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또는 숙명이라는 것에 처했을 때.
prologue
사람마다 타고나는 것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음감으로, 누군가에게는 색채감으로, 누군가에게는 수(數)에 대한 천부적인 능력으로, 누구나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영역을 가지고 있다.
나에겐 그것이 언어영역에 관련된 것이었다. 읽고 듣고 말하는 것 같이 국어에 관한 소영역에서 대체로 두각을 나타내는 편이었고 또 하나는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의 증언으로는 내가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연동화를 오디오로 틀어주었어야 했는데 중간중간 안 듣는 것 같아 끄면 귀신같이 금세 달려와 다시 틀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사소한 기억력 역시 마찬가지.
상황에 있었던 사소한 말들까지 또렷하게 기억해낼때면 가족 아닌 다른 이들은 그저 놀랄 뿐이고 이제 가족들은 뭐 이런 애가 다 있냐는 표정을 짓곤 한다.
다만, 그런 나에게 타고난 능력이라 생각해본적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릴 땐, 그냥저냥 보통사람이겠거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대학교에서 듣게 된 세미나식 수업에서 내 글의 형편없음을 깨닫게 된 후부터 그저 내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그럴듯하게 있어보이게끔 써서 남을 속이는 글을 쓰지 않는 것,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을 모토로 삼고 써왔다.
그런 나에게 1년전 오늘, 2020년 12월 4일.
한 출판사 편집자에게서 내 글을 책으로 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 메일이 왔다.
제안에 수락했고, 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
신인작가라고 하기엔 아직도 작가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고 너무나 낯설었던 출판업계.
그에 대한 경험을 꺼내보고자 한다.
느낌은 대략 이런 것이다.
이 짤에서 주어만 바꾸면 되고, 그 주어는 난 분명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