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정원이 아름다웠던 두부전문점 난전제 준세이
"교토는 두부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물이 맑은 곳이라 두부가 맛있을 수밖에 없었고, 일찍이 불교가 융성했던 곳이라 고기를 먹지 않는 스님들이 단백질 섭취를 위해 두부를 즐겼다고 한다." (아래 본문 중)
의정부 부대찌개, 담양 떡갈비, 남원 추어탕...처럼 교토에는 두부정식(유도후)을 손꼽는다고 합니다.
두부정식 식당 중에서도 남선사(난젠지)를 가는 날 들르면 좋은 곳, 옛 교토의 정취를 닮은 정원이 있는 곳, 난젠지 쥰세이점을 소개합니다.
난젠지(남선사) 가는 길에 들렀던 두부전문점에 대한 기대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두부요리가 유명한 교토의 두부 맛, 다른 하나는 푸릇푸릇한 정원이었다. 정원을 보며 두부정식을 즐길 기대를 안고 가게를 찾았다.
입구에서 가드에게 예약여부를 확인받고 대문을 들어서자 바로 가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이 시작됐다. 대감집을 들어가듯이 별채 같은 집 한 채를 지나고, 연못을 지나고, 이름 모를 정원나무와 꽃들을 지나, 그제야 식당으로 보이는 단층의 건물이 보였다. 한 층 짜리 건물은 통창이라 안에서 식사하고 있는 손님들이 바로 보였다. 식사 중인 얼굴들이 모두 평온해 보였다. 역시 좋은 곳이구나 기대에 차서 가게에 들어섰다.
정식을 주문하기로 결정을 이미 하고 왔으니 망정이었다. 여기가 바로 교토 여행책에서 보던 ‘영어 안 하는 식당’이었던 것이다. 일본사람들 특히 교토 사람들은 관광객 수에 비해 영어를 안 쓴단 얘길 들었는데 점원과 영어 소통이 거의 되지 않았다. 하지만 메뉴마다 사진이 있어 처음 오는 이도 주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았다.
중요한 건 테이블에 앉아서 통창으로 탁 트인 정원을 보는 순간 이 정도 불편함은 잊게 된다는 이다. 바깥에서 봤을 때 느껴진 가게 안 손님들의 평온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정원과 마주하는데서 오는 느낌이었다. 국내에서 가봤던 경관 좋은 식당들은 거의 높은 건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수직적인 시야였는데 여긴 정원 경관과 나의 시야가 수평으로 맞닿았다. 낯선 시야였다. 정원을 이루는 나무와 꽃들은 웅장하고 화려하다기보다 오밀조밀했다. 균형이 잘 잡힌 꽃꽂이처럼 너무 큰 나무도, 꽃도, 암석도 없었다. 평수에 맞게 가구가 적당히 들어가 있는 집을 보면 단정하고 쾌적하단 느낌을 받듯이 이 정원도 그랬다. 허전하지 않지만 한적해 보였고, 사치스럽지 않지만 귀해보였다. 자연을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마주한 기분, 마음에 고요가 깃들었다.
세로보다 가로가 훨씬 긴 통창을 통해 보는 정원 풍경은 교토에서 많이 본 장벽화* 같기도 했다. 넓은 시야의 창이라 어렵지 않게 정원의 저 끝까지 시선이 닿았다. 원형의 4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지만 정원까지 모두 내가 차지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넓은 영역을 차지하는 기분은 이런 거구나 싶었다.
한창 느긋하게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점원이 정갈한 두부 정식 한 상을 차려주었다. 미끈하고 뽀얀 두부가 담긴 도자기 전골냄비 위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화려한 기계 문명이 오기 전, 옛사람이 누리던 사치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소박하고도 호사스러웠다.
