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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진 WonjeanLee Apr 22. 2018

백일장이 뭐길래, '대학'이 나오나

교내 아니 정확히 말하면 관내 교육청 단위 백일장이 열렸다. 지난주였다.

첫째는 그런 걸 왜 하냐고 던져 버렸다. 둘째는 학교에서 주제를 받자마자  원고지 2장을 써왔다. 참가하고 싶었던 거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수줍게 그걸 먼저 찾아 내민다. "이거 금요일까지래요." 


나는 첫째와 둘째가 성격과 강점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첫째는 구조에 강하다. 무수한 정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섭렵하고, 정보를 벽돌처럼 차근차근 쌓아나간다. 그러면서 세부사항에도 관심이 많다. 종합과 분석이 다 잘 된다고 믿고 싶다. 가장 놀라운 건 그걸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머릿속의 구조를 그림으로 표현해낸다. 나에게는 없는 능력이라 볼 때마다 감탄한다. 누구에게도 신경쓰지 않는다. 자기 자신으로만 충분하다. 가끔 내게 비밀 얘기를 털어놓으면 자기는 자신감이 없단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충만한 자신감이 있다. '이게 자신감이야'라고 이미 부르기도 전의 자신은 느끼지도 못할 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게 보인다. 이 친구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약간 놔두고 싶다. 반장선거를 나가보는 게 좋겠다고 백일장을 나가보는 게 좋겠다고 해도 어떤 감언이설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남의 시선 따위 애초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난 네 글이 참 좋은데, 난 네 생각하는 방식이 좋고, 그걸 글로 써보면 좋겠는데"


처음엔 이렇게 설득했다. 진심이었다. 더구나 누군가가 네 글의 팬이라고 고백하고, 글이 참 좋다고 고백하는 걸 듣는 게 가장 빨리 글쓰기에 착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달인 강원국 선생님이 그랬는데, 

백약이 무효다. 

둘째가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갑자기 옅까지 잘 버텨온 참을성이 터진다. 


"이런 게 다 모여서 수상하고, 그런 포트폴리오 되고, 대학 가는 건데 어쩌려고 그래?" 


빵 터져버렸다. 내 입에서 '대학'이 나오는 순간 나는 다시 나의 학창 시절 악몽으로 되돌아간다. 

내가 생각하는 대학이 당연히 순위권 서열 대학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난 그 대학 악몽에 시달리며 

첫째 언니와 둘째 언니가 대학에 입학하는 걸 보면서 공포에 휩싸였다. 그 대학이란 곳의 정원은 이 친구의 시절엔 고교 졸업생보다 미달할 것이라는 것도 알면서, 대학이 전혀 중요하지 않고, 지금의 초등학교도 deschooling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고, 그런 책을 밑줄치면서 읽고 있고 "진짜 중요한 배움은 언제나 학교 밖에서 일어난다"고 하면서 

나는 또 대학을 말하고 말았다. 어떻게 대학갈래? 뭐가 될래?

아이의 자존감 도둑이 되고 말았다. 공포마케팅을 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나 역시 지금 또 다른 커리어패스에서 소위 그 포트폴리오가 (남들 보기에) 허접하다고 생각해 자존감이 바닥이다.

나는 내가 하고픈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그 분야에서 충분한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는데

포트폴리오(국제학술논문)로 가산점을 매기는 그 현실에서는 명함을 내밀지 못해 부끄럽다. 

나는 "나만 자신있으면 되지. 나를 기다려주자"란 생각과, "그래도 사회적으로 객관적인 포트폴리오로 변별력을 가져야"라는 사이에서 매일 흔들린다.

한때 포트폴리오에 매진했었고, 그게 그다지 정직하지도 나란 사실 그 자체를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한다고 느꼈기에 근본적 회의를 갖고 있는 것도 맞다. 

그러면서 아이가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화가 나는 거다. 

(물론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그 포트폴리오에 육아란 경력이나 가치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엄청난 부조리가 숨어있다. 육아로 실적이 약해질 수밖에 없음에도 포트폴리오상에서는 그저 내쳐지는 상황은 재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더욱 살벌하고 폭력적으로 건재하고 있다.)


최근엔 아이들과 함께 한 달에 한번 가족회의를 하기로 했다. 

