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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챱 Jan 21. 2024

MBTI에 대한 비판적 사고

어쩌면 이것은 착각일는지도 모른다.

"전 INTJ예요", "저는 ENFP요!"


(이건 나의 뇌피셜이다) 여기저기서 핫하게 거론되고, 마치 유행어처럼 마구 수면위로 올라오는 듯한 MBTI 트렌드는 이제 조금 가라앉은게 아닌가 싶다. 오히려 지금은, 마치 뉴진스가 신곡을 발표하면 너도나도 숏츠 챌린지를 올려대는 것과 같이 MBTI에 대해 이야기한다기보다는, 뭔가 MBTI를 묻는 것이 일종의 신뢰할 수 있는 지표중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초창기 아주 잠깐동안에는 나도 내 MBTI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내가 남들에게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못하는 이 나의 답답함을, MBTI 유형 해설이 차근차근, 알기 쉽게 대신 얘기해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대리인 같았달까.


하지만 작년 즈음부터, 나는 오히려 MBTI에 가장 적은 신뢰를 주기 시작했다. MBTI는 명확한 설명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을 알아가는 데 좋은 지표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만들어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시야를 좁게하고, 이는 더 다채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데 방해요소가 된다고 느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MBTI는 기질에 대한 것이 아니며, 가변성이 있다.

이 이유를 좀 더 잘 설명하려면, 일단 '기질'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기질은,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갖고 나오는, 일종의 DNA처럼 그냥 순수한 나 자체를 구성하는 굉장히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 사람은 예민하다'라는 말과, '그 사람은 기질적으로 예민하다'라는 말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물론 선천적인 것도, 때로는 그사람이 오랫동안 몸담아온 환경에 의해 변화되는 부분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질은 그렇게 태어난 것이라서, 좀처럼 바꾸기 힘든 것이기도 하고, 내가 가장 편안한 상태에 있을 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만약 MBTI가 기질을 보여주는 테스트였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게다가 MBTI를 테스트 할 때 무의식적으로 반영되는 당신의 신념, 성격, 취향, 사고방식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나이를 먹어가며 성장/노화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혹은 내가 앞으로 어떤 일들을 접할지, 어떤 것이 내 주요 관심사(care)가 될지에 따라서도 충분히 한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나, 대응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우리는 MBTI의 지문들에 대해 답변할 때, 항상 '오래전에 내가 어떠했는가' 또는 '앞으로 난 어떻게 살것인가'가 아닌 '지금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를 기반으로 하기에, 우리의 답변들은 높은 가변성을 지니게 된다. 즉, MBTI가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임시적인 것이지, 그것이 곧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아, 난 원래 이런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며, 죽을 때까지 이럴거야'라고 섣불리 단정짓는 건 인지적 오류로 볼 수 있다. 비록 아주 오랜 과거부터 지금까지 나는 크게 변한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앞날의 나는 어떤 사람일지 미리 확인할수 없는 것이기에 어떻게 보나 그걸 자신의 페르소나로 사용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2. MBTI 답변은 너와 나의 결과를 서로 비교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 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 답변들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에서 [이런]에 넣어주기에는 다소 얼룩덜룩한 데이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성된 지문(질문)들을 보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거나 생각했는지를 묻는 질문들도 더러 존재하지만, 사람마다 자신의 기억 속 다양한 사회적 맥락, 또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기준으로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질문들도 존재하며, 때로는 테스터에 따라 같은 지문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비교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비교하려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가 완전히 동일한 조건인 상황하에서만이 완벽한 비교가 가능하다. 하지만 MBTI의 실제 지문들이 어떠한지를 차근차근히 살펴보면, 완벽하게 비교를 하거나 혹은 완벽에 가깝게 비교를 하기에도 다소 그때그때마다 답변이 들쭉날쭉할 수 있는 지문들이 다수 존재한다. 다음은 실제 테스트 속 문항들 중, 그에 해당될 수 있는 지문들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일이 잘못될 때를 대비해 여러 대비책을 세워두는 편이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전히 완료한 후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편이다.

매우 감상적인 편이다.

일정이나 목록으로 계획을 세우는 일을 좋아한다.

