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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키웠네!”란 말이 주는 불편감

by 정예예


아이가 자라면 흔히 듣는 말이 있다.

“다 키웠네!”


머리로는 안다. 축하와 격려의 마음이라는 걸.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말을 들으면 마음 한쪽이 꽁해진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생을 쓱 덮어버리는 느낌.


어느 날, 남편에게 물어봤다.

“여보는 이 말 들으면 어때?”


그가 답했다.

“음 좋진 않아. 괜히 드는 마음이지만… 이제 다 키웠으니 부모님이 더 안 도와주신다고 할 것만 같고. 괜스런 마음이 들지.”


그렇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럼 부모님께 ‘다 키웠네’라는 말 좀 하지 말아 달라고 하자!”


그러자 남편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다시 나를 바라봤다.

다른 의견을 말할 때마다 나오는 그의 작은 습관.

눈을 마주친 나는 살짝 눈을 꿈뻑였다. 듣겠다는 신호.


“음… 그보다는 우리가 다른 정보를 드리면 어떨까? 다 키웠다고 말씀하시는 건, 우리가 얘기하던 어려움이 해결됐다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 같아.

지난번에 안 자서 힘들다고 했는데 요즘 잘 잔다니까 그럼 됐구나 싶지.

여보는 요즘 뭐가 힘들어? 새로 생긴 고민은 뭐야?”


나는 한숨과 함께 마음을 꺼냈다. 수유 때문에 여전히 토막 잠을 자고, 잘 안 자는 아기를 재우느라 매번 진이 빠지고…

일주일 전의 고민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새로운 힘듦과 걱정들이 많았다.


말하면서 내가 느꼈던 꽁한 마음이 정리가 됐다.

나는 여전히 이 산을 넘느라 숨이 가쁜데, 다 끝났다고 말하니 억울했던 거다. 그 의도가 어땠건 간에.


그날 이후로 “다 키웠네!”라는 말을 들으면 이렇게 말한다.

“맞아요, 이번 산은 잘 넘었죠. 감사해요. 그런데 곧바로 또 다른 산이 보이더라고요. 그게 뭐냐면…”

그리고 자연스럽게 요즘의 고민을 꺼내놓는다.


앞으로도 육아에 대한 말들을 많이 듣게 될 것이다.

혹시 어떤 말에 마음이 상한다면 그 불편을 안고 있기보다는 상대의 말에 담긴 온기와 오해를 잘 구분하며 대처하고 싶다. 아이가 자라듯 나도 부모로서 천천히 단단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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