지난 연말 성당에서 ME(Marriage Encounter)라는 프로그램을 했는데 세 아이들을 다 데리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간식 먹었다. 이걸 본 아이들이 우리도 이런 걸 해보자고 해서 마련된 자리다. 

가족회의까지 매번 안건을 해결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서로를 경고하는 원칙을 만들기로 했다. 

칠판에 각자 자기 이름이 붙은 자리에 가족 중 누군가가 그 이름의 사람에게 못 참을 일을 당했을 때 (이른바 불의를 당했다고 느낄 때) 바를 정자를 한 개씩 긋는다. 


처음에는 이에 벌금을 매기려고 했다. 그러나 그건 좋은 방식이 아니었다. 벌금을 내려니 너무 저어해, 수긍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거다. 역시 자본주의적 방식은 맞지 않았다. 

결국 가족회의에서 내가 제안한 것은 "남들이 괴롭다고 하면 그냥 받아들이기"였다. 

소위 "그랬구나" 화법이다. 

나는 정의라는 것은 누구도 괴롭지 않은 세상, 누구도 억울하지 않은 세상이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단 한 사람이라도 나 때문에 괴롭다면 그것을 호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 그 권리(right)가 올바름(right)과 맞물린다.

내가 당장 수긍할 수 없더라도 받아들이는 연습이 중요하다. 

바를 정자는 "(너 악한데) 바르게 돼라"는 뜻이 아니라, "너 원래 바른데 왜 나를 아프게 하니, 한번 다시 생각해줄래"의 뜻이니 수긍하자고 얘기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원칙을 정한 이후 아이들이 내가 게임을 할 때 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정주행에 빠져있을 때  바를 정자를 준다. 아이들은 "엄마, 원래 그런 사람 아니잖아. 게임삼매경도 좋지만, 나도 좀 챙겨줄래요?"라고 말하는 거다.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 


진짜 바를 정자는 화가 나면 '대학'을 언급하는 나의 발상, 인서울을 가려면 반 5등, 특목고를 제외하면 반 2등 안에 들어야 한다는 논리에 고 3 수험생 대비, 인서울 정원과 특목고 정원을 계산하며 '은근히 맞는 논리'라며 설득되고 있는 나 자신의 옹졸함이다. 그 옹졸함 역사엔 때론 단원평가에서 수 개 틀렸다는 아이에게 "너 위에는 몇 명 있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해. 아래를 쳐다보지 말고, 위를 봐봐"라고  악령처럼 습관귀신처럼 얘기하는 나도 있었다. 

바를 정자는 여기에 붙어야 한다. 

"나 이러지 않으려고 미친듯이 공부하는 건데"


그 첫째 둘째가 오늘 아침 새벽부터 수영대회에 나갔다. 

매일같이 기록이 단축된다고, 수영복을 바꾸니까 놀랍도록 기록이 향상되더라고

"엄마 말이 맞았어요. 사람이 계단처럼 오르더라고. 잘 안되는 거 같다가 갑자기 늘더라고. 

나쁜 날만 있는 줄 알았는데, 좋은 날도 결국 오더라고"

세계 최고가 겨루는 올림픽이 왜 과학인지 알겠다고 평창 올림픽기간 내내 빠져있었던 둘째가 오전에 금메달 2개를 따왔다. 

아빠가 데리고 간 대회에서 첫째가 둘째를 응원하면서 하는 말이 아빠가 보내온 동영상을 통해 전달된다. 

"동생 진짜 잘해 아빠. 자유형에서 (두 살 많은 ) 저도 이겨요. 진짜 실력 많이 늘었어"


승부욕이 강한 둘째를 움직이는 힘과 그 둘째를 응원하며 자신만의 길이 더 편안한 첫째를 움직이는 힘은 다르다. 

그 둘째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첫째를 보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자식이 부모보다 낫다는 거구나. 

서열화를 극복하기 위해 곤이지지(困而知之: 고생고생 힘들여 아는 경지) 해야 하는 나보다 낫다.

너는 누군가가 잘하면 진심으로 응원해줄줄 아는 생이지지(生而知之: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경지)다.


아이들은 무한히 관용적이다. 

이런 모순의 엄마를 받아준다. 

그냥 '바를 정'자 하나를 치면서 엄마가 사람되는 날을 기다린다. 

우리 엄마니까


참 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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