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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sun Yoon Aug 26. 2021

반백살 나이에도 고딩처럼 말하는 내 친구

언어 사용권의 변방에서 그 고대적 형태가 더 잘 보존되는 현상에 관하여


뉴욕시의 위쪽에는 코네티컷이라는 주(state)가 있다. 그 코네티컷에는 초등학교 1학년때 나와 같은 반이였던 친구가 살고 있다. 그 친구는 한국에서 고2까지 마치고 1990년에 미국에 와서 오랜 공부끝에 치과의사가 됐고 현재는 개업을 해서 열심히 가족들을 부양중이다.


이 친구는 청소년기에 미국에 와서 주로 영어만 쓰며 30여년을 살았기 때문에 다른 한국남자들처럼 한국에서 대학생/직장생활을 하면서 말투가 점점 어른스러워질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80년대 남자고딩이 쓰던 말투를 놀라울만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거의 인간문화재 수준이다.


그런 연유로 이제 곧 반백살이 되가지만 이 친구랑 대화를 할려면 여전히 고딩시절에 이야기 하듯이 대화를 해야만 한다. 아무리 어려서부터 친한사이라고 했어도 이제 우리나이에 저렇게 다짜고짜 욕으로 문자를 시작하지는 않는다. 이제 우리나이에 랩에 라임넣듯이 'XX놈아', 'X끼야'로 모든 문장을 마무리 하지도 않는다.


나도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이제는 저 친구가 한국성인들이 쓰는 한국어를 접해본적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나도 더 쌘 욕으로 맞받아친다. 그러다보니 에너지 소모가 상당해서 대화를 오래는 못한다. 그냥 저렇게 안부나 좀 묻다가 금새 마무리가 된다. 이메일도 가끔 오는데 문체는 뭐 비슷하다.


저렇게 간간이 주고 받던 대화를 캡쳐해서 아내에게 웃기지 않냐고 보냈었다. 아내는 그걸 다시 친한 몇몇 아짐들에게 보냈고 두 아저씨의 쌍욕대화가 너무 웃기다며 약간의 매니아층까지 형성이 됐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자기가 지금 기분이 다운됐는데 준용이 아빠랑 그 치과의사쌤의 문자 새로 나온거 없냐고 아내에게 묻는 분도 계셨었다. 아직 나온거 없다고 하면 친구랑 대화좀 자주하라고 다그치기도 하셨다.


아래가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해서 미국도시들이 lockdown됐을 시절에 그 친구와 나눴던 문자를 캡쳐한 사진. 정말 저거보다 훨씬 더 칼라풀한게 많았는데 폰바꾸면서 다 없어졌다. 뭐 또 만들면 되긴 하지만...



그리고 이건 그 친구와 35년전에 찍었던 사진. 왼쪽이 나. 오른쪽이 저 욕쟁이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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