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도.
우리 가족의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다.
여행지는 싱가포르. 그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본 영화가 바로 이선균, 조진웅 주연의 <끝까지 간다>였다.
개개인의 비행기 좌석 앞에 있는 <AVOD>라고 불리는 그 조그마한 화면으로 영화를 봤다.
<끝까지 간다>가 서비스되는 영화 중 하나였다.
콩알만 한 화면이었지만, 새까만 기내 속의 세상이라 그럴까. 오히려 영화관 스크린 못지않은 몰입도를 내게 선사해 주었다. 2시간에 가까운 호흡을 가진 영화였지만, 체감 시간은 과장 없이 30분 정도로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영화, 지린다고.
내가 왜 이 지리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안 봤지? 싶었는데. 그럴 만하더라. 개봉 연도인 14년도는 내가 고3일 때였다.
그보다 전의 필모그래피인 <하얀 거탑>이 할 때는 내가 긴 호흡의 드라마에 재미를 붙일 만한 나이가 아니었고. 로맨스 드라마는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내가 이선균이라는 배우를 딱 인지한 게 귀국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이선균 배우는 그렇게 딱 17년도부터 내 머릿속에 깊게 들어왔다.
2018년, <나의 아저씨>를 챙겨봤다. 영화 <PMC : 더 벙커>가 18년도의 연말 개봉이었고 늘 영화를 같이 보는 친구 놈이랑 봤다.
2019년, 대망의 <기생충>.
2022년, <킹메이커>.
2023년, <잠>.
맞다.
17년도 이후로는 거의 이 아저씨를 매년 본 셈이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내 기준에서는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정도의 인연이었다.
올해 나온 <잠>을 제외하고서는 영화를 같이 본 사람이 다 같은 놈이라는 게, 새삼 내 인간관계의 협소함을 돌아보게 하지만…그건 지금 슬퍼할 문제는 아니니 넘기고. 어쨌든 내게 아주 친숙한 사람이 어제 떠나버린 게 중요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오르더라.
그리고 또 한 마디가 떠올랐다.
그냥, 사시지.
내가 보기엔 이선균이란 배우가 쌓아 올린 입지가 추락한 입지보다 아직은 드높았는데.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튼, 배우님.
당신의 얼굴을 매년 영화관에서 봤던 사람으로서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제게 당신은 위대한 배우였어요. 또 영화를 잘 고르는 배우였어요.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