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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딸을 낳았어요

엄마가 되고 쓰는 첫 편지

by 정예예


사랑하는 엄마아빠


이 편지는 특별해요. 해나가 태어나고, 제가 엄마가 되어 처음으로 부모님께 쓰는 편지니까요.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쑥스러워서, 시간이 없어서 더 말하지 못할 것 같아 지금 느끼는 것들을 글로 전하려고 해요. 지금 해나는 자고 있어요.


해나가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은가 싶기도 해요. 처 중에 처음이니까요. 조리원에서는 아이가 좀 개우기만 해도 호들갑이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하는 것처럼 익숙해지는 것들이 많아지겠죠.


부모가 되고 제일 먼저 배운 건 자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 같아요.

많이 들어는 봤지만 경험하는 건 역시 또 다르더군요.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게 얼마나 있겠냐만, 자식이잖아요.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은 존재이자 떼려야 뗼 수 없는 사이인데. 참 쉽지 않은 관계가 될 거라는 걸 느껴요. 이런 천사가 있나 싶게 예쁘다가도 어느 날은 밉고, 서운하겠죠?


사실 이미 요 근래 안 자고 몇 시간을 우는 아이에게 짜증이 많이 났어요. 근데 또 씩씩하게 젖 물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너무 사랑스럽고. 앞으로 이런 날들의 반복이겠죠? 하지만 진득한 사랑 관계가 어떻게 애정만 있겠어요. 다양한 감정들을 주고받으며 우리 사랑이 더 다채롭고 끈끈해질 거라고 믿어요. 엄마 아빠랑 언니와 제가 그랬듯이요. 그 편이 더 자연스러운 사랑의 모양이고요.


아이를 낳고 그냥 다 풀어졌어요. 잘 기억도 나지 않네요.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엄마아빠와도 꼬인 매듭이 있었던 것 같은데. 원래 이런가 했더니 비슷한 말을 다른 엄마들도 하더군요. 신기하네요. 부모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이 또한 창조 섭리인가 싶어요.


추석이네요. 가을은 낙엽이 떨어지는 동시에 곡식이 무르익는 쓸쓸함과 풍요가 교차하는 계절이죠.

떨굴 것들은 떨구고, 거둘 것들은 거두는 단정한 채움의 시간을 보내보렵니다. 그러고 나면 해나 100일이 오겠네요. 하하, 해나가 태어나고 시간도 아이 위주로 흘러가요. 추석 다음 기념일이나 연휴를 떠올릴 때 크리스마스도, 설날도 아니고 해나 100일을 떠올리고 있다니. 역시 저도 이제 엄마인가 봐요.


사랑해요 엄마 아빠.

우리 해나랑도 행복한 시간 많이 쌓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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