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일
내 일생에 가장 빛났던 스무 살 대학교 1학년, 학교 앞 즐겨 가던 ‘창’이라는 이름의 소박한 카페가 있었다. 우리는 수업이 없는 낮에도(아니 수업이 있는 낮에도 종종), 술 약속이 없는 밤에도 들러 맛도 모르는 커피를 시켜놓고 그렇게 수다를 떨었고, 카페‘창’의 단골이 되었다.
단풍의 빨강색이 깊어지던 어느 가을 날, 그날도 ‘창’에서 친구들과 수다가 한창이었다. 이젠 제법 친해진 주인아저씨가 문득 내게 책 한 권을 내밀며 선물이라고 했다. 손때가 묻은 낡고 오래된 하얀색 표지에는 서양 철학자 같은 할아버지 얼굴과 함께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이라는 제목이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자신이 몹시 애정하던 책인데, 이젠 내게 이 책의 주인이 되라고 했다. 한 눈에도 근사해 보이는 철학책이었지만, 몇 장 읽지 못하고 오랜 세월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었다. 끝내 다 읽지는 못했지만, ’미학‘이라는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멋진 학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잊지못할 기억이 되었다. 바람이 스산했던 겨울 어느 날, 카페’창‘은 갑자기 문을 닫았고, 주인아저씨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닐 때, 총무팀의 최 대리님은 잘 웃지 않는 과묵한 사람이었다.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갑자기 가방을 싸 들고 나가 며칠씩 출근을 하지 않는 사건(?)도 있었다. 바람도깨비 같은 최 대리님은 좋은 대학의 법학과를 졸업하고 오랜 세월 고시 공부를 하다 결국 ‘취업’이라는 현실을 택한 수재였다. 최 대리님은 처음엔 불편한 사람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위 ‘츤데레’같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내 남자 친구의 고등학교 선배라는 것도 알게 되어 더 친해졌다.
내 생일 날 아침, 이제 막 출근한 최 대리님이 오다 주웠다며 책 한 권을 내 책상에 툭 던졌다. 네가 읽어야 할 것 같다고 무심하게 말했다. 오다 주웠다 하기엔 윤기가 반들반들한 양장본의 새 책 제목은 <미학 개론>이었다. 반갑고 정말 고마웠지만, 이 책 역시 몇 장 못 읽었고, 우리 집 낡은 책장에 오래오래 꽂혀있었다.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두 사건이지만, 도대체 나한테 왜 ‘미학’ 책을 선물한 건지, 두 사람에겐 이젠 더 이상 물어 볼 수도 없는 오래된 질문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제주에 살면서 그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 선물 받고 읽지 못한 채 책장에 꽂혀있다 사라져 버린 ‘미학’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쭉 내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는 것을. 책을 선물한 두 사람은 내 일상의 미학을 알아차린 ‘도인’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가난하고 고달픈 삶 속에서도 아침마다 쇼팽과 모차르트의 피아노곡을 틀어놓고 어린 나를 깨우시던 우리 엄마, 좁디 좁은 집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던 낡은 책장에 꽂혀있던 고흐와 마네, 샤갈의 그림책, 김찬삼의 세계 여행책을 꺼내 읽어주시던 아빠. 나는 비록 가스 똥 바슐라르처럼 ‘미학’을 학문으로 배우진 못했지만, 언제나 아름답고 어쩌면 무용(無用)한 것을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일상에서 탐구하고 사랑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술’이란 예술가들의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가 아니다. 일상 틈틈이 작은 것에 기어이 아름답고 즐거운 것을 찾아내는 우리는 사실 모두가 ‘예술가’다. 우리는 일상에서 우리만의 그림과 곡을 만들고, 춤을 추고 드라마를 쓴다. 예술은 ‘우사세’(우리들이 사는 세상)다. 이제부터 내가 사는 보통 세상의 예술을, 미학을 이야기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