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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Jul 25. 2024

단 하룻밤, 환자와 의사 관계는 끝이다.

단 하룻밤, 환자와 의사 관계는 끝이다. 

제목을 정정한다. 

수정 보완한다. 


'단 하룻밤, 환자와 의사 관계는 끝이다.' 이것이 아니라 



[ 단 하룻밤, 환자와 보호자와 의사 사이 관계는 믿음으로 완성된다. ] 




1.

새벽 6시 27분. 

전화기를 든다. 

내 핸드폰이 아닌, 병원 유선전화기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 보호자 전화번호를 찾는다. 이때 미리 전날 밤, 새벽 1번 보호자를 정해둔다. 환자 상태가 갑작스럽게 변하거나 문제 있으면 즉시 연락을 준다고 미리 말해두었다. 큰 문제가 발생할 시 연락 준다는 무서운 말도 하지만, 동시에 내일 아침, 새벽 상태 변화에 대한 설명을 위한 전화를 한다고 약속하였다.



"가장 먼저 어느 보호자에게 전화를 할까요?"

그렇게 1번 보호자는 정해졌다.


 

아마도, 반드시, 뜬 눈으로, 그리고 울면서 밤을 지세웠을 것이다.

보호자들 모두.

물론 환자 옆을 바로 지키는 나, 그리고 우리 의료진들 모두 함께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환자 상태가 조금 호전을 보인다면 피곤함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오늘의 1번 보호자는 환자 어머니다. 



전화벨이 한 번도 울리지 않은 상태로 전화를 받는다.

역시 전화기를 꼭 쥐고 기도하면서 밤을 지세운 것이 맞다. 



"다행히 밤사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환자분, 큰 고비를 하나씩 넘어가고 있습니다"


두 손으로 핸드폰을 꼭 쥐고, 밤새 흘린 눈물을 훔치면서 전화기를 받는 보호자, 환자 엄마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지금처럼, 그리고 계속 열심히 치료하겠습니다"





2.


"감사합니다"

오늘 회진은 간단한 안부 인사로 시작,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보호자 말은 오히려 더 감사함이 가득 담아서 말한다.

너무 감사하다는 말투, 목소리에 담겨 있다. 

바로 1번 보호자, 그날의 환자 어머니다. 


오늘 회진에서 나는 잠시 가서 얼굴만 비춘다.

아침 회진, 물론 나는 루틴대로 모든 환자 상태를 살핀다.

그러나 그날은 큰 탈도 없고 문제도 없다. 

안정기에 접어드는 상태이다. 잘 먹고 잘 지내면 된다.

살짝 농담을 건네라고 하면서 힘내라고 응원의 말을 전한다. 

감사함이 진심으로 그리고 서너배 큰 "감사합니다" 소리를 들으며

아침 시간, 아침 첫 환자 회진을 시작하는 나는 속으로 씩 웃으면서 다음 환자에게 간다. 



3.

단 하룻밤, 환자와 보호자와 의사 사이 관계는 믿음으로 완성된다.

새벽 12시에서 1시로 넘어가는 시간.

이제 곧 시계 작은 바늘이 1에서 2로 간다.

내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고, 양어깨로 피곤함이 짓누른다.

마음속으로 다행히, 밤사이 응급수술을 하지 않을 정도로 다친 상태인 것에 감사하다. 하지만 여기저기 문제가 많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다. 



울면서 뛰어온 보호자들을 달래고 설명하는 것도 치료의 일부다.

혈압 떨어지고, 숨차하는 환자를 치료가 최우선이라면 함께 치료를 도와주는 의료진들 모두의 힘을 합치는 것이 두 번째, 아마 세 번째가 보호자이다. 불안하면서 고통, 그리고 숨차고 두려움, 모든 것이 힘든 상태 환자에게 그 어떤 진통제보다 보호자가 옆에서 손 한번 잡아주고, 힘내라는 말을 해주는 것이 최고의 치료 약이다. 


원칙상, 그리고 지속적인 치료와 처치가 계속되기에 처치실에 아주 긴 시간 동안 보호자가 옆에 있기는 어렵다. 하지만 원칙은 원칙이고, 내가 판단하여 보호자들을 계속 있게 한다. 보호자는 또 다른 치료 약이기에.

그리고 잠시 진정, 환자 상태가 안정된다고 판단되어 모니터를 앞에 두고 보호자를 다시 만난다. 이러이러하게 문제가 있습니다. 임시, 응급처치만 한 상태이고 앞으로 수술, 계속해서 치료를 해야 합니다. 방금 전까지 환자 옆에서 흘리지 못한 눈물이 이제 왈콱 쏟아진다. 눈물이 흐른다는 것이 내 눈이 아닌 귀로도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은 12시, 시계 작은 바늘이 1에서 2로 가고 있다. 

다음 치료 과정, 환자는 중환자실로, 보호자는 우선 집으로 향하였다. 급한 응급처치는 하였지만, 아직 넘어야 할 과정이 많다. 가야 할 산들이 더 있다. 



첫 도착 당시, 이때는 나도 모르게 좀 강하게 말한다.

'위험합니다' '심각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시작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처치, 검사, 응급치료가 끝나가고 나도 한숨 돌리고 환자도 조금 안정을 찾아가고 보호자를 다시 만난 자리에서는 강도를 낮추어 말한다.

강도를 일부러 낮춘다기보다, 정확히, 그리고 조금 더 희망을 더해서 말한다. 

'앞으로 치료 잘 하면 조금씩 좋아질 것입니다.'


날이 밝아지고 있다.

단 몇 시간이 흘렀지만 보호자들에게, 아이 엄마, 아빠에게는 수십 시간, 한두 달이 지난 것과 같은 시간이다. 

나는 전화를 건다.

아직 아침 출근하는 직원들이 출근하기 이전 시각이다. 

오늘의 1번 보호자는 환자 어머니다. 

전화벨이 한 번도 울리지 않은 상태로 전화를 받는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전화는 마무리되었다. 


단 하룻밤, 환자와 보호자와 의사 사이 관계는 믿음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믿음은 완성된다.

이런 믿음은 치료 단계에 그 무엇보다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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