*일본 건축 내부 공간을 구획하는 칸막이(障)와 벽(壁) 등에 그린 그림의 총칭. (네이버 두산백과 출처)
두부코스 메뉴는 말간 두부를 중심으로 차려진 유도후라 불리는 정식이었다. 교토는 두부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물이 맑은 곳이라 두부가 맛있을 수밖에 없었고, 일찍이 불교가 융성했던 곳이라 고기를 먹지 않는 스님들이 단백질 섭취를 위해 두부를 즐겼다고 한다. 유도후는 조리가 된 두부요리는 아니고, 데친 두부를 건져서 다른 찬들과 곁들여 먹는 메뉴다. 두부를 간 없이 데치기만 하고 찬을 곁들이니 속이 참 편안한 조합이었다. 밥도 참 고슬고슬하니 맛있었다. 이 역시 물이 맑은 동네의 힘인가. 두부는 연두부 같은 매끈한 생김새와 달리 찌개두부 수준으로 단단했다. 덴뿌라(튀김) 역시 깨끗한 기름에 튀긴 게 티가 나는 깔끔한 맛이었다. 두부와 같이 먹으라고 내 준 짠지류의 반찬은 다양하게 나온데 비해 입맛에 맞는 게 없어 아쉬웠다. 하지만 모든 찬들이 담백했고, 두부와 잘 어울렸다. 두부가 온전히 주인공인 메뉴였다. 두부 본연의 맑은 맛을 어떤 반찬과 양념도 덮지 않았다. 침범받지 않는 고결한 두부를 맛보는 것 같았다.
유도후를 먹다 보니 한국의 두부요리들이 떠올랐다. 두부전골, 두부조림, 순두부찌개 등등 화려한 양념으로 한껏 차려입은 두부 요리들 말이다. 그렇다고 남편과 내가 느끼는 이 허전함이 양념이나 김치의 부재는 아니었다. 매콤한 맛이라곤 순한 고추를 가볍게 튀긴 고추튀김뿐인 것도 아쉬웠지만, 매운맛도 원인은 아니었다.
뭐랄까, 내향적인 친구 모임에 온 기분이랄까. 어떤 반찬도 도드라지는 맛이 없어서 이래도 되나 싶은 심심한 맛 때문이었다. 굳이 꼽자면 쯔유 맛이 그나마 말수가 있는 편인데, 두부가 워낙 촉촉하다 보니 짠맛이 사그라들어 마치 슬그머니 두부 손을 잡고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유도후에 대해 ‘맛있긴 한데 뭐…’로 이어지는 리뷰들을 그렇게 남겼나 추측했다.
하지만 맛은 순순할지언정 가게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명확해 보였다. 이 식당에서의 모든 경험이 하얗고 말간 두부 같았다. 두부가 정점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두부전골을 먹고 그와 동시에 저 단정한 정원을 봤다면, 이 고요하고 정적인 경험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ㅇㅇ가든에 가면 정원을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놓은들 갈비냄새만 남는 것처럼. 만약 반찬이 조금 더 맛깔나고 자극적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 깨끗하고 맑은 두부의 맛과 온도는 지금처럼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들이 교토여행에서 무얼 먹었느냐고 물으면 준세이의 하얀 두부가 둥둥 떠오른다. 두부를 데치던 뽀얀 증기와 그 뒤로 보이던 정원이 생각난다. 이 식당에서의 경험은 교토라는 도시에서 느낀 옛 수도의 고즈넉함, 평온함, 단정함 같은 인상들과도 잘 어우러져서 한 폭의 그림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교토 맛집을 묻는 질문에는 준세이를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에 화려한 맛과 모양을 그리며 맛집을 물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맛집’이라는 단어에 맛뿐 아니라 식사와 함께하는 어떤 총체적인 경험도 포함된다면, 이곳을 소개하고 싶다. 특히 여행 중 온화한 한 끼로 허기를 채우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1순위로 준세이를 추천하겠다.
난젠지 준세이
주소: 60 Nanzenji Kusakawacho, Sakyo Ward, Kyoto, 606-8437 일본
영업시간: 오전 11:00 ~ 오후 9:30 (주문 마감 오후 8:00, 비정기 휴무)
특징: 난젠지(남선사)와 2분 거리, 홈페이지로 예약 가능
홈페이지
▶홈페이지에서 식당과 주변 명소 간 거리, 가격을 포함한 메뉴소개를 볼 수 있습니다.
*주소와 영업시간은 구글맵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