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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애틱 Sep 17. 2021

오버 더 문

말레이시아에서 보내는 한가위


이모는 문제없다. 조카는 일도 아니다. 매형, 제부, 처형, 동서, 형님은 꺼내지도 말자. 입만 아프다.

사촌으로 가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숙부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의를 상실하고 무념무상으로 빠져드는 건 당숙, 이종, 외종 등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부끄럽지만 가족 촌수를 들었을 때 체감 난이도다. 때에 따라 "아, 그분이 나한테?" 또는 "가만있어보자…." 하고 시간을 번 다음 손가락을 꼽아가면 가까운 분 정도는 겨우 알아낸다. 드라마 속 갑자기 등장하는 유학 갔다 온 인물을 아내에게 물어보면 힌트랍시고 아버지 형제의 누구라고 알려 준다. 아무리 눈알을 데굴데굴 굴려도 애초 입력되어 있지 않은 답이 떠오를 리는 없었다.


"아! 그럼 저 사람이 이종사촌이야?"

드라마 작가가 공들여 구축해 놓은 극 중 인물 관계를 콩가루 또는 근친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에 이미 익숙한 아내는, 이제 이해시키려는 노력조차 포기한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한숨은 아깝다고 안 쉰 지 제법 됐다.

친척이 없어서 그렇다는 걸 핑계로 뒤에 숨긴 하는데 영 모양새가 우습다. 하지만 촌수를 모른다고 큰 불편함은 없었고 대가족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안 보면 그만이었다. 역시 이웃사촌이 최고라며.


한편 우리 아내는 초특급 대가족에서 자랐다. 우리 쪽 친척을 다 끌어모아도 아버님 한쪽 식구를 못 채우는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님도 그만큼이 더 계셨다. 상황이 이러니 촌수는 미지의 영역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아내가 부르는 호칭이 곧 내가 부르는 호칭이다. 말레이시아로 오기 전 한국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작은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이 아직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세상 그렇게 많은 소주병은 둘째 치고, 싸늘한 늦겨울 저녁, 충남 서산 뒤뜰 마당의 장작불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전복과 삼겹살 이하 육해공 싱싱한 식자재는 우리의 인생에 보내는 찬미였다.


우리나라를 떠난 후, 열 번째 해를 보내는 동안 가족과 함께 보낸 명절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총각일 때는 망나니 불효자식이라 그렇다 해도, 결혼하고도 이러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도 나지만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 양가 부모님께는 낯짝을 들 수 없다. 똑같은 막내 부부라 기댈만한 누나와 언니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애틋한 마음이 눈덩이처럼 커져간다. 우리 마음도 이러한데 손주까지 보고 싶은 부모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우리가 세 번째로 한가위를 맞는 말레이시아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다. 다음 주 월요일에도 일하고 화요일에도 일한다. 온라인 클래스만 없으면 세상이 행복해질 것 같다는 딸의 소망은 아쉽게 다음 주에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 공휴일도 아닌 평범한 하루 중 하나니까 말이다.

첫 번째 해에는 중국계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명절인 중추절(中秋節)을 따라 즐겼더랬다. 보름달 모양을 따라 만든 떡 월병도 먹어봤고 등불 축제도 슬쩍 따라 즐겼다. 같은 일터 사람과도 얼굴을 맞댈 수 있었으니 중추절 음식의 의미를 듣거나 얻어먹기도 했다.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모여 하나 되는 뜻을 담은 떡이 월병이라 했는데, 그때도 지금도 월병의 의미는 기리지 못하게 됐다.


우리끼리 단출하게 모이는 가족 풍경도, 때로는 무식함이 찬란히 빛나는 촌수 막론 북적북적한 가족과의 풍경도 너무 그리운 모습이다. 다음 주 한가위에도 우리는 네모난 핸드폰 창을 통해 가족과 만나게 될 것 같다. 언젠가 서로 부둥켜안고 어루만지고, 손을 맞잡겠지만 아직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우리 가족끼리 조촐하게 송편으로나마 그리운 마음을 달래야겠다. 핸드폰 창으로 보이는 온갖 산해진미를 눈으로 배불리 먹겠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와 자녀, 할아버지와 손자, 부부, 형제자매끼리는 촌수도 따지지 않는 사이라던데. 역시 나는 중요한 것만 기억하는 사람인가 보다. 우리는 촌수도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고, 이번 한가위에는 더욱 그리워할 예정이다. 자주 통화를 하지만 지금 엄마가 보고 싶으니까 또 전화나 드려야겠다.



 <사진 애니메이션 '오버 더 문 Over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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