감정보다는 이성을 따르는 편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일을 즐긴다.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결정을 내리는 일을 마지막까지 미루는 편이다.

이미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위 질문들은, 내가 '업무중일 때'를 기준으로 두고 보느냐, 혹은 업무 외 시간, 내가 온전한 나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유시간을 기준으로 두고 보느냐에 따라 그 점수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들어, 나의 경우 오히려 업무중에는 그렇게 여러 대비책을 세워두지는 않는다. 물론 업무특성상 미리 모든 계획을 짜고, 가능성들을 어느정도 염두에 둔 채 임하긴 하나, 모든 대안책 또한 메인 계획만큼이나 완벽하게 정리해두고 일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회사의 일이란 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에서의 나는 다르다. 특히나 영국에 와서 살면서, 쉽게 되는 일이 한국에서 살 때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주된 안을 중심으로, 그 계획이 틀어졌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또는 어떤 마음을 먹을 것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두곤 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할 때는 오히려 그들이 나에게 (내 기준으로)충분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 외 내가 무관심한 상황들에서는 모든 것이 가치없고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쓸데없이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줘서 내가 상대해야 할 일이 커지기 보다는, 그냥 빨리 상황이 종료되고 내가 관심있는 쪽으로 갈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사실 대부분이 이러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예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관심있는 것에 그만큼 더 에너지와 관심을 쏟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최근에 발견한 사실인데 나는 업무 외적으로나,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한 상황이 아니면 즉흥적으로 마주하는 (기분좋은)상황들에서는 지극히 감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행중일 때가 약간 그렇다.


이처럼, 각 문항을 마주했을 때 답변자가 점수를 매기기 위해 기준으로 삼은 상황이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최종 결과에 때에 따라 변화를 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테스트 결과를 아주 타당하고 유효하게 하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전 문항들에 대해 답변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히 똑같은' 것을 기준으로 삼아 평가하게 해야만이, 내가 A라는 결과를 받고 네가 B라는 결과를 받았을 때 비로소 이 둘을 '아 나는 A인데 넌 B구나' 라는 말이 과학적이며 신뢰도가 좀 더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준들이 상당히 모호하며, 각 문항에 대해 각자 기준점으로 삼는 것 또한 다양할 수 있는 상황에서의 MBTI테스트 결과를 이용한 비교는, 엄청난 과학이라기보다 그냥 재미있는 심리테스트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3. 인간은 누구나, 1개 이상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산다.

이건 2번과 다소 중첩되는 이유인데, 우리 인간은 세상의 모-오든 것에 대해 늘 대쪽같이 동일하게 생각하고 대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갖는 사회적 위치나 역할에 따라서도 한사람은 몇가지의 가면을 갖고, 상황에 맞게 적절한 페르소나를 전진배치한다. (하지만 이걸 마치 누군가를 속이는 것이라고 착각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때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필수 생존요소중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MBTI는, 결과가 오직 하나로 귀결된다. 나는, 한 사람에 대해 단 한줄로 완전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내가 그사람에 빙의되어 살아보면서 일평생 관찰연구를 한 뒤 내리는 결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MBTI를 어떤 사람을 파악하는데 있어 대표적 지표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MBTI도 사실은 양자택일이 아닌 정도의

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나는 OOOO이다’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매번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이상, 마치 딱 그 4개의 그룹조합 안에 같힌 생각을 해버리기 쉽다고 느낀다. 대표적 예로 “너 T지?”라고 묻는 현상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질문자는, 상대에게 여전히 특정 상황에선 F적 기질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리곤 한다.





따라서 위와 같은 부분들을 생각해볼 때, 나는 MBTI는 꽤나 재미있고, 때로는 내가 말로 잘 설명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어떤 모습에 대해 명쾌하게

해명해주는 좋은 도구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신뢰도는 그리 높지 않은, 정말 그저 재미로나 해봄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떤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면, 1)아주 구체적인 조건 하에서 그사람은 어떠한지를 파악하거나 2)MBTI를 물어보고 그에 대해 돌아오는 답변을 가지고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결정짓기보다, 시간을 두고 오래 지켜보면서 어떤 단면들을 가진 사람인지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를 느껴보길 권장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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