은 교육과정을 지켜보고자 하는 연교(조여정)에게 자신의 교육법은 누구도 볼 수 없다며 상위 계층이 제시한 시험의 틀을 완강히 거부한다. 나아가 ‘미술치료’라는 영역을 먼저 제시하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기택과 기우, 충숙이 소정의 테스트 절차를 통과한 후 기존에 있던 집안 일꾼을 대체하며 자리를 차지한 것과는 대비되는 적극적인 모습이다. 동익 가족이 캠핑을 떠나고 저택을 장악한 후 2층 욕조에 누워 거품목욕을 즐기는 기정을 향해 ‘역시 우리와는 다르게 이 집과 잘 어울린다.’고 말한 기우의 대사는 기정의 위치가 상류와 중류 그즈음에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태원 클라쓰>에서는 기정의 역을 장근수(김동희)가 소화해내고 있다. 전과자인 새로이와 전직 조폭인 승권, 트랜스젠더인 마현이(돈이 없어 거세를 하지도 못했다.)는 사회의 주류에서 멀게 비껴나간 존재들이다. 이서는 높은 IQ에 SNS 스타이긴 하지만 1등에만 목매는 결핍된 엄마와 함께 사는 역시 사회 비주류의 캐릭터이다.      

  극 초반 이 소수집단에 완벽하게 녹아든 것 같았던 근수는 극이 전개됨에 따라 그 컬러가 회색임이 드러난다. 극 초반, 근수는 형 근원의 자리를 노릴 수 있지만 노리지 않는, 큰 비용이 필요한 해외 유학보다는 단밤의 알바가 더 즐거운 이 시대의 평범한 젊은이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서를 짝사랑하는 인물로 단순한 캐릭터를 유지하던 근수는 극 중반에 이르러 형 근원의 손찌검을 막으며 “형 자리를 탐낼지도 몰라요.”라고 말하며 입체성을 드러내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자신의 능력 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상하 수직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정과 근수의 차이점이 있다면 목표의 성취 여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익 가족을 제외한 인물 중 가장 상위층에 가까웠던 기정은 결국 마당에 피를 뿜으며 주검으로 남지만, 생래적으로 상위 계층인 근수는 자신의 핏줄을 당겨 장가 본사로 입성, 새로이와 새로운 대결구도를 만들어내며 극 후반부를 이끌어 간다.                              


  삼국지에서 유비는 이상주의자로 통한다. 유비는 힘없는 자신을 따라준 백성과 군사를 이끌고 형주성을 탈출하며 힘들고 굶주린 모든 이를 돌본다. 당장 갈 수 있는 곳도, 목적지도 없고 보급마저 제한된 상황에서 모두를 구원하겠다는 정념을 불태운 유비는 결국 무능력하고 우유부단한, 전쟁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주의자였다. 다만, 무자비한 호족과 지방 군벌의 수탈에 진절머리난 백성들이 바란 군주의 모습이었기에 그 무능함마저 예쁘게 포장되어 일화로 전래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구성원 한명 한명을 돌보며(심지어는 자기 아버지의 뺑소니 사건을 묻어버린 형사마저도) 아무런 전략없이 5년 뒤에는 내 계획이 모두 성공할 것이라 장담하는 새로이는 이에 오버랩된다.      

  자본이라는 시스템으로 정교하게 직조된 세상에서 새로이는 자본시스템의 정점에 선 장회장과 필생의 결투를 벌여야 한다. 여전히 구체적인 계획은 없이 인품과 강단만을 내세우는 새로이라면 이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 기댈 수 있는 것이 ‘우연’이라는 장치밖에 없을 것이다. 천재 소녀 조이서는 이 연속된 우연을 필연으로 포장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능성을 제공한다. PD와 작가는 이서를 통해 드라마적 상상력과 논리의 한계를 손쉽게 조리하려 했다.      

  극 초반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 남자의 인생을 건 밀도감 짙은 복수극은 극 중반에 이르러 결국 무계획과 우연의 플롯에 잡아먹혀 버렸다. 여기서 주인공 새로이는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싸움이 아니라 한바탕 막싸움에서 거듭된 우연으로 결국 승리를 쟁취해낼 것이다. 현실성을 배제한 채 현실에서의 승리를 노래하는 이상주의자의 함성에 끝까지 몰입하고 손뼉 쳐줄 관객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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