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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배 Nov 20. 2019

입맛도 없는데 고추장찌개나 끓일까?

고추장찌개가 먹고 싶었는데...

나는 음식을 만들 때 '된장찌개 맛있게 끓이는 법'이나 '제육볶음 맛있게 만드는 법'과 같은 것들을 검색하지 않는다. 요리 실력이 수준급이라 조언 따위 필요가 없냐고? 그건 절대 아니다. 어떠한 음식을 만들기 전에 머릿속으로 조리에 대한 구상을 하는데, 양념은 대충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을 정도로 때려 넣는다. 들어가는 재료는 물론 만드는 방식 역시 내 마음대로다. 내 방식대로 음식을 완성해놨을 때의 그 맛을 즐긴다.


"아 맛없어... 망했다."


사실 만드는 요리가 매번 맛있지는 않다. 꽤 자주 실패한다. 그래도 뭐 내가 먹으려고 내가 만든 거라 누굴 탓할 필요가 없다. 만드는 내내 재료 하나 양념 한 술 신경 쓰이는, 한 숟갈 뜨고 맛있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조마조마한, 남에게 대접하는 요리가 아니라 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다.


자취방 냉장고에 돼지고기가 애매하게 남았을 땐 그것을 넣어 고추장찌개를 자주 만들어 먹는다. 딱히 생각나는 음식도, 먹고 싶은 것도 없을 때 고추장찌개에 밥이면 없던 입맛에도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새빨간 고추장찌개엔 양파, 파, 마늘과 함께 주인공 격인 돼지고기와 감자가 들어간다. 냄비에 푹 끓인 후 뚝배기에 옮겨 닮고 계속 끓인다. 국물이 꾸덕해질 때가 되면 완성이다. 감자와 돼지고기를 짭짤한 국물과 함께 밥에 비벼먹으면 이만한 밥도둑이 없다. 한 공기쯤이야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 고추장이 없네"


아 이런... 고추장이 없다는 건 냄비에 고추장이 들어갈 차례가 와서야 깨달았다. 정확히 말하면 모자랐다. 내가 원하던 고추장찌개는 고추장을 많이 넣어 시뻘겋고 얼큰해야 하는데 있는 고추장을 다 넣어도 국물 색은 그저 주황빛까지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항상 이런 식이지. 김치볶음밥이 먹고파 김치를 볶았는데 밥솥에 밥이 없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밖에 나가서 사 오자니 근처에 편의점 밖에 없다. 고추장 같은 양념류는 특히 비싸게 주고 사고 싶지 않았다.


된장이라도 넣어야겠다. 내가 생각한 고추장찌개엔 된장은 안 들어가는데... 짜증과 함께 된장을 한 숟갈 퍼서 냄비에 털어 넣었다. 이왕 된장까지 들어간 거 두부도 넣어야겠다. 마침 며칠 전에 먹다 남은 두부가 있어서 썰어 넣었다. 먹을 때가 돼서 국물을 맛보니 고추장찌개와 된장찌개의 중간쯤 되는 맛이 난다. 뭐 나쁘진 않네. 사실 돼지고기와 감자에 다른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가고 고추장, 된장이 들어가니 맛이 없기도 힘들겠다. 다만 생각한 그것이 아니라 조금 실망스러울 뿐이다.


된추장찌개 한상


고추장찌개와 된장찌개 사이 애매한 맛의 '된추장찌개'는 하필 양도 많이 만들어서 내일까지 먹어야 할 판이다. 뭐 어쨌든 먹다 보니 꽤 칼칼하고 구수하다. 감자도 포슬포슬하게 잘 익었고 두부도 맛있다. 그래도 이건 내가 생각한 고추장찌개가 아니잖아. 내일 학교에서 돌아올 때 마트에 들러 고추장을 좀 사다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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