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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하루 네 끼 먹는 사람!

by 정예예


막국수 두 그릇에 대왕 부추전 하나를 깨끗이 비우고 남편이 말했다.

“이제야 마음이 맞네!”

그는 요즘 내 먹성을 아주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10년 넘게 만나면서 이렇게 잘 먹는 건 처음 본다고.


연애 때도, 결혼 후에도 우리는 식사량이 늘 달랐다.

“점심은 회식으로 헤비하게 먹었으니까 저녁은 패스할까? 아니면 샐러드?”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는 늘 “점심은 점심이고, 저녁은 저녁이지” 하며 혼자 밥을 챙겨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출산 후에는 그가 혼밥을 한 적이 없다.

이제는 오히려 그가 나보다 한 끼 덜 먹는다.

그렇다. 나는 하루 네 끼 먹는 사람으로 새로 태어났다.


육아와 살림, 그리고 모유수유까지.

한 사람의 하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돌보는 양육자의 일과 세 사람 분의 살림을 하는 주부의 일은 끝이 없다.


어린이집 대기 신청을 하다가도 젖 물리러 뛰고,

빨래가 끝나면 세탁기 앞으로,

밥때가 되면 다시 부엌으로 간다.

하루가 이렇게 이어지니 세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루 네 끼, 그리고 간식까지 먹어야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다.


양식6 糧食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사람의 먹을거리.


요즘 식사는 내게 ‘양식’이다.

내 밥에는 세 사람의 생존이 걸려 있다.


엄마 젖만 먹고 자라는 딸,

몸도 마음도 버텨야 하는 나 자신,

그리고 함께 하루를 살아내는 남편.

이렇게 책임감을 가지고 밥을 먹어본 건 처음이다.


임신이 ‘입는 것’을 바꾸는 일이었다면,

출산 후의 삶은 ‘먹는 것’으로 새롭게 시작된다.

정현종 시인의 시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고, 나의 경우는 어마어마하게 먹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먹는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잘 먹어야 하루를 살아낼 충분한 힘을 얻는다. 아이가 양껏 먹을 모유가 채워진다.


오늘도 밥 한 공기를 가득 푸며 생각한다.

이 밥 먹고 오늘 하루도 잘 보내자.

우리 아가 잘 먹이고, 남편과 함께 웃자.


밥을 먹는 일은 이제 혼자 사는 일이 아니라,

함께 자라나는 일이다.

오늘도 밥심으로 우리의 하루를 지어 올린다.

밥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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