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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의 순간 Nov 03. 2016

Canzona (There Will Be Time)

음악의 순간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무조건 12시까지 야자를 했다. 의무적으로 잡혀있어야 했는데, 그때 나를 키운 8할은 전영혁 선배님 방송이었다. 음질이 좋다고 해서 크롬 테이프나 일본 TDK 테이프 천 개를 사서 날마다 모든 방송을 녹음해가며 들었다. 팻 메시니나 필 만자네라 같은 생소한 아티스트도 그 방송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다. 오잔나의 <Canzona (There Will Be Time)>도 그때 처음 들었다. 그날 눈이 무척 많이 왔는데 그 곡을 처음 들었다. 듣는 순간 눈이 오는 배경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일부러 길을 돌아서 갔다.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길이었는데 언덕길로 돌아가면 40분 정도가 걸렸다. 처음 들은 그 노래가 너무 좋아서 제목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노래 제목을 잘 못 알아들었고 또 하필 그때 테이프가 끊겨서 노래 제목을 말해주는 부분이 녹음이 되질 않았다. 전영혁 선배님 방송은 똑같은 노래가 잘 나오지도 않지 않나. 똑같은 노래 선곡 로테이션이 긴 편이라 노래 제목은 너무 알고 싶은데 알아낼 방법은 없고, 그때 같이 놀았던 예바동(예술바위동호회) 형들한테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습관처럼 테이프로 녹음을 하면서 방송을 듣는데 그 노래가 다시 나온 거다. 그때 기분은 정말이지...(웃음) '이번엔 꼭 제목을 알아야지' 하면서 듣고 있는데 전영혁 선배님이 마지막에 "오잔나의 <Canzona (There Will Be Time)>이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실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각인되는 노래들이 있는데 나에겐 오잔나의 <Canzona (There Will Be Time)>이 그런 노래였다. 이후에 내가 성인이 돼서 사실 어느 정도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내한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예매를 하고 공연을 봤는데 이 노래가 흘러 나왔다. 마술처럼 내가 고등학생 때 눈 내리는 길을 빙 돌아서 걷던 풍경이 다시 내 눈 앞에 펼쳐졌다. 한국에선 절대 라이브로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노래를 내 눈 앞에서 시연해주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특별한 해석이나 설명을 달 필요 없이 그 노래가 아직까지도 나에겐 큰 모멘트로 남아 있다. - 이경준(웹진 '이명'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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