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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배 Nov 27. 2019

배낭여행자의 닭볶음탕

그때의 닭볶음탕이 그립다.

닭볶음탕은 배낭여행을 하던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그리고 최적의 한식이었다.


아이폰 사진첩을 보다가 세계를 여행하던 때의 사진들이 나왔다. 오랫동안 자르지 않아 긴 머리에 헤어밴드, 그리고 조금은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의 내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문득 닭볶음탕이 먹고 싶어 졌다.


'역시 맛있다. 그럼 내가 했는데 맛이 없을 수 없지'


만든 음식이 맛있을 땐 어깨가 한없이 올라간다. 닭과 감자, 양파 등등 재료들을 손질하고 닭을 깨끗하게 씻은 후 갖가지 재료를 순서대로 넣어 끓여낸다. 국물이 자작하게 졸아들면 닭볶음탕을 그릇에 담고 흰쌀밥도 그릇에 푼다. 간이 알맞게 잘 배어난 닭다리를 뜯고, 잘 익은 감자를 국물과 함께 밥에 비벼먹으니 혼자임에도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아 배 터지겠네. 밥 두 그릇을 싹 비우니 배가 너무 불러 일어나기도 싫어진다. 설거지는 좀 쉬었다 해도 되잖아. 방에서 모든 재료를 갖추고 올바른 순서에 맞게 끓인 닭볶음탕을 먹고 나니 부족한 재료와 그저 모두 냄비에 넣고 끓이기만 했던 배낭여행자의 닭볶음탕이 생각난다.


자취방에서 끓인 닭볶음탕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한식당은 사치였다. 현지 음식에 비해 가격이 비싼 것은 당연한지라 카지노에서 20만 원을 벌었다거나 정말 한식이 고플 때를 제외하곤 쉽게 접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마트나 시장에서 원재료를 사는 것은 우리나라에 비해 매우 저렴했기에 주방이 있는 호스텔에서 자주 한식을 만들어 먹곤 했는데, 한국에서 만큼은 아니지만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었다. 마늘과 양파만 넣고 끓인 돼지고기 수육이나, 소고기에 감자와 간장만 들어가는 갈비찜 같은 것들로 한식의 허기를 채워나갔다. 허나 그 마저도 쉽지 않았던 것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면 각 국의 문화 혹은 종교적 이유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될 때가 있었다. 힌두교 국가에선 소고기를 먹을 수 없다거나 이슬람 국가에선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집트의 갈비찜


"아 한식 땡긴다. 오늘 호스텔에서 닭볶음탕 해 먹을까?"


하지만 닭이 없는 곳은 없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구할 수 없는 경우는 많았지만, 아무리 깡촌이라 해도 닭이 없는 곳은 없었다. 덕분에 여행 중 가장 많이 먹은 한식은 어설프지만 백숙, 찜닭, 닭볶음탕이 되었다. 중에서도 매운 음식을 좋아해 닭볶음탕을 자주 만들어먹었다.


닭만 있으면 닭볶음탕이 되나? 고춧가루, 진간장, 고추장 같은 양념이 없는데? 모르는 소리. 그런 것쯤은 어딜 가나 다 있다. 고추장은 좀 힘들지만 고춧가루나 간장 혹은 비슷한 양념은 어디에나 있었다. 물론 한국산과 같은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닭볶음탕은 방법이라 해봤자 다 때려 넣고 끓이는 게 끝이었고, 타국에서 먹는 야매 닭볶음탕은 23% 정도 부족했지만, 정말이지 감격스러운 맛이었다. 없는 재료로 끓여내 부족한 맛이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그 부족한 맛을 그리워한다.


내 방에서 편안히 원하는 재료와 양념으로 그 맛을 만들어내는 닭볶음탕은 분명 여행할 때의 닭볶음탕보 더 맛있지만, 체코에서, 인도에서, 이집트에서 없는 재료로 대충 끓여 먹던 닭볶음탕이 더 생각난다. 한국에서 먹는 닭볶음탕이 그때의 닭볶음탕 보다 맛이 덜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때가 그리